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끝이 아닌, 완성을 향하여

by 진경



엄마가 암진단을 받은 뒤, 나는 머리로는 엄마와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마음으로는 끝내 준비하지 못했다. 7년 동안 병원을 함께 다니고, 좋은 음식을 찾아먹고 같이 운동하며 지냈음에도, 긴 투병의 끝은 이상하게도 갑작스러웠다.

“더 이상 엄마가 아프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마지막을 함께해 다행이다”

그런 생각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할 수 있었다. 엄마의 죽음 직후엔 삶의 무상함에 대해 오래 곱씹었다. 그렇게도 성실히 살아온 엄마에게 이런 죽음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제 이곳에 더 이상 엄마가 없다는 사실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엄마를 영영 놔줄 수 없었다. 이별이 두려웠다.


최근 진단받은 내 병은 희귀 난치성 자가면역질환이다. 뚜렷한 원인도 없고, 완치약도 없다. 증상은 제각각이라 어떤 사람은 근육이 무너지고, 또 누구는 뇌나 장기가 손상된다. 다행히 위험군으로 전이되지 않는다면 생존율은 높다. 10년 생존율이 80-90% 니, 사실 일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더 건강을 신경 쓰며 살아가기에, 나는 오히려 더 오래 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병 앞에서 죽음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엄마의 죽음처럼 준비되지 않은 작별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떠나는 나도, 남겨질 이들도 서로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고 웃으며 작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괴테는 인간의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닌, 삶이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이해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모두 선택과 후회, 수정을 반복하며 미완의 존재로 어딘가를 향해간다. 죽음은 그 진행의 끝에 있고 더 이상 추가나 수정이 불가능해지는 시점이다. 즉, 마지막 페이지가 닫히는 순간인 것이다. 마치 하나의 작품을 매듭짓듯. 영화가 끝나야 전체 맥락을 이해하게 되듯이 삶도 마지막 장을 닫아야 비로소 의미가 드러난다.



Zum Augenblicke dürft’ ich sagen: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
순간이여, 잠시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 파우스트, 괴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슬픔을 내려놓고, 엄마의 마지막 장을 덮기로 했다. 고단한 삶을 치열하고 성실하게 마주한 엄마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이별 역시 죽음에 대한 괴테의 정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별은 관계의 끝이 아닌 완성이다. 엄마와의 이별 속에서 나는 그 관계를 비로소 완성했다. 그녀의 삶을 오롯이 이해하게 됐고, 엄마가 내게 준 모든 사랑을 온몸으로 기억하게 됐다. 내가 태어나 처음 맺은 관계인 엄마. 그 관계의 완성은 또 다른 사랑의 형태로 이어져,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힘이 되었다.


오늘 우리는 또 미완의 하루를 살았지만 괜찮다. 오늘이 가기 전 조금 더 많은 사랑으로 채우고 기록한다. 그것이 언젠가 다가올 남편, 아이들, 그리고 나를 아끼는 이들과의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내가 하는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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