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
온몸이 시리고 타는듯한 통증이 지나가면, 가장 먼저 아이들이 보고 싶다.
"얘들아" 하고 부르면 아이들이 내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 파고들어 눕는다. 첫째는 이미 나보다 커서 내가 안겨야 할 판이지만, 그래도 몸을 웅크려 내 품으로 들어온다.
"사랑해. 엄마가 많이 사랑해. 영원토록 사랑해."
죽음 앞에서조차 해리에게 남긴 릴리의 마지막 말이 사랑이었듯, 나도 아이들에게 사랑의 주문을 건다. 내 사랑이 마법처럼 이 아이들의 삶을 지켜주길 바라면서.
주방에서 남편이 재료 하나하나를 고르며 내 몸에 이로운 음식을 차린다. 산책길에서는 내 손을 꼭 잡는다. 그의 모든 노력이 곧 ‘사랑한다’는 말이다.
"고마워 여보. 오늘도 정말 맛있었어. 당신과 함께 걸으니 참 좋네. 이 시간이 꿈같아."
나는 그 정성과 수고를 가능한 한 크게, 그리고 자주 말로 표현하려 애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사랑을 말하기보다 미움과 이기를 먼저 드러낼 때가 있다. 분주한 일상의 반복 속에 하루의 소중함, 그 하루에 함께 한 사람들의 고마움을 잊어버린다. 그러다 어느 날 사랑이 식었다고 착각하거나, 사랑은 원래 어려운 것이라고 단정한다.
게리채프먼은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 라는 그의 저서에서 사랑의 표현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안내한다.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듯이 사랑에도 각자의 언어가 있는 것이다.
긍정적이고 격려하는 말로 사랑을 확인받는 사람,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사랑을 느끼는 사람, 선물을 받으며 사랑의 증거로 여기는 사람, 필요한 일을 대신해 주면서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 신체적 접촉을 통해 따뜻한 사랑을 주는 사람.
이렇게 사람마다 주된 사랑의 언어가 모두 다르다.
사랑의 언어는 비단 연인사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친구 간에,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관계에서 가능하다. 나는 아들에게 볼뽀뽀를 하며 사랑을 표현하지만 아들은 스킨십을 싫어한다. 반면 아들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사랑과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잘 들어줄 때 행복해한다. 아들이 스킨십을 싫어한다고 해서 왜 내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투정할 수 없다. 더 나은 모자관계를 위해 나는 그의 사랑의 언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을 말하는 법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상대방이 듣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낮추고, 상대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의 언어를 강요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사랑의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사랑을 오래 지켜내는 가장 아름다운 실천이다.
증상이 다시 심해지는 날에도, 기운이 좀처럼 나지 않는 날에도 나는 가족들에게 사랑의 언어를 꼭 하나씩 하기로 결심했다. 오늘이 사랑을 표현할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사랑을 건네게 된다. 남편에게는 "당신은 오늘도 최고야." 라는 인정의 말을, 딸과는 옆에 나란히 누워 꼭 안아주는 시간을, 아들에게는 본인이 흥미로워하는 이야기를 신나게 조잘대도록 힘껏 맞장구를 쳐준다. 그렇게 하루에 남긴 작은 사랑의 언어가,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