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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Mar 25. 2024

랄라(1)

소설 <PART - two> # 착시②

민지가 쭈그려 앉아 자기파괴적 고립감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곳은 과거 단지가 행정기능을 담당하던 시절 구내식당으로 쓰였던 P동의 2층 마룻바닥이다. 총 2개층 연면적 175평 규모의 이 콘크리트 구조물은 현재 누구나 이용이 가능한 공유주방이자 커뮤니티 시설로 쓰이고 있다. 장기간 미사용 건축물인데다 하천 기능을 상실한 복개천 구역에 지어져 엄격해진 현재의 법규정상 원칙대로라면 철거될 운명이었지만 ‘전면 철거 후 신축’에서 ‘일부 중대규모 수선을 통한 공간 재활용’으로 단지 조성 방침이 선회되며 존치된 공간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 미래와 조우한다는 단지 조성철학에 따른 것이었다. 소규모 수선 후 취사가 가능한 커뮤니티 시설로 최종 사용승인이 된 P동에서 육안으로 확인되는 것 중 그대로 남겨진 것은 2층의 이 마룻바닥이 사실상 유일했다. 주방바닥은 회색의 테라조 타일로 마감되었고 벽체는 아이보리색 페인트로 덧칠해졌다. 주방설비를 새로 구비하고 단열에 취약했던 샷시는 이중창으로 바뀌었다. 2층의 마룻바닥만은 더께를 더한 고유의 멋스러움 덕에 기어코 남겨졌고 리모델링 후 공간의 무드와도 제법 잘 조우했다. 리뉴얼 직후엔 이 마룻바닥이 남겨지며 얽힌 사연도 함께 나돌았는데 지방 어느 폐교의 바닥재를 뜯어와 재사용한 것이라는 설이 그것이었다. 이 설은 조성철학에 맞춰 재활용할 공간을 찾는 과정에 단지 전체의 건축물 조사에 참여한 연구원 여럿 중 불명의 누군가로부터 전해졌을 것으로 짐작되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부지불식간에 사람들의 뇌리에서 언제나 그렇듯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종국에 특이점을 상실한 이 마룻바닥을 랄라는 각별한 마음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동그랗게 말린 민지의 몸으로 시선을 옮겨 이를 멍하니 바라다보다 어느 고등학교 교감실에서 자신의 수장을 구상중인 한 여고생을 상상한데는 이 마룻바닥의 서사와 완전히 동떨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랄라가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시절부터였다. 경기 북부 지역 청소년 연합 동아리 ‘들불’에서 활동하면서 그 관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랄라가 막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때였고,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부문별로 다양한 사회운동조직이 막 등장하고 있을 때였다. 랄라는 자신이 사회운동을 업으로 삼게 된 더 근본적이자 결정적 이유로 청소년기부터 구별되기 시작한 성차 때문이었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구조화된 성차별에 대한 이 문제의식은 이쪽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된 동기였고, 자신의 생애 첫 경쟁자이자 영영 이기지 못할 상대였던 오빠를 자력으로 이겨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국내 유수의 명문 여대에 진학하기도 하였으니 한편 삶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기 되기도 한 셈이었다. 랄라는 생의 대부분을 장남인 오빠의 뒤치닥거리나 하도록 작동되는 집안분위기에 내내 눌려살았고 막 사춘기에 돌입해서는 스스로 화마에 뛰어든 사람처럼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지독한 분노에 휩싸여 스스로를 불태우며 보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한번씩 시원한 모래밭 속에 달궈진 몸을 뒹구는 것처럼 시작한 활동이 바로 ‘들불’이었다. 랄라는  일종의 반항심으로 학생들이 잘 읽지 않는 사회과학 잡지를 사다 들춰 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잡지 세 면에 실린 학생동아리 ‘들불’ 회장의 기고글을 보고 랄라는 출판사에서 알아낸 연락처로 연락해 그 길로 ‘들불’에 가입했다. 당시 동아리 회장의 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일본 자위대의 방위 협력 결정에 대한 안보 종속화를 우려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간간히 기억에 남아있었다.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의 진위여부나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지 여부는 당시 중요하지 않았다. 관심이슈도 아니었다. 랄라는 고등학생답지 않은 그의 식견과 문장력, 고조되며 흘러가는 이야기 구조에 별안간 번개를 맞은 것처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들불’에만 가입하면 동아리 회장의 글처럼 자신의 이 불편한 속내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빠에게도 기죽지 않으며 부모님께도 이 부당한 처사에 대하여 이성적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었다. 동아리 가입은 부모님께 알리지 않은 일로 치면 중1 때 남자친구와 2주간 사귀었던 일 다음으로 두번째 큰 사건이었다. 


랄라의 이 불온한 활동이 베일을 벗게 된 건 ‘들불’에 가입하고 일 년여가 지나 고등학교 2학년 2학기가 시작할 무렵이었다. 한 해전 겨울방학 때 작성해 제출한 200자 원고지 80매 분량의 단편소설이 어느 문학잡지 청소년 문학상 우수상 당선된 덕이었다. 단편소설은 학교와 집이라는 두 개의 공간에서 성차별을 겪는 15세 소녀가 친구와 가출을 감행하고 떠나는 30시간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였고, 청소년 문학상 소식이 가로읽기를 도입해 개간한지 얼마안 된 H신문에 짤막하게 실리면서 순식간에 교내가 발칵 뒤집혀졌다. W고등학교 2학년 6반 임종선 이라는 출신학교와 실명이 떡하니 기재되었으니 모르기도 쉽지 않았다. 랄라는 그날 아침 교감실에 불려가 3인용 소파 2개가 마주보고 도열된 소파 안쪽 구석에 앉아 학교생활에 불만이 있었느냐는 교감선생님의 질문을 들어야 했고 그에 답을 하지 못했으며, 그 날로부터 5일 동안 그곳으로 불려가 교과시간의 대다수의 시간을 교감실 소파에 혼자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가기를 반복해야 했다. 랄라는 이 암묵적 형벌이 끝난 후 부모님께서 알고도 모른 척 해주시는 것인지 관련 소식을 일절 전해듣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안절부절 2학기를 보냈는데, 그 후로도 아주 먼 훗날에야 부모님께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랄라는 학생부에 올라가는 수준의 징계도 받지 않고 종결된 해프닝이었음에도 졸업하고도 한참 뒤에야 당시 부임한지 얼마 안된 젊은 담임 선생님이 별안간 자신에게 당도한 이 도전적 숙제를 나름 학생인권적 차원에서 해결해보고자 노력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할 수 있었다. 


이런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랄라는 교감실에서 홀로 벌을 선지 5일째 되는 날, 자신의 영광이 왜 고스란히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사건이 된 것인지 단 한차례의 의문도 품어보지 못하고 교내 요주의 인물로 찍혀 전교조 선생님들조차 구제할 수 없는 왕따가 되는 상상으로 공포에 떨다가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두고 자신의 몸을 수장시키는 구상을 했다. 그리고 실제 실행에 옮겼으되 물 속에서 단 5초도 버티지 못했으니 이것을 두고 시도를 했다고 봐야할지에 대해 랄라는 자주 헷갈렸다. 이로써 부모님이 알지 못하는 사건이 세가지로 늘었다. 그러나 랄라는 교감실에서 받던 벌을 끝내고 교실로 돌아온 다음날 3교시 물리시간에 만삭이 된 몸으로 책상과 책상 사이를 거닐던 담임 선생님이 랄라의 등을 살포시 누르던 느낌은 오랫동안 따뜻한 촉감으로 남았다. 왼쪽 날개죽지쯤에 손바닥 전체가 꾹하고 와 닿았고 그 자국과 무게 덕분에 그럭저럭 2학년 2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고 종종 되돌아보곤 했다. 그리하여 랄라는 민지의 둥그렇게 말린 몸으로 다가가 별안간 손바닥 전체로 그녀의 등을 꾹 눌러보는 상상을 하며 두 눈을 꼭 감았다.  


커버사진: UnsplashViktor Talashuk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

☞ 소설 <PART - one>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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