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 받는 선물
어릴 적부터 의미를 알 수 없는 꿈을 자주 꿨다. 깨고 나면 가슴만 두근거리고, 수면은 뒤숭숭해지는 그런 꿈들.
아이들에게 “좋은 꿈 꿔” 하고 입맞춤을 해준 밤에도 나는 늘 어딘가 부유하는 꿈에 시달렸다.
그런 수많은 밤들 속, 엄마가 나오는 꿈은 잠결에 받는 선물이다. 엄마는 세상을 떠난 뒤 5년 동안, 한 번도 내 꿈에 오지 않았다. 너무 그리워 울다 잠든 밤도, 그 낯선 그리움을 품고 깨어난 새벽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이민 2년 차 되던 어느 날, 삶이 퍽퍽해지고 우리의 상상이 허상으로 끝날 무렵 엄마가 처음 꿈에 나왔다.
빛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엄마는 말없이 다가와 무언가를 내게 툭 건넸고, 받자마자 나는 잠에서 깼다. 아주 짧고 선명한, 그럼에도 분명한 엄마의 기운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이 어렵게 준비했던 면접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비자 없이 버텨온 우리 가족에게 처음으로 열린 길이었다. 지친 딸이 발을 동동 구르는 게 안쓰러워 그 먼 곳에서 내게 왔나 보다. 걱정 말라고. 다 잘될 거라고.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Sigmund Freud)와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융(Carl Gustav Jung)은¹ ². 무의식의 실재와 꿈의 상징성을 강조했다. 인간에게는 의식 이외에 깊은 무의식의 층위가 존재하며, 꿈이 그 무의식을 드러내는 현상이자 인간 이해의 중요한 열쇠라 여겼다. 그래서 꿈은 단순한 밤의 환상이 아니라 때로는 개인의 고통과 혼란을 풀어내는 단서가 되며,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성장하도록 돕는 길이 되기도 한다.
프로이트의 시선에서 엄마가 나오는 꿈은, 이민의 피로와 불안 속에서 무의식이 만들어낸 위안이었을 것이다. 병들고 지친 몸과 마음이, 보호받고 싶다는 나의 근원적 갈망 끄집어낸 것이다.
융은 무의식을 더 깊이 나누어 설명했다.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서는 집단 무의식이 존재하며, 그 안에는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공유해 온 보편적인 이미지와 상징이 저장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그것을 '원형(archetype)'이라 불렀다. 모든 문화에서 ‘엄마’는 보호와 양육,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된다. 꿈속에 나타난 엄마는 단순한 개인적 그리움을 넘어, 원형적 모성의 얼굴로 다가온다. 그것은 삶의 균형을 회복하고 내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려는, 무의식이 의식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아주 오랜만에 엄마가 꿈에 나왔다. 이번엔, 멋진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가득 사줬다. 아마도 잘 먹고, 잘 살아내라는 무의식의 다정한 명령일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는 오래도록 일상이 되지 않고, 이렇게 때로 한 조각 꿈이 돼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아준다. 영원히 작별한 줄 알았던 엄마가 나의 새로운 시작을 꿈에서 독려하듯이. 그리고 나는 다시 하루를 살아낸다.
¹ ²
-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꿈은 억눌린 욕망의 위장된 표출로, 과거의 결핍과 불안이 무의식에서 드러난 것이라 해석했다. 저서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 1900)
-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꿈은 무의식이 의식에 보내는 메시지이며, 꿈에는 인류가 공유하는 원형(archetype)이 반영된다고 보았다. 즉 꿈은 단순히 과거의 기억, 욕구, 욕망의 파편이 아닌 삶의 균형을 회복하고 미래를 이끄는 방향을 제시한다고 해석했다. 저서 《원형과 집단무의식》(Die Archetypen und das kollektive Unbewusste 1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