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내려놓고 얻은 습관
병명을 진단받고 며칠은 짙은 통증 속에 지냈다. 속절없이 울다가, 하염없이 자다가 눈을 떠 배가 고프면 요기만 채우는 식으로. 런던에서 사온 로즈잼을 크로와상에 발라 먹으려다 문득 의사의 말이 생각나 버터칼을 내려놓았다. 흰 밀가루는 당분간 내 식탁에서 사라져야 한다.
대신 마침 친구네 텃밭에서 얻어 온 미나리를 송송 썰어 방울토마토와 올리브를 곁들였다. 평소엔 잘 먹지 않던 올리브가 미나리와 만나 혀끝을 짭조름하게 감돌았다. 맛있다. 처음 시도한 맛의 조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그리고 잠잠히 의사의 말을 되돌려 본다.
“약을 쓸 수도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생활습관을 조금 더 철저히 바꾸며 지켜보도록 하죠. 약은 당장은 도움이 되지만, 부작용도 큽니다. 면역억제제나 스테로이드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장기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우선은 물을 충분히 마셔 보세요. 하루에 2 리터 이상은 꼭.”
당장 죽는 병도 아니고,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밤잠을 설치는 것도 아니지만, 병은 병인 것을.
희귀성 난치병이라는 이름과 달리 내게 주어진 처방은 그저 하루하루 조금씩 삶을 고치라는 것이었다. 뾰족한 수를 기대했던 내 입이 괜히 찔룩 나왔다. 고작 작고 새로운 습관을 매일 반복하라는 처방이라니.
가만 보면 독일 사람들에겐 건강을 위해 지키는 몇몇 습관이 있다. 첫 번째는 환기, 두 번째는 물 마시기와 페퍼민트 차, 세 번째는 산책이다. 걸음마를 배우는 순간부터 몸에 새겨지는 이 습관들은 독일인의 삶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칸트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했다는 유명한 일화는 물론, 신부 세바스티안 크나이프가 젊은 시절 결핵을 앓다가 찬물 목욕과 규칙적인 산책, 단순한 식사로 회복한 기록을 담은 ‘크나이프 요법’은 지금도 독일의 요양원과 헬스 리조트에서 이어지고 있다. 약보다 생활의 작은 습관이 몸을 지탱한다는 믿음이다.
억지로 시작한 작은 반복이 결국 나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일까.
쇼펜하우어는 습관을 “두 번째 천성”이라 정의했다. 처음에는 강제로 들여온 규율 같지만, 반복되면 본성처럼 자연스러워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인간은 충동과 욕망에 끌려 다니는 대신, 습관을 통해 자신을 길들일 수 있게 된다.
식탁 위 미나리와 올리브를 다시 바라본다. 익숙하지 않았던 낯선 맛이 어느 새 내 입맛에 자리 잡았다. 맛있게.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따뜻한 물을 한 잔 천천히 넘긴다. 목을 타고 내려가며 속이 풀리는 순간, 몸이 오늘의 새로운 시작을 느낀다. 식탁 위에는 염도와 당도를 낮춘 음식이 오른다. 짠맛과 단맛이 줄어드니 오히려 재료의 결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산책을 한다. 바람이 얼굴에 닿고, 발뒤꿈치가 땅을 차는 리듬 속에서 몸과 마음이 함께 정리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매일 사랑의 인사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는다.
오늘의 미세한 결이 내일의 방향을 바꾸고, 그 방향이 모여 전혀 다른 삶의 무늬를 만든다. 그 오랜 진리를 오늘 내 삶에 적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