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함이 아니라 별일 없음을 인정하기
그냥 얼마 전에 맛있게 먹은 카페 로우키의 커피. 사소한 발견도 일상의 작은 재미라 볼 수 있다.
주변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늘 공통적인 넋두리가 있는데, 바로 ‘행복하지 않은 현재’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다. 굳이 직접적으로 얘기를 듣지 않더라도 매일 버릇처럼 훑어보는 각종 소셜 미디어만 보면 모두의 노력은 ‘이토록 행복하고 잘 지내는 나!’를 전시하는 것에 있다. (물론, 그중에는 ‘이토록 힘들고 불행한 나’를 전시함으로써 남들과 다른 차별화를 꾀하는 것에 만족감을 얻는 사람들도 있지만...)
물론 나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칠 무렵에는 어떻게든 하루하루에 의미를 두려고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작은 일에 감사해보고자 어떻게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록을 남기고자 한 적도 있고 작은 소비를 지속적으로 해본 적도 있었다. 혹은 누군가와 꼭 연락/대화를 하거나 오프라인 만남을 가지면서 ‘오늘 하루도 잘 지냈어’라고 위안을 얻고자 하였다. 혹은, 온갖 시간을 쪼개어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몰두해보기도 했었다. 배운다는 학습적인 의미보다는 그냥 이런 것에도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에 더 위안을 얻었지만…
하지만 그 많은 시간과 마음의 투자를 하면서 몸이 지쳐 갈 때쯤 “내가 정말 이걸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며 나의 노력에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말 아침에 중국어 학원을 가서 행복한가? 밤에 영어 전화를 하면서 행복한가? 어떻게든 주중에 한 번이라도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는 게 행복한 건가? 등등. 돌이켜보면 그냥 그런 시도들을 끊임없이 하는 나의 모습에서 위안을 얻고, 그로 인해 ‘회사를 다니는 것’ 외의 일들에 시간을 보냈단 자체로 내가 색다른 일상을 보내고 행복을 추구한다는 착각에 빠졌었다.
아주 작게, 생각을 바꿔보면 사실 매일 행복할 필요는 없다. 정확히는 매일 행복한 게 우리 삶의 기본값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은 그냥 ‘아무 일 없음’이 가장 보통의 상태일 수 있다. 그렇기에 매일 행복하지 않은 게 문제도 아닌 것이다. 남들 역시 매일 행복하기만 한 것도 아닐 수 있다. 모두가 그냥 ‘우선 겉보기에 행복해 보이는 남들의 모습’에 뒤지지 않기 위해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을 하는데, 사실 개개인의 일상을 열어보면 딱히 노력에 비해 행복하지 않은 모습에 좌절하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좌절은 굳이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는 비밀스러운 영역일 것이다. 나 혼자만 행복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
오늘 하루 아무 일이 없었는가? 그렇다면 충분하다. 적어도 불행한 일은 없었다는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게 작은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만약 오늘 불행한 일이 있었는가? 그럼 그냥 그대로 훌훌 털어버리자. 그건 그냥 오늘의 일이고, 내일은 다시 0의 값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생각지 못하게 오늘 조금 즐거운 일이 있었다면, 그냥 그것이 ‘행복’이다. 0보다는 0.1이 더 낫다, 딱 이 정도의 차이만으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생각하면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오늘 내가 한 일을 생각해보자면 업무를 마치고 드럼 수업을 갔다가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시도하기 위해 이 글을 정리한 것, 앞으로 어떤 주제가 되든 글을 조금씩 써나가며 감정을 다스려 보겠노라 결심한 것, 그리고 조만간 만날 친구의 생일 선물을 주문한 것이다. 쓰다 보니 제법 많은 일을 했네 싶다. 딱히 감사 일기를 쓰며 의미를 부여해보진 않겠다만, 그냥 이런 작은 일들이 모여 하루를 이루고 그 하루가 한 주를, 그리고 그 주들이 모여 한 달과 1년을 만드는 것이겠지 담담하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