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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다쓰루 <어떻게든 되겠지>

by 나명랑 Mar 24. 2025

지난 주 금요일부터 콜록대기 시작했지만, 지방처럼 내장에 잔뜩 낀 게으름 때문에 서둘러 병원에 가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주말 내내 목이 끊어질 정도로 기침을 해대면서도, 별 도리 없이 괴로운 자책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금, 토, 일 사흘은 내게 여러모로 고약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재미를 느낄만한 책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집에 대략 2천권 정도의 책이 있다. (더 많은 책들은 문화제작소가능성들 큰 홀에 가 있고, 전공 과목과 관련된 책들은 대개 학교 연구실 서가에 꽃혀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 대부분이 어디선가 그래도 믿을 만하다 싶은 사람이 서평을 썼거나, 신문 소개 칼럼을 보고 흥미를 느꼈거나, 적어도 온라인 서점 댓글이 그럴 듯하여 구입한 것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양질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난 주말엔, 나름 신중하게 제목과 저자를 보며 '이 책이 좋겠다'하고 뽑아들었지만 도저히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고 중도에 읽기를 멈춰야만 했다. 어떤 책이건 20쪽 남짓 읽다보면, '아, 이 책은 도저히 안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윌리엄 포스터의 <소리와 분노>다. 영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거쳐간다고 하는 작가이자 책이라는데, 내가 영문학과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게 이렇게 다행으로 느껴질 줄이야! (실제로 1993년 다시 대학 시험을 치룰 때, 인류학과와 영문학과 두 곳 중에 어디를 갈지 고민했었다.) <소리와 분노>는 내가 기억하는 한,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 중에서 가장 어려웠다. 지적장애를 가진 벤지라는 인물의 관찰과 기억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다루었다니, 이래저래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이런 소설은 텍스트를 하나하나 분석하는 데 쾌감을 느끼는 전공자에게나 던져놓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과감히 책을 덮었다. 


그 후에도 몇 권을 연달아 포기하고 그 다음으로 집어든 책이 우치다 다쓰루의 <어떻게든 되겠지>였다. 솔직히 그때쯤 나는 책 선정에 대해 '어떻게든 되겠지', 반쯤 포기한 마음 상태였다. 더군다나, 새벽 5시까지 잠도 못자고 아들과 졸렬하게 다투고 난 다음 날이다 보니, 내 존재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내 인생은 실패작이야'라는 씁쓸한 자조가 걸쭉한 피로감 및 분노의 잔해와 뒤섞여 모든 세포 안에서 찐득거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기 싫은 마음을 무찌르고 다녀온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약 처방을 잘해준 덕에, 목을 잘라내는 듯한 통증의 기침이 좀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월요일 오후에 <어떻게든 되겠지>을 읽었다. 화요일 오전 일찍 대학원 수업이 있고 아직 그 준비를 시작조차 못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우치다 다쓰루의 <어떻게든 되겠지>는 저자가 자신의 어린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삶을 회고하는 책으로, 그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모범생같은 사람도 알고 보면 젊은 시절에 한두 가지 기행이나 반항거리가 있는 법이지만, 우치다 다쓰루의 인생은 그 정도의 일탈과는 거리가 멀다. "너는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거니?"라고 한탄하는 부모에게,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어요"라고 보여주면서 자신의 삶을 변호해도 될 정도다. 고등학교 중퇴, 가출, 검정고시, 대학 입시 실패, 도쿄 대학원 3년 내리 낙방, 8년 간의 임용 실패와 조교 생활, 이혼, 한부모의 삶... 그래도 그는 이 모든 세월을 '잘' 살 수 있었는데, 내가 보기엔 그가 세 가지 무기를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인간 관계를 굳건하게 만드는 능력, 둘째, 성실함, 셋째, 낙관주의. 그는 딸을 혼자 돌봐야 하거나 대학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해야 할 때마다, 일단 그 일이 우선이고 나머지 시간에 연구를 하면 되지, 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고 한다. 두 경우 모두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니, 배울 점이 아닐 수 없다. 또, 100권이 넘는 책을 꾸준히 낼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인터넷에 자신의 글을 매일같이 성실하게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두루두루 인간 관계를 잘 하는 능력은 부럽긴 하지만,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꺼리면서, 관계를 잘 해나가길 바랄 수는 없으니까.  


"왠지 모르게" 끌리는 일을 하고, "왠지 모르게"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다 보니, 지금의 자신으로 와 있다고 했다. 과거의 갈림길에서 설령 다른 길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노년엔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레비나스를 번역하고, 글을 쓰고 책을 내며, 무도장을 운영하는 삶. 그와 비슷하게 나 역시 "왠지 모르게" 끌리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또 살아왔다. 어떤 면에선 특별한 계획이나 목표 없이 그렁저렁 흘러온 삶이다. 우치다 다쓰루처럼, 나도 과거에 갈림길에 서 있었던 적을 떠올려 본다. 만일 내가 의과대학을 계속 다녔더라면, 만일 내가 인류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취직을 했더라면, 만일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주의를 고집했더라면... 의과대학을 계속 다녔다면 아마도 처음부터 되고 싶었던 정신과 의사가 되었을테고, 지금과 하는 일은 다르겠지만 글 쓰는 일은 계속 했을 것 같다. 인류학과 대학원에 가지 않고 취직을 했다면, 역시 지금처럼 책을 읽고 글 쓰는 일은 계속 했겠지. 어떤 식으로 발표했을지, 혹은 발표를 하지 못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만일 내가 결혼을 그 당시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이를 낳지 않았겠지... 하지만 아이가 있건 없건, 내 일하고는 크게 상관이 없다.         


조금 더 생각을 진전시키고 싶지만, 아무래도 감기 때문에 목이 근질근질해서 집중하기가 어렵다. 여하튼 나는 그의 '어떻게든 되겠지' 사상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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