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살아보는 수밖에 없는 삶처럼, 결단코 퇴고하지 않겠습니다.
칠월에 시작한 연애는 삼월에 끝이 났다
네 번의 여름이 가고, 네 번의 가을이 가고, 네 번의 겨울이 가고, 세 번의 봄만에.
우리는 무려 열다섯 계절을 같이 보냈구나
어쩌면 너를 가장 온전히 사랑한 날은 우리가 헤어지는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사랑할수록 사랑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못된 버릇이 있어서
너를 보냄에 있어서는 더 이상 그런 애는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자꾸만 그런 애를 써왔다는 사실을 안 날부터 나는 빌고 또 빌었다
제발 너를 그저 사랑해 줄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우리의 마지막날 나는 너와 온전히 연결되었고
우리는 껴안아 울었고 늘 그랬듯이 손을 꼭 잡은 채 이별했다
네가 떠난 다음날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비가 그친 다음날은 3월 다운 추위가 매콤했고
그다음 날이 되어도 다행히 꽃들은 피어나지 않았다
서른에 만난 너와 나는 마치 십 대의 소년과 소녀처럼 사랑했지
너와 함께하던 순간에만 비로소 갑옷을 벗고 나오던 그 엉뚱한 소녀를 나는 다시 볼 수 있을까
네게만 온종일 쫑알대던 수많은 얘기들이 갈 곳을 잃었어
네게 공유하고 싶은 귀엽고 웃긴 것들은 내 안에서만 맴돌다 사라지고
그래도 우리가 함께 있는 사진들이 아프기보단 소중해
너를 나의 결핍을 채워주는 사람이라 여기며 너를 채근하던 순간들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건 사랑이 아니라며 너를 탓하고
그러다 어느 날은 너는 그저 너로 내 곁에 있는 것임을 알게 되고
사랑 아닌 것은 사실 아직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임을 알게 되고
내가 더 많은 너를 사랑할 수 있게 되어서
헤어지는 것과 너를 사랑하는 일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까지가
나의, 너라는 일기장에 담긴 내용일 거야.
네가 나와 꼭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아
덜 울게 될수록 더 많은 낯선 공기가 우리를 가득 메우겠지만
아마 생각보다 싫지는 않을 거야
심바는 우리가 각자의 삶을 돌다가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마주치게 될 거래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건 서로가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느껴질 때이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네게 사랑을 보내
잘 지내고 있어,
나의 늦은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