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험가이다.
모험가는 모험의 목적만이 있을 뿐, (혹은 그마저도 없어도 좋다)
목적하는 종착지가 있는 직업은 아니라는게 내 의견이다.
나는 물살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파도를.
아니 망망대해라기보단, 험난한 강의 중,상류 쯤을 떠내려온 것으로 하자.
나는 폭포와, 곳곳의 장애물들과 조우하며,
때로는 고인 물에 머무름, 때로는 바람에 의해, 때로는 급류에 의해 떠밀려 간다.
나는 뒤돌아볼지언정 거스르지 않는다.
내게는 노가 없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때의 배움과 깨달음과 선택을 노삼아 나아간다.
옮고 그름의 선택이 아닌 모험의 모험을 위한 선택이다.
최근, 아니 올 상반기는 또 하나의 거대한 물살을 만나 낙오되지 않는 것만이 내 목표였다면,
지금은 잠시 경치좋고 한가로운 넓다란 호수 즈음에 등을 뉘이고, 여기는 어디인가 구경할 시간이 생겼다.
오늘은 청소도하고 목욕도 했다.
음. 잠시, 내가 몸을 맡겨 함께 모험을 해 온 이 배를 정비함과 같다.
이 배는 어떤 배인가하고 생각해보고 싶은 뜻밖의 연휴의 마지막 밤인게다.
<돛단배>
이 배는, 아니 내 모험은 2003년 2월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는 지푸라기라도 잡으며 모험하지 않으려 발버둥쳤던 시간이었다.
물살을, 꺾어진 나무나 예고없는 날카로운 바위 등을 원망하면 원망할수록
더 거칠게 나를 휘갈기고 찢으며 어떻게든 그 급류를 타게끔 만들었던
꽤나 잔혹했던 시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그냥 그 모든게 무섭고 끔찍하고 다 누구의 탓인 것만 같아서
그렇게 울며부르짖느라 내가 어디 쯤인지, 이 계절은 어떤지, 오늘 이 곳의 물 온도는 이렇구나,
단풍이 어떻구나, 여기 물의 색은 어떻구나,
그 이유는 물은 언제나 하늘을 비추기 때문이구나 하는 등등의 것을 고민하고 살펴볼 여력이 없었다.
그래, 어쩌면 어느날 나는 비로소 그 모험을 받아들이기로 했나보다.
그 때 나는 맨몸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 나는 나무조각들을 모아 붙여도 보았고, 그러다 그게 부서져도 보았고,
잎을 엮기도 해봤고, 어디서 나가 떨어진 철판 같은데 돛을 달아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이제 강의 하류 쯤 내려 온 걸까.
더이상의 험난함은 없는걸까를 걱정하며,
험난함보다는 제대로된 항해가 가능한 돛단배를 만드는 일에 시선을 옮기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러게, 분명히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지친 모험에 한 숨 돌릴만한 시간과 무언가를 준비할 법한 여력이 생겼을 때,
유일한 나만의 공간인, 이 배를 단장하고 싶다고.
그러나 또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급류나 자연재해로 부서져 버릴까
무서워서 내가 이것을 만들어도 되는지하고, 그런 고민을 꽤 오랫동안 한 것 같다.
어쩌면, 그 고민을 지금도 하고 있는 걸 보니,
나는 꽤 오랜 시간동안 옛날같이 험난한 급류를 탄 적은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아마 내 성격에 나는 그 고민을 하는 동안, 배를 꽤 멋들어지게 만들기 시작했을거다.
내가 최근 그 어떤 센 물살에 정신이 없어 잠시 배를 정비하는 일을 놓고있었다한들,
나는 강의 중,상류를 거쳐오며 쌓아온 나의 지혜와 현명함이 깃든 그런 배를 만들고 있을거다.
<노>
나의 노는 그러했다.
나의 노는 때로는 종이와 펜이 되었고,
때로는 지난 실수에서의 배움이 되었다.
때로는 시행착오가 되었고,
때로는 노를 다 놓아버리는 것을 노 삼을 때도 있었다.
나의 노는 어딘가로 나아가기 위한 노가 아니다.
저어야하기 때문에 저어야 하는 노이며,
내 손에 쥐어졌기에 저어보는 노이며,
그냥 호기심에 한번 갈라보는 물살이다.
그렇게 수많은 순간들의 수많은 노 저음이 어쩌면 나를 '무사히' 이곳까지 오게 하였으리다.
내가 만들 줄 알게된 경험의 노,
어떤 상황에 어떻게 저어야하는지 알게된 지혜의 노,
그리고 때로는 맨몸으로 맡겨보는 용기의 노,
그 모든 노들이 이제는 그 어떤 큰 물살 앞에서도 나의 선택을 지지해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되기를 바란다.
<항해>
항해라는 말을 붙여도 되는지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아마도 이제 망망대해를 모험하게 될 터이니, 감히 미리 그 단어를 써보기로 한다.
내가 이 모험을 떠나,
내 들리고 싶은 곳에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고 떠나기를 반복하다
언젠가 여기서는 더이상 떠나고 싶지 않아 라는 마음이 드는 그런 곳을 만나게 되려나.
나는 아직 내 소박한 돛단배에 다른 누구를 태울 자신은 없지만,
나와 비슷한 항해를 하는 또 다른 작은 돛단배가 나타난다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일구간을 누군가와 함께하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때로는 서로의 노를 바꿔보기도 하고,
바닷가 한 가운데 모닥불을 피워두고 각자의 모험담을 얘기해 보는 그런 날이 내게도 있을까.
내가 15년의 항해를 하면서 스쳐지나간 모든 인연에게
그때 내 곁에 머물러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것에 강의 하류쯤에 다다른 나의 아주 많이 늦은 성숙함의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