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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곧 Nov 13. 2024

해외 공학 박사까지 해놓고 가부장제로 편입되겠다고

스스로가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 박사의 메타 인지


유학을 끝내고 한국에 와있던 얼마 간은 사실 기분이 썩 괜찮았다. 누가 뭐 하느냐고 물어보면 경쾌하게 ‘아 백수예요~!’ 하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금방 뭐라도  줄 알았기 때문에 당당했다. 동네 헬스장에 다니면서 근력 운동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나름대로 즐겁게 지내면서 몇몇 포닥* 자리에 지원했다.

*포닥: Postdoctoral researcher / 박사 후 연구원. 박사는 최종 학위이니 박사면 박사지 박사 후 과정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데, 요즘은 박사를 받은 후에도 연구자로서 수련을 더 쌓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다음 진로는 금방 정해지지 않았고, 예상치 못하게 백수 생활이 길어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 혼자 몰래 김칫국 마시고 있었던 자리가 몇 있었는데 막상 물어보니 가까운 미래에는 누구를 새로 뽑을 펀딩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연구실과는 이야기가 술술 풀리고 있었는데 (막 당장 비행기 표를 사줄 테니 방문을 하라고 하였다) 하루아침에 엎어지기도 하였다 (앗 미안, 알고 보니 우리가 이번에 예산을 너무 많이 당겨 썼지 뭐야).


연구실을 옮긴 후의 지도교수님이었던 B 교수님께 연락해서 징징거렸더니 ‘그러게 내가 졸업 1년 전부터 진로 알아보라고 말하지 않았니하시는 것이다. 교수님께서는 늘, 학계의 펀딩이란 진공과 같은 것이라서 드물게 잠시 생기더라도 금방 없어지고 만다고 말씀하시고는 했다. 그러니까 미리미리 연락을 돌려놓았어야 했다고. 아니 예, 뭐, 맞긴 한데 제가 그럴 겨를이 어디 있었나요. 저는 제가 연구를 계속하고 싶은지 아닌지도 몰랐는걸요. B 교수님도 ‘뭐 그건 그렇지. 그래도 나는 진작 조언을 해줬다는 건 알아두렴. 하시는 것이다. 아니 뭐, 예……, 그랬네요. 


공동 지도교수님이었던 S 교수님께도 여쭤보았는데 이 분은 또 아주 느긋하고 낙관적인 분이셔서 ‘네가 걱정이 많다니 안 되었구나. 하지만 결국 다 괜찮을 거란다. 어딘가는 맞는 곳이 있겠지.’ 하시는 것이었다. 나도 결국 괜찮을 것임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한참 심란할 때는 그것을 믿기 어려웠다. S 교수님은 실질적으로 포닥 지원에 관한 도움도 많이 주셨는데, 그럼에도 지원이 생각만큼 잘 풀리지는 않았다. 사실 교수님 말씀으로는 내 지원서에 대한 반응이 평균보다 훨씬 괜찮은 편이라고 하셨는데 (즉 보통 100 군데쯤 연락하면 10 군데쯤 답장이 올까 말까 하다는데 나에겐 절반쯤은  지금은 펀딩이 없다는 답일지언정 — 답장이 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뭐 해, 당장 되는 게 없는걸……. 괴로웠다.




몇 년 만에 만난 친척 할아버지 한 분은 ‘야 너 박사 학위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아야 돼. 결혼하고 애를 낳아야지.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해가는 거야.’ 하고 말씀하셨다. 이 분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대체로 무례했던 분이라 그냥 ‘엥 아닌데여’ 하고 말았지만, 이 비난에는 뭔가 좀 상징적인 데가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이쯤에서 한국에 온 김에 그냥 한번 해 본 건강 검진에서 좀 심란한 결과가 나오면서 다행히 재검 결과 아닌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그 며칠 동안 땅을 엄청 팠다 — 나는 갑자기 사는 것에 대해 전반적으로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도 좀 오바기는 했지만 내 생각의 흐름은 이런 식이었는데,


- 어느 날 갑자기 크게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지? 나는 지금 모아둔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직장도 없는걸. 당장 취직한대도 채용 건강 검진에서 걸릴 것 아냐. 그럼 공무원 밖에(?) 할 일이 없나?

- 게다가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상태로 누굴 만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 아니 그러면 내 인생에는 ‘평범하게’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하는 미래가 없단 말이야?


내가 꼭 아이를 낳아야겠다거나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그게 내 선택과는 상관없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두려웠다.


그런 내 논리 흐름에 굉장히 많은 극단적인 가정과 비약이 들어갔음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또한 알면서도 공무원 시험, 결혼 정보 회사, 난자 냉동 등에 대해 알아보다. 그리고 나를 스쳐 갔던, 어쩌면 인연이었을지도 모를 사람들과, 나랑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결혼 상대자’로 보일 것 같은 동기 남자 녀석들과 (나는 소위 명문 공대 출신 고학력자고 동기들도 그렇다.), 남성은 최종 학력이 높아질수록 결혼 확률이 높아지는데 여자는 고졸 이상부터 오히려 떨어진다더라 하는 이야기 등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또 한편, 박사를 하던 기간과 이 백수 기간 동안 부모님이나 오빠와의 관계가 좀 더 편안해진 것도 문제에 이상한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가까이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이전과는 다른 소속감과 편안함을 느꼈고, 그러다 보니 연구의 성취에서 오는 만족감이 그저 지적 허영 같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던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이전 지도 교수는 과학을 한답시고 이상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게 아닌가.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게 아닌데.


나도 이제는 '보통 사람처럼' 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사는 게 '진짜 행복'해지는 길인 것 같은데. 적당히 돈을 벌고 적당한 일을 하고 적당한 사람과 적당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식으로 급격하게 삶의 방향을 튼다고 생각하면 조그만 상자에 구겨져서 들어가것 같은 느낌이 언뜻 들었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이케 이케 착착 접어서 잘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스스로를 구겨서 상자에 집어넣으려는 생각은 이렇게도 나타났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내가 결혼 상대자로서 얼마나 가치가 떨어지는가 하는 생각으로. 결혼 적령기를 살짝 넘어가고 있는 나이, 외국 거주 경험, 고학력, 아마도 경쟁적이고 스트레스가 가득할 커리어, 혹은 지금 상태가 이어지면 모은 돈 없는 백수.


흠, 게다가 아이는 혼자 자라는 게 아니니 부모의 헌신이 필요할 텐데, 아무래도 그건 여자인 내가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은데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하고 연달아 생각하면서도), 믿음직하고 가정을 잘 책임질 정도로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서 짝을 이루는 것 만이 방법 아닌가. 깊은 생각까지 통하고 가치관과 생각의 결이 비슷한 짝꿍을 바라는 건 내가 너무 비현실적인 기대를 한 거였다. 그냥저냥 견딜 수 있는 정도면 되는 게 아닌가?


갑자기 결혼과 출산이 지상 최대의 과제인 것만 같았고, 그게 가능하려면 남자의 능력에 의존해야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남자들이 반길 만한 상대자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감탄했다.


‘와 씨, 가부장제 말 되네….




그래서 한국에 있는 동안 선이라도 보셨어요?


내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이렇게 물었는데, 실은 이런 생각만 잔뜩 하고 별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렇게 느끼고 있는 스스로가 정상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했다.

암, 우울할 때는 인생에 대한 중결정(이를테면 결혼, 이혼, 이직, 퇴사, 이사 등)을 내리지 말라고들 하는 걸. 이런 변화가 꼭 나쁜 방향으로 이어지지야 않겠지만 그건 인생을 운에 맡기자는 것이고, 판단력이 떨어졌을 때에는 현상 유지라도 하는 것이 옳아. 지금까지 해온 공부를 그만두고, 성역할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고, 파트너에 대한 기준을 말도 안 되게 낮추고, 급하게 결혼과 출산을 하는 게 바로 지금 하지 말아야 할 일이지.


이런 생각도 들었다.

결혼 적령기를 놓칠 것 같을 때 여자들이 급한 마음에 결혼하는 수가 있다더니. 이런 기분으로 하는 거겠구나. 이럴 때 결혼이 급한 남자를 만나거나 하면 일이 호로록 흘러가버릴 수도 있겠어. 정신을 차려야지.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은 막지 못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막았다. 보아라 이것이 박사의 메타 인지!




아무래도 스스로가 좀 이상해진 것 같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대부분은 나의 어이없는 생각의 흐름에 흥미로워하는 한편 나를 말렸다. 나와 잘 모르는 사이인 사람들도 내 얘기를 들으면 나를 말렸다. 친척 할아버지 같은 사람 주변에 많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아무 놈이나 적당히 잡아다가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 할 것 같다고 하자, 주변의 반응은 꽤 다채로웠다.


친구 D: 그 아무 놈 말도 들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


친구 J: 아니다, 급한 남자는 언제나 있으니 얘에겐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다. 아니 너 근데 왜 이러냐?


친구 W: 엥? 아니? 엥? 네가? 그런 생각을? 제일 안 그럴 것 같은 네가?


친구 E: 컄캬캬캬캬캬캬ㅑ


친구 K: 아니 뭐, 그런 생각 자체는 자연스럽긴 하지. 대부분의 사람이 재생산을 하니까 인류가 유지되는 거잖아. (맞네.) 아무튼 그래도 그건 좀.


친구 X: 너는 회복 탄력성이 있는 사람이니 어느 방향이든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만, 근데 생각을 해 봐? 포닥은 2년 정도고 아이는 못 해도 20년어치 책임인데 지금 그걸 하는 게 맞아?


선배 M: 아니 만나려면 아무 사람이나 하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야지! (그리고 실제로 소개팅을 시켜 주었다. 이게 내가 지금까지 유일하게 나가본 소개팅이다.)


선배 H: 네가 지금 갑자기 소속도 없고 아무도 너를 알아주지 않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아니야? 이 시기만 잘 넘기고 나면 앞으로 괜찮을 거야. 나도 포닥 자리 구하던 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 근데 너 진짜 객관적으로 실적 괜찮다니까? 좀만 더 하면 돼.


선배 L (아들 셋, 주말 부부,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쪽): xx아. 그건. 아니야.


언제나 온화하고 따뜻했던 L 언니에게서 그렇게 단호한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


친구 J는 심지어 이렇게도 말했다.


야 너는 지금 가부장제의 귀신이 들린 거야. 너 결혼이 아니라 퇴마를 해야 돼.


그 말도 맞는 것 같았다.




최근에 외국으로 포닥을 나와서 알게 된 어느 박사과정 여학생 F의견은 이렇다.


근데 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거야? 봐봐, 나도 아이를 원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공감해. 네가 아이가 있는 인생을 원한다적당한 때에 방법을 찾아서 아이는 낳으면 되지만, 결혼은 아무나랑 하면 안 되는 것 아냐? 이상한 배우자가 얼마나 인생을 힘들게 하는데. 아이야 낳을 수 있는 거지만 아무나랑 결혼하는 건 안 되지.


그것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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