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2 캐나다 남편과 스몰웨딩 결혼식을 마치고
2020년은 모두에게 참 힘들었다.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게 먼 옛날의 일이 되어버린 코로나 시대의 삶.
그중에서 제일 맘고생했을 사람은 아무래도 결혼을 앞두고 있는 커플들이 아니었을까.
결혼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여기에 웨딩홀 인원 제한, 뷔페 제공 금지 등등. 준비할 것도 생각할 것도 더 많아졌고, 평생 한 번 있을 결혼식 사진들도 마스크와 함께해야만 했다. 속상하게.
작년 시부모님의 한국 여행으로 전혀 의도치 않게, 정말 급작스럽게 상견례 자리가 마련되었다.
우리 결혼은 해야지라고 생각하기만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상견례를 시작으로 웨딩홀 정하기, 그리고 프로포즈를 제일 마지막으로 하게 되어 철저한 한국식 준비가 되어버린 우리였다. (외국에서는 보통 프로포즈를 하고 약혼남-약혼녀로 한참을 지내다가 결혼을 하게 된다.)
작년 9월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상견례를 하고, 11월 웨딩홀을 정하고 하나씩 준비를 할 때는 전혀 코로나라는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다. 내 맘대로 내가 정하는 스몰웨딩이면서, 플래너 없이 하는 결혼식이 가장 컸기에 내가 평생 꿈꿔왔던 행복한 결혼식을 위해 하나씩 준비해 갔다. 많은 검색과 지인 찬스를 사용하여 하나씩 준비해나갔다.
누구에게나 결혼식에 대한 로망은 있는 거니까.
나의 로망은 외국 같은 예쁜 웨딩홀에서 결혼하는 거였다. 특히나 캐나다인 남편과 함께라 야외에서 꽃이 가득한 곳에서 하고 싶었는데, 내 맘에 쏙 드는 예쁜 홀을 찾았다. 화이트와 라벤더 느낌이 나는 꽃들로 더욱 내 맘에 드는 웨딩홀이 되었다. 작년 11월 계약을 했던 지라, 2020년 9월 12일 저녁 5시라는 프라임 시간으로 예약을 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코로나로 결혼식장에 인원 제한이 생길 줄. 내가 고른 웨딩홀은 실내와 야외가 같이 되어 있어서 최대 150명까지 수용 가능한 곳일 될 줄은.
프리랜서 강사로 일하다 보니, 나 혼자 결혼 준비를 해도 될 것 같았다. 살짝 알고만 지내던 웨딩 플래너님에게 여쭤봤을 때 너무 불친절했던 것도 별로였고, 무엇보다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터무니없는 돈을 주고 맡기기가 싫었다. 그때부터 네이버 카페, 블로그, 인스타 등등 틈틈이 찾아보며 준비해나갔다. 다이아반지, 스튜디오 촬영, 남편 정장, 웨딩슈즈, 메이크업, 부케, 드레스, 속옷, 이브닝드레스, 엄마 한복, 사회자 섭외, 축가 가수 섭외, 청첩장 제작, 청첩장 전달, 3중주 섭외, 음악 고르기, 사진 촬영업체 선정, 영상 촬영업체 선정, 축하 메시지 영상 만들기, 주례 선생님, 식순 정하기 등등. 매주 하나씩 프로젝트를 해치우듯이 하나씩 준비해나갔다.
혼자 스몰웨딩 준비를 하면서 가장 고르기 어려웠던 건 바로 드레스. 야외 식장이다 보니 야외 느낌 나는 드레스, 그리고 내 몸매를 가장 잘 살려줄 수 있는 드레스, 그렇지만 한 번 빌리기만 하는데 몇 백만원 하는 그런 드레스는 빌리고 싶지 않아 폭풍 검색을 많이 했었다. 특히나 패션 일을 하고 있는 절친 스페인 친구가 없었다면 쉽게 고르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5곳에 가서 17벌의 드레스를 입어보고선, 서촌에서 만나게 된 이 드레스! 어깨 라인을 잘 드러내 준 새틴 드레스라 너무 좋았다. 무엇보다 식 중간중간에 울컥하는 순간에 드레스 안에 엄청난 코르셋이 너무 아파서 울 겨를이 없도록 잘 잡아주었다. (?)
스몰웨딩까지는 좋았는데, 고민해야 할 점이 또 생겼다. 캐나다인 남편과 함께 치르는 결혼식은 무조건 영어가 함께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사회자도 영어 mc와 한국어 mc, 주례도 영어와 한국어를 같이 해 주실 수 있는 분, 축가도 영어로 잘 불러줄 수 있는 친구, 그리고 모든 순서지도 한국어, 영어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배포해야 하는 등. 두 가지 언어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는 스몰웨딩을 만들어야만 했다.
스몰 웨딩으로 특히나 코로나 시대의 웨딩으로 진행되다 보니, 가장 중요한 두 분인 캐나다 시부모님이 참석하지 못했다. 남편은 결혼을 미루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사실상 결혼을 언제로 미뤄야 할지도 모르고, 그동안 준비해온 것들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예정대로 식을 진행했다. 대신 내년에 캐나다에 잠깐 돌아갔을 때 캐나다 식구들과 함께하는 스몰웨딩을 하기로 했다. 부모님이 오지 못하셔서 슬픈 마음은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받아 영상을 만들어 깜짝 공개했다. 남편 모르게 준비했고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남편은 영상이 나올 때 눈가가 촉촉해졌다고 한다.
서로에게 전하는 결혼 서약은 영어와 한국어로 전달하고, 아빠가 축사까지 이어지고 나면 결혼식 끝!
모든 대본과 내용을 한국어, 영어로 준비하게 되면서 미리 많이 울어둬서 그랬을까. 결혼식 당일에는 정말 너무 정신이 없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루가 다 지나가버려 정말 신나게 즐기기만 했다. 이 날 이슬비가 내렸는데, 외국에서는 결혼식 당일에 비가 오는 건 앞으로 잘 살 거라는 징조라고 한다.
남편의 친한 하키 친구들이 모두 참석했고, 나의 외국인 친구들과 친한 친구들이 온 자리여서 그런지 더욱 애틋했다. 코로나 시대에 위험을 무릅쓰고 와준 진짜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인생의 큰 일을 겪으면서 인간관계가 정리된다고 했던 친한 언니의 말처럼, 올해 나는 책 출간기념회와 결혼식을 마치며 인간관계의 큰 변화가 있었다. 허울뿐이었던 말로만 친한 척했던 사람들과 가짜 관계는 이제 접기로 했다.
남편의 비자 변경 때문에 이미 서류상의 결혼을 마치고 두 달 동안 같이 살았던 우리. 결혼식을 마치고 나니 이제 진짜 '여보'가 되었다면서, 우리가 이제 서로를 부르는 가장 달콤한 말은 '여보'가 되었다. 코로나 시대의 결혼식, 플래너 없이 스몰웨딩 준비, 한국어/영어 두 가지 버전이 같이 진행되는 결혼식, 출간 준비와 함께 이루어져 더욱 준비가 힘들었던 웨딩. 작년 11월부터 올해 9월까지. 기나긴 여정이 끝나고 11일간의 국내 로드트립 허니문까지 마치고 나니 이제야 좀 결혼이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의 잊지 못할 2020년 9월 12일. 너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