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더 진실되게,
죽음 앞에서 초연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엄마는 시한부 인생을 살았지만 나는 한 번도 엄마의 얼굴에서 두려움을 본 적이없다. 3개월 시한부라는 판정을 받았을때도, 호스피스 병동에 누워 있을 때조차 엄마의 얼굴은 놀라울 정도로 말갛고 평온했다.
그러나 엄마가 영영 용감했을 리는 없다.
내가 보지 못한 순간, 엄마 역시 두려움과 맞서며 그것을 이겨내려 애썼을 것이다. 낮에는 내 앞에서 담담한 얼굴을 하고, 혼자 남은 밤에는 손을 꼭 쥐고 두려움과 씨름했을지 모른다.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제야 상상한다. 죽음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어떤 차원일까.
독일의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 에서 인간을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유한한 존재” 라고 규정했다.
죽음을 의식하는 순간, 우리는 삶의 유한함을 자각한다. 그 자각은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동시에 깊은 떨림을 불러오고, 우리는 그것을 두려움이라 부른다. 두려움은 단순히 병이나 사고 같은 눈앞의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 이면에서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자각이 온몸을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 철학적 정의는, 엄마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드러났다.
엄마는 죽음 직전, 어떤 두려움에 휩쌓여 있었을까. 신앙이 있었던 엄마에게 죽음 이후의 세계는 두려움의 이유가 아니었을것이다. 아마도 마지막 순간에 유학길에 있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까 하는, 그 사무치는 아쉬움과 두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임종하시던 날 밤 11시 50분, 멀리 미국에 있던 동생과 전화가 연결됐다. 전화기 너머로 동생이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엄마 사랑해. 엄마 고마워. 나의 엄마가 되어 줘서 고마워. 나중에 만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거짓말처럼 엄마의 심장이 멈췄다. 아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까 두려워 하던 마음, 그 목소리를 향한 갈망이, 마지막까지 생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임종을 지켜본 우리 가족도 각기 다른 얼굴로 두려움과 마주했다. 어떤 이는 오열했고, 또 어떤 이는 찬송가를 크게 불렀으며, 또 다른 이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떨구었다. 슬픔과 두려움이 뒤섞인 순간이었다. 그 시간, 나 역시 동생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리며 엄마와 같은 두려움 속에 있었다.
나의 두려움은 배 속에서 구불거리며 올라온다. 금방이라도 살갗을 뚫고 나올 듯 부글대며, 감정이 통증이 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한바탕 강렬한 통증이 지나가면 배속은 물론 정신까지 또렷해져, 뒤이어 다가오는 상황을 명료하게 인지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희귀성 난치병인 SLE (Systemic Lupus Erythematosus) 라는 병명을 받아들었을때도 그랬다. 또다시 배 속이 구불됐다. 두려웠다. 내 아이들이 남겨질까 두려웠다. 나로 인해 남편이 정서적, 경제적으로 더 많은 짐을 지게 될까 두려웠다. 한바탕 두려움의 요동이 지나가고, 불현듯 머릿속에 단어가 스쳤다. 매일의 작별, 매일의 시작. 매일을 작별하는 마음으로 살며, 매일을 힘차게 시작하자.
그래서 두려움은 단순한 나약함이 아니다. 두려움은 인간이 자기 유한성을 감지하는 순간의 떨림이며, 그것은 오늘을 더 진실하게 살도록 부르는 오래된 감각이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는 순간, 오히려 세상이 더 또렷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두려움과 싸우지 않기로 했다. 다만 그 떨림을 견디며 오늘을 살아내는 법을 반복한다. 떨림 앞에 솔직하고 담담하게 나아가리라.
언젠가 나의 아이들이 두려움을 느낄때에도- 사랑을 잃을까 봐, 학업과 일에 실패할까봐, 가족을 먼저 떠나 보낼까 봐- 그 떨림 앞에서 멈춰 숨지 않기를 바란다.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다시 진실된 삶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