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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Mar 21. 2024

민지

소설 <PART-two> #착시①

민지는 자신이 안쓰러워 미칠 지경이다. 그녀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두 다리를 양 팔로 감싸 안으며 다리 사이에 머리를 올려두었다. 술래의 눈에 띄지 않으려 몸을 움추린 어린 아이처럼 잔뜩 웅크린 모습이다. 얼굴이 점점 깊숙한 어둠으로 빠져든다. 지반 아래로 젖은 뿌리를 뻗어내리고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붙들린 것 같다. 중력의 방향으로 꾸준히 가라앉고 있다. 생명의 방향이 뿌리 아래로 흘러내린다. 지면에서 바깥으로 솟아난 부분은 좀체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 톡하고 건드리면 흐드러지며 부서져 내릴 것 같다. 혼이 쏙 빠지도록 누군가가 흔들어 깨우지 않으면 긴 시간 마법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감정의 수렁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민지는 자신의 이 구부정한 뒷모습을 전지적 시점으로 내려다보는 상상을 했다. 또 다른 자아가 둥글게 구부정한 뒷모습의 자신을 흔들어 깨워보고 양 팔로 몇 번이고 휘감아 자신을 안는 상상을 했다. 민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손만 뻗어 오른손은 왼쪽 어깨죽지께 왼손은 오른쪽 어깨죽지께의 모직코트 위를 살짝 두드렸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 나는거 아니야?’

‘자기가 좋다고 쫒아다니드만’

‘원래도 좀 방정맞더라니 이 사달이 날 줄 알았지 뭐’     

 

뾰족한 엉덩이뼈 아래 마루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왔다. 탄성을 잃은 납작한 솜방석을 뚫고 지반의 냉기가 그대로 올라온 것이다. 혈액이 핏줄을 타고 오르는 것처럼 검은 뿌리의 잔가지들로부터 타고 오른 냉기가 온 몸 가득 감돌았다. 제 온도를 잃은 몸이 이대로 얼어붙을 것 같았다. 배 아랫부분이 묵직하게 출렁거렸다. 숨소리만 쉭쉭 하고 들려왔다. 그 때 입 안에서 은은한 열기가 뿜어져나왔다. 민지는 입으로 숨쉬기를 반복했다. 천천히 내쉬고 들이마시기를 여러번 그럼에도 주변 공기는 쉬이 따뜻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이 열기만으로는 나 자신 하나도 따뜻해지기 어려웠다. 이 많은 사람 중 온기를 더해줄 단 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민지는 냉기 속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다.

 

‘남들은 누가 손잡으면 그냥 놓고 말아’

‘아니 뭐 그냥 손 한번 잡히지 뭘 그리 예민하게 굴어’  


원래도 나는 이 세계에 속해본 적이 없지. 민지는 내내 유리문 밖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이 버려진 여자 아이를 문 안으로 들여주지 않았다. 유리문에 댄 민지의 두 손에서 유리문 안쪽으로부터 온기가 전해진다. 유리문 안은 화목했다. 민지는 더욱 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해진다. 문 안에 들어서면 한기가 자신의 몸에서 금방이고 지워질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은 왜 문 밖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자신에게 향한 폭거를 견뎌내고 정의에 대한 감각을 지워나갔다. 도처에 널린 냉대도 응당 치뤄야할 값이라고 여겼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민지는 이 세계에 속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애써 알려주는 이도 없다. 그리고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민지는 이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이 세계의 일원이 되어보는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그럴때면 민지는 바짝 웅크린 자세로 투명 사슬 감옥에 갇힌 죄 많은 자아를 분리해냈다. 무리들 사이에 끼어 타자가 되어, 잔뜩 웅크린 또다른 자아를 숨어 보고 흠씬 조롱하며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 조용하게 불안에 떨었다. 그러고나면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또다시 슬퍼졌다. 이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처럼 웅크린 저 여자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민지는 두 손바닥에 힘을 주어 조금더 자신을 안아보려 노력한다. 양 어깨 위 네 손가락이 혼신을 다해 꿈틀거린다. 그러나 가느다란 네 손가락은 가성비에 맞게 제작된 질낮은 모직코트 표면 위를 목적지도 없이 무의미하게 항해할 뿐이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지만 속닥대는 작은 몸짓과 눈짓까지 민지는 무시하지 못한다. 그렇게 멀어지다가 다시 돌아온 민지는 그들의 목소리를 한자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쫑긋 세운다. 스스로를 고문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아우 재수없어’

‘그래도 여기만 하니까 잘난 척 하고 다니는거지 다른데 가봐 누가 저 성질을 이만큼 받아줘’   


민지는 손으로 귀를 막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우두커니 서서 눈짓과 달싹이는 입술만으로도 그들은 거대한 세계였다. 눈꺼풀이 꿈틀거릴 때마다 어둠 속에 감은 눈 안으로 빛의 뒷면이 흔적처럼 남겨졌다. 물체의 실루엣이 눈 앞에서 흔들렸다. 집 채만한 그림자가 민지의 눈 앞을 압도했다. 민지는 드디어 몸을 흔들며 구원을 구했다. 유리문 안도 밖도 없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자신을 인도해달라고, 이 가혹한 세계로부터 자신을 구해달라고 그녀는 웅크린 채로 빌었다. 민지의 네 손가락이 다시 한번 모직코트 위를 꿈틀거렸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그녀는 주님을 찾지 못했다. 그 대신 민지는 나인의 조언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안과 밖은 나를 기준으로 나뉘는 것이고 언제나 나는 안쪽이다. 나를 뜨겁게 안고 환대해. 친절하게 맞이해. 등을 토닥이며 안부를 속삭여. 인색해지지마. 후한 값을 치루고 최선을 다해 너를 맞이해. 널 위해 너의 대지를 가꿔. 그러다 한번씩 고개를 들어 멀리 물러선 광활한 세상을 봐. 최대한 멀리. 좁은 공간을 통과하는 것처럼 쾅쾅 부딪히며 나아가지 않아도 돼. 끝없이 멀어지는 불가항력의 세계. 발버둥 쳐봐야 별 수 없는 만물의 우주. 결과적으로 다같은 운명이야. 세상의 온갖 비운을 곧 맞닥들일 사람처럼 굴 필요 없어. 세상과 맞짱이라도 뜰 사람처럼 불끈 쥔 주먹에 힘을 풀고 대신 작게 웃는 친구들을 너의 집으로 초대해. 그러면 가끔 살만해져. 그러니 자주 고개를 들고 돌아봐. 지금이야. 지금. 지금.


“점심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오후부터는 조별로 모여 논의를 시작할건데요. 조별로 여서일곱명씩 각 실별 한명씩 들어가도록 저희가 조구성을 해두었어요. 뒤쪽에 보시면 다과 테이블 옆쪽으로… ”          


민지는 여전히 몸을 둥그렇게 말은 채 두 무릎 사이에 놓인 머리를 살짝 들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들고자 애썼다. 흘러내린 흑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하나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주위를 살폈다. 누군가의 발가락이 두툼한 양말 안에서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차가워보이는 마루바닥은 쳐다보기만 해도 몸이 부르르하고 떨렸다. 그녀는 발 밑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깨에서 오른손을 내려 발 끝에 기대어 핸드폰을 세우고 화면을 무심하게 밀어올렸다. 카카오톡앱 상단에 새로운 문자를 알리는 뱃지가 눈에 들어왔다. 민지의 눈이 번쩍하고 뜨였다. 그녀는 빠른 동작으로 카톡앱을 클릭해 열었다. 여덟 개의 대화창이 촤라락 하고 펼쳐졌다. 그 중에서도 공동행동 네 사람의 대화창이 제일 위에 떠있었다. 읽지 않은 메세지가 일곱개나 되었다. 민지가 재빠르게 상단의 대화창을 열었다. 제일 먼저 보인 건 우선 이 공간을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밝히고 화장실 가는 것처럼 같이 나갔다오자는 율무의 톡이었다. 그 밑에 다시 아마도 혼자만 다른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을거라는 율무의 톡이 있었다. 우리가 있어서 괜찮을거라 생각했을 것 같다는 랄라의 말과 경지실에서 워크샵에 민지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 했구만 이라는 나인의 말이 차례로 이어져 있었다. 괜찮아요? 라고 민지의 상태를 묻는 율무의 톡이 이 대화에서 사실 가장 먼저였다. 민지는 움츠렸던 어깨를 조금 펴고 두 손으로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민지의 어깨가 조금 펴지고 고개가 들렸다. 다만 민지는 무어라 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괜찮다기엔 안 괜찮았고 안 괜찮다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해보였다. 사실 나는 내내 혼자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 귓가에는 벌써 타닥타닥 타자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화창은 여전히 율무의 말이 마지막이다. 그때 벽에 기대 앉은 랄라의 상반신이 민지의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골똘하게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민지는 율무의 제안대로 이곳을 잠시 벗어나는 것이 좋겠다는 답신을 할 참이다. 화면을 터치하자 대화창이 반으로 줄어들며 키패드가 아래에서 밀려 올라왔다. 말머리 몇 개가 위로 올라가 창에서 사라졌다. 랄라의 프로필과 대화창이 맨 위 상단에 남았다. 민지는 랄라의 작은 프로필 사진을 검지손가락 끝으로 신중하게 눌렀다. 랄라의 셀카사진이 크게 눈에 들어왔다. 역광으로 찍힌 탓에 턱을 괸 랄라의 얼굴 옆 선으로 후광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랄라의 검은 얼굴이 보였다.     


커버사진: UnsplashTrude Jonsson Stangel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

☞ 소설 <PART - one>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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