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yourself
몸은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관절의 통증, 이유 없는 발열, 사막처럼 바싹 마른 눈과 갈라진 입안. 그 모든 증상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내 안의 구체적인 상태를 알려주는 단어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단어들을 읽을 줄 몰랐다. 피곤하니 커피를 더 마셨고, 당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날은 초콜릿을 집어 들었다. 피곤한 날은 쉽게 산책을 건너뛰었다. 삶에 치여 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에 밀려, 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늘 뒤로 밀렸다.
사실 몸의 신호는 애매하지 않다. 잦은 갈증은 쉼을 요구하는 문장이고, 반복되는 피로는 과부하를 알리는 느낌표다.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통증은 삶의 균형을 되묻는 물음표다. 몸은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다만 우리가 듣지 않을 뿐이다. 그 신호들을 제때 알아차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이후의 삶을 크게 갈라놓는다.
감사하게도 나는 너무 늦지 않은 시점에 몸의 언어를 이해하게 됐다. 귀를 쫑긋 세우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제의 몸과 오늘의 몸이 같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매일 아침 새로운 시작을 배운다.
Love yourself-
몸이 들려준 이야기는 곧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는 요청이자 권유가 아닐까?
독일의 철학가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자기 사랑(self-love)을 이기심과 구별하며, 그것을 “돌봄, 책임, 존중, 앎”이라는 네 가지 요소로 설명했다.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귀 기울이는 것은 곧 자기 몸을 돌보는 일이며, 삶의 조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다. 불완전한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이고, 몸이 들려주는 언어를 해석하려는 노력은 곧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아는 과정이다. 몸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단순한 자기 관리가 아니라, 성숙한 사랑의 연습인 셈이다.
프롬의 말처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타인을 사랑할 수도 없다. 몸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삶을 지속할 힘을 기르는 일이자, 동시에 관계 속에서 타인을 더 온전히 돌보게 하는 힘이 된다.
내가 스스로 몸을 잘 돌보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큼 가족의 시름을 더는 일도 없다. 아이들을 활기차게 웃으며 반기는 것, 남편에게 힘을 나누어주는 동반자가 되어주는 것. 당연하게 여겼던 관계와 행동이 사실은 대단히 큰 사랑의 모습이었음을 깨닫는다. 내 몸을 존중하는 일이 결국 관계를 지키는 일이기에, 자기 사랑은 언제나 타자에 대한 사랑으로 흘러간다.
몸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통해 몸의 언어를 나의 언어로 옮길때 고통은 문장이 되었다. 기록은 나를 돌아보고 매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힘이 되며, 또 어느날은 같은 아픔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닿아 작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글쓰기가 타인의 삶과 겹쳐지며, 우리는 각자의 몸이 들려준 이야기를 서로의 치유로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