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디 머큐리의 마흔
애인과 헤어진 뒤로 영화를 극장에서 본 일이 없다. 근데 그게 벌써 몇 년 전 이야기니……(잠시 묵념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 십대 때부터 혼영을 즐겼던 나이건만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혼영이 싫은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물론 강렬하게 극장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한 영화들은 있어왔다. 그러나 결국은 늘 귀차니즘이 승리했다. 그런데,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낸 막강한 영화가 등장했으니 바로 <보헤미안 랩소디>다. 뭐 사실 장안의 화제이다 보니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이 해변에 모래알 한 알 보태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으나…… 이 영화의 마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동지들을 떠올리다가 그림을 그렸다! 두둥~
사실 그 시커먼 느낌의 커버를 패러디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각도랑 그 빛의 묘한 구조를 표현할 능력이 안 되는 관계로 느낌만 살려서 그렸으니 너무 비난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란다. (특히 프레디 오빠, 지송!)
어쨌든 글쟁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뭐라도 쓰고 지나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나도 쓴다, 영화 감상문.
퀸의 음악은 그냥 늘 혈관에 흐르는 자연스러운 무언가였다. 이미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어머나, 내가 이런 말을 다 하게 되다니, 요즘은 좀처럼 그럴 일이 없었는데, 기쁘구만!) 그들의 음악을 도처에서 들어왔으니 당연한 말씀. 어디 클럽 같은 곳 가서도 밴드들의 커버음악 듣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퀸의 곡들이 나오면 꺅꺅 소리 질러가며 신나게 들었던 기억도 많다. 레퍼토리가 주는 힘이랄지.
처음 이 영화의 예고편을 발견한 순간 촉이 왔더랬다.
‘이건 무조건 극장에서 봐야 한다.’
여전히 혼영은 좀 싫어서 평소에 퀸의 음악을 틀어 놓으면 “넌 그렇게 꼭 시끄러운 음악을 크게 틀고 들어야겠느냐”며 잔소리를 날리셨던 박여사님을 모셨다. 영화관 앞에서조차 <신비한 동물사전2>에 미련을 두셨으나 1편을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다고 마구 우겨서 <보헤미안 랩소디> 보러 영화관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이제 박여사님은 퀸의 음악 열성팬이 되셨다. 우리는 마주앉기만 하면 퀸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바쁘고 나는 안심하고 노동요로 퀸의 음악을 볼륨 매우 빵빵하게 틀어 놓고 일할 수 있게 된 것.
특히 라이브 에이드 공연 실황 부분을 자주 틀어두곤 하는데 놀랍게도 당시 방영권을 가지고 있었던 M 본부에서 편집본을 방영한다고 해서 잠도 안 자고 기다렸다가 봤다. 모니터보다 큰 화면으로 보는 감동이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을까, 저 사람들을 퀸의 음악으로 똘똘 뭉치게 만들고 한마음이 되게 했을까, 영화는 어쩌면 그토록 완벽한 싱크로율로 저 공연을 재연해낸 것인가, 등등의 감탄 및 박수치고 노래 따라 부르며 보고 있다가 잠시 멍해지고 말았다.
‘프레디 머큐리, 저때가 딱 지금 내 나이였네!’
1985년은 1946년생인 프레디가 우리 나이로 마흔살이었던 것!
지금 저 무대 위에서 수많은 관중들을, 심지어 수십 년이 흐른 뒤에 TV 앞에 앉은 혹은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영상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전세계의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저 마성의 남자가 마흔이라니. 그렇다고 그와 나를 비교하며 한없이 나를 낮추려는 의도를 가진 건 아니다. 비록 그게 허구일지언정 어느 정도는 실제 그의 삶에 기반을 둔 채 제작되었다 하니 나는 영화를 통해 본 그가 저기까지 오르기 위한 과정을 반추해보고 싶을 뿐이다.
이름도 낯선 곳에서 태어나 인도에서 살다가 영국이라는 의외로 보수적인 사회로 진입하게 된 다방면의 소수자. 적어도 그에겐 꿈을 실현하고 재능을 펼칠 수 있을 정도의 좋은 운이 따라주었다. 사실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불과 십 년 정도 전만 해도 영국 어느 지역 펍에서는 액센트만 잘못 구사해도 재수없으면 린치 당할 수도 있을 정도로 참 그 나라가 어쩌다 신사의 나라로 알려졌는지 알 수 없는 미스테리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혹시라도 우리의 프레디가 멤버들을 만나기 전부터 크게 다쳤으면 어쩔 뻔했는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사람이 때가 있다는 말이 허튼 소리는 아닌 게 이 넷이 만나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니… 때라는 걸 영어로는 타이밍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인생은 타이밍인 거다. 그렇게 결성된 퀸이라는 밴드가 주옥 같은 곡들을 뽑아내고 폭발적인 무대를 만들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시대라는 것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일정 정도 이상의 성공은 반드시 시대의 흐름이 맞아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성공은 하지만 그는 참 외로운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지만 자신의 성적 취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에 떠나보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메리도 프레디도 현명했다고 느꼈다. 누구든 하나가 고집을 피웠다면 그래서 표면적으로라도 진실은 숨긴 채 살아야 했다면(그 시절에는 그런 커플들도 꽤 많았으니까) 둘 다 얼마나 더 불행했을까. 서로에게 정신적 버팀목으로 살아갈 수 있는 대상이었고 각자의 인생 동반자가 있었으니까 무조건 함께해야 하는 것보다 덜 불행했을 것이다.
프레디는 그러다가 그 시절에는 걸리면 그냥 죽는다고 생각되었을 정도로 무서웠던 에이즈에 걸리고 만다. 영화와는 달리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올랐을 때 스스로 에이즈에 걸렸다는 걸 몰랐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계속 감탄하고 주목하는 건 그가 단 한 순간도 삶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폭발적인 무대를 보라. 다른 그 어떤 뮤지션이 공연을 했을 때보다도 관중의 반응이 뜨거웠다. 자신을 음악가 혹은 예술가가 아닌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온 걸 너무나도 완벽하게 책임지고 있다. 저 사람은 정말 훌륭한 어른이라고, 나는 공연 영상을 보는 내내 전율하며 생각했다.
그리고 불과 6년 뒤에 프레디는 그 불꽃 같았던 삶을 마감한다. 죽기 하루 전날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지. 이 또한 너무나 대단했다. 다시 한 번 멋진 공연자로서의 자신이 남길 바라는 그의 강한 의지를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리고 정말 끝까지 무언가 창작하고 발표하기 위해서 애썼다는 걸 볼 수 있는 동영상 자료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죽음의 그림자가 자꾸만 자신의 위로 드리워지는 걸 알았을 때…….
하지만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삶 쪽을 선택했다. 아마도 지금 <보헤미안 랩소디>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으며 신드롬을 일으키는 건 프레디 머큐리가 최선을 다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의 엔딩에 나오는 ‘The Show Must Go On’이 그가 죽기 6주 전에 혼신의 힘을 다해 one take로 완성해서 발표한 작품이라는 것을 아시는지. 그에게 Show는 Life였다. 그래서인지 이제 난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가 “Life must go on!”이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린다.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으나 나의 삶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나는 그 삶을 최대한 내 나름의 아름다움으로 채우고 싶다. 그리고 지금 이토록 강렬하고 깊숙이 남은 영화의 여운이 부디 나를 불꽃처럼 살다 간 한 남자처럼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한 걸음 더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