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위로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

by 진경



나는 정처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한다. 강가, 공원 어디든 좋다. 걷다가 우연히 만난 카페나 멋진 쇼윈도의 가게에 잠시 발을 들이는 일도 즐겁다. 자동차 경적이 없고,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는 함부르크의 골목골목을 걷는 것을 사랑한다. 산들거리는 바람과 적당한 햇볕이 뺨을 스칠 때, 그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삶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 나에게 당분간 외출 금지령이 내려졌다. 집 근처를 잠시 산책하는 것 말고는 집 안에 머물러야 한다. 피부 발진 때문에 자외선을 피해야 하고, 예민해진 호흡기는 가벼운 바람에도 쉽게 약해진다. 해가 잠깐이라도 뜨면 무조건 밖으로 향하는 이웃들이, 집 안에 머물러야 하는 내 신세를 함께 안타까워한다.


한 달 가까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사물들과 묘한 친밀감이 생겼다. 분기에 한 번 가구를 옮길 때나 겨우 바라보던 소품들을 유심히 본다. 정해진 자리, 같은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자주 손이 가는 컵도 있음을 새삼 발견한다. 그렇게 사물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것들이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독일의 문화비평가 발터 벤야민¹ 은 사물이 고유하게 발산하는 기운‘아우라’라고 불렀다. -라틴어로 aura는 숨결, 바람, 미묘한 기운을 뜻한다.- 벤야민이 정의한 아우라는 공장에서 막 나온 새 물건이 아니라, 손때와 시간이 스며든 물건에 깃든다. 내가 오래 사용해 온 의자나, 결이 닳아 색이 옅어진 찻잔 손잡이에는 나와 가족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흔적은 단순한 사물의 기능을 넘어,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을 품는다. 그것이 사물이 가진 아우라다.


몸이 아프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덕분에 나는 이 아우라를 더 주목하게 됐다. 의자에 앉을 때마다, 좋아하는 컵을 꺼낼 때마다 그 사물 위에 나의 하루가 덧입혀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오늘 하루를 글로 기록하듯 사물도 그 나름의 새로운 이야기를 품는다.






언젠가 아이들이 이 사물들을 물려받게 될 때를 상상한다. 창고에서 나의 물건들을 꺼낼 때 그들이 느끼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것’은 아니다. 사물이 그동안 품어 온, 엄마가 웃고 울던 시간의 흔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사물은 다시 아우라를 띠며, 나의 부재 속에서도 남겨진 이들에게 말을 건다. 사물은 그렇게 내 삶 이후에도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해하는, 사물이 주는 가장 깊은 위로다.

아프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죽음을 깊이 사유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하루를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졌다. 성실히 살아야 한다는 이전의 다짐 위에, 이제는 ‘진실함’이라는 단어를 쌓아 가고자 한다. 오늘 내가 앉은 이 의자와 손에 쥔 컵에도, 내가 이 하루를 얼마나 진실하게 살아왔는지, 고요히 스며들기를 바란다.







¹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학·문화 비평가. 사진과 영화 같은 기계 복제 시대에 예술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탐구하며, 사물이나 예술 작품이 지닌 고유한 기운을 ‘아우라’라 개념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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