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표현이 서툴었던 내가 너를 만나면서 변해가기까지.
'남편은 어떤 사람이야? 잘해줘?'
물론 사람에 따라 지극히 다르겠지만,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학습된 그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기에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대로, 그들이 보고 자란 대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만난 캐나다인은 너무 다르고 신기했다. 나라마다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있는데 캐나다인들은 보통 다른 나라에서 좋은 사람들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캐나다인이나 미국인이나 그게 그거 아니야?'라고 하는데 미국인과 캐나다인의 그 오묘한 차이가 있다. 특히나 캐나다에서는 미국보다 유독 'Excuse me'와 'Sorry'를 더욱 많이 들을 수 있는데, 그만큼 상대방을 더 많이 배려한다. 캐나다인 남편은 같이 자고 있는 중에 잠결에 나를 툭 치고는 곧바로 미안하다며 'Sorry'를 외칠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에 물어보니, 나를 툭 쳤던 것이나 미안하다고 했던 건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고 했다.) 그만큼 조금이라도 잘못한 일에 대해, 아니면 본인이 실례를 조금이라도 끼친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게 너무나도 익숙한 그들이다. 감정표현을 대놓고 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한국에서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는 게 처음에는 너무나도 어색했던 나였다. 그래서인지 항상 우리의 다툼은 이런 감정표현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다툼은 정말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지만, 한국 연인들의 다툼에는 패턴이 있다.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니까 너랑 이제 말 안 할 거야!라는 표시로 카톡 프사 사진을 지운다거나, 상태 메시지를 바꿔놓고, 상대방이 내 기분을 알아차리고 먼저 미안하다고 해주기를 바라는 것. 나랑 안 맞는 게 있거나 내 맘에 들지 않는 게 생겨도 그 모든 걸 차곡차곡 쌓아두고 결국 나중에 폭발해서 다 쏟아놓는 것. (모든 건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너무나도 다르긴 하다.)
만난 지 거의 5년이 다 되어가면서 이제 얼굴만 보고도, 눈빛만 보고도 상대방의 생각까지 알게 된 우리. 남편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눈으로 욕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린다거나,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예민해져서 Hangry(Hungry와 Angry의 합성어. 배가 고파서 화가 나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나를 쉽게 발견하곤 한다. 나의 걸음걸이에 따라서 지금 내가 추워하고 있는지, 내가 지난번에 맛있게 먹었던 게 무엇인지 모두 기억해주는 참 배려가 많은 사람이다.
나는 감정표현이 너무나도 서툴다. 그래서 정말 사소한 일이 다툼으로 이어질 경우가 많았다. 모난 성격 때문에 항상 눈치를 봐야만 했던 나는 내가 진짜 느끼고 있는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어 놓는 게 너무나도 무서웠다. 남편은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곧바로 얘기하라고 한다. '눈치'라는 게 없는 외국인들은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왜 화가 난 상태인지를 정확히 설명해주기를 항상 바란다. 그들은 지금 이 상황을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지를 바로 알려주기를 원한다. 이는 한국에서 '네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봐!'라고 면박을 주는 상황들과는 정반대이다.
논리적이고 직설적이면서 감정 표현이 확실한 남편은 무엇이든지 다 털어놓는 편인 반면에, 나는 주로 모든 감정을 꼭꼭 숨겨놓는 편이다. 캐나다 시부모님과 영상 통화를 할 때마다 'love you'를 외치고 끊는 남편과 시부모님이 신기했다. 무뚝뚝한 전형적인 한국의 가정에서 자란 내게 '사랑해'라는 말은 무언가 오글거리고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말 중에 하나인데, 시부모님은 항상 'love you'를 외치고 눈물이 글썽글썽하셨다.
캐나다인 남편을 만나고부터 나는 내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지고 있다. '상대방이 저절로 알아주겠지?'라는 생각이 아니라, 그 상황이 어색해도 지금 내 감정이 어떤지, 무엇 때문에 지금 내가 기분이 별로인지, 싫어도 좋은 척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내 감정을 조금 더 꺼내놓고 있다. '고마워' '사랑해' '미안해' 이 너무나도 당연한 세 가지 인사말을 내가 먼저 말하는 것. 그리고 나를 표현하는 걸 어색해하지 않는 것. 우리의 사소한 다툼들 속에 감정표현이라는 훈련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