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으로 보기엔 별로 나쁠 것도 없었다.
건강에 별 문제 없고, 그럭저럭 평범한 집안 환경에 좋은 교육을 받아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고, 내가 아무 놈이나 잡아 결혼하겠다고 하면 말리면서 밥을 사주는 친구들과 선배들이 있었다. 공부하느라 돈을 모으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빚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집안의 기둥뿌리를 뽑아 먹은 것도 아니다. 또 사회에서 쓰일 수 있을 능력과 자잘한 재주와 여러 경험이 있었다. 박사 학위 후에 몇 달쯤 쉬었다고 해서 이력에 크게 흠이 될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미래 계획과 뚜렷한 하는 일 없이 있었던 이 시기에 나는 자주 괴로웠다. 기분 전환 삼아 산책을 하러 나가보면 일과시간에 일 없이 돌아다니는 젊은 사람은 나뿐인 것만 같았다. (사실은 꽤 많을 ‘일 없는 젊은 사람들’이 밖에도 안 나오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좀 걱정이긴 하다.)
어느 순간에는 불안과 괴로움이 너무 심해져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겨우 얕게 잠들었다가 금방 깨면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헛구역질이 나고 숨이 막혔다. 구역감을 가라앉히려 일어나 앉아서 어두운 방 안을 응시하면 현실감이 없었고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했던 건지는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남들이 보면 부러워할 수도 있는 조건이라는 걸, 삶이 이만큼이나마 되는 것도 일종의 특권일 수 있다는 걸 안다. 어딘가엔 내가 쓰일 곳이 있을 거라는 걸 나도 잘 알았다. 그러나 그것을 안다고 해서 목이 졸리는 느낌을 받으며 선잠에서 깨어나는 밤들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시간대가 다른 나라에 있는 연구실들과 온라인 미팅을 할 때면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대중없었다. 어떤 때는 아침 6시에, 어떤 때는 밤 1시에 미팅이 잡혔다. 긴장한 채 밝은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기까지 했으니 미팅 후에 불을 끄고 누워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정신건강에는 규칙적인 수면이 중요하다는데 내 불안정했던 정신 상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정이었다.
박사 후 연구원 지원을 하려고 연구실들을 알아보다 보니 교수님들과 박사 후 연구원, 연구실 학생들의 이력서나 실적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것 또한 비교의 늪이었다.
‘대학 졸업 연도를 보니 나보다 한참 어린 것 같은데 실적이 이렇게나 많네. 이 교수님은 최상위권 명문대를 조기졸업해서 훌륭한 연구실들에서 연구 경험을 쌓고 바로 교수 임용이 되었구나. 내가 교수가 되더라도 저렇게 실적을 계속 내진 못할 것 같은데 저 사람은 연구를 정말 잘하고 사랑하는 걸까? 연구는 바로 저런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닐까? — 내가 아니라?’
(*이에 대해 공동 지도 교수 S 교수님은 나에게 ‘그건 SNS에서 사람들이 선택적으로 전시하는 삶을 보며 괴로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하셨는데, 맞는 말씀이다.)
이 시기에 내 생각은 온통 나를 향했다. 누구의 이야기를 듣든 이야기나 그 사람 자체를 생각하기보다는 금세 나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침잠했다.
우와 멋지다. 참 잘 됐네. 좋은 일이야. — 그럼 나는?
이 ‘그럼 나는?’이 아무런 당위성도 없이 자꾸만 따라붙었다.
저 친구가 이번에 결혼을 하는구나. — 그럼 나는?
친구가 저 대학에 교수 면접을 보는구나. — 그럼 나는?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친구의 소식을 들어도 (그것도 MIT였던 것이다),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해서 벌써 직장 연차가 10년 가까이 되었다는 후배 이야기를 들어도 (그것도 알아주는 대기업이었고) 나만 뒤처지고 있는 것 같은 조바심이 들었다.
반대로 내가 ‘앞서나가고 있는’ 듯한 부분이 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상대가 나보다 나은 점을 (혹은 내가 불쌍한 점을) 찾아내서 기분이 상했다.
예를 들어 나와 비슷한 나이에 아직 대학원 학위 과정 중인 친구들을 볼 때면, 저 친구는 예전에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저 친구는 결혼을 해서, 저 친구는 연구 분야가 나보다 실용적인 것이라서, 저 친구는 오래 만난 연인이 있어서 나보다 인생을 잘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알게 될 때면 그에게 안정적인 직장이 있는지, 몇 살 정도 되었을지,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를 어느새 추측하고 내 상황과 비교하며 모종의 피해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
내가 스스로를 필요 이상 볶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내가 하는 비교가 쓸데없으며 사실은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못난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인식하면서도 생각을 멈추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성큼성큼 자기 인생을 걸어 나가는데 나는 이상한 허상을 쫓다가 인생의 길을 완전히 잘못 들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딱히 없는 것 같았다. 적당한 흥미를 느끼는 일과 어느 정도의 재능을 가진 분야는 많지만 그중 무엇도 남과 경쟁까지 해가며 내 위치를 쌓아갈 만큼 뛰어난 것 같지도, 그게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학계를 여전히 동경하면서도 그 이면에 대해 냉소하고 분노하는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 안에서 안락하게 머물고 있는 듯 보이는 이들이 부러운 한편 억울하고 약간은 화가 났다.
그리고 좀 무서웠다. 상황이 나아져야 기분도 나아질 것 같은데, 기분이 워낙 바닥을 치고 있으니 상황을 바꾸기 위한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점점 나빠지는 것도 같았다.
불안과 시간대 문제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낮에 깨어있는 동안에도 정신이 흐리멍덩했다. 머릿속이 흐릿하다 보니 좋은 기회가 왔음에도 준비를 미루다 인터뷰를 망치기도 했다. 연구자로서 동경하던 어떤 유명한 교수님과의 인터뷰가 잡혔는데 내가 왜 지원하는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피곤할 때는 영어도 잘 안 나왔다. 지원 동기나 앞으로의 계획 같은 질문을 받으면 왜 이런 쓸데없는 걸 물어보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짜증이 났다.
생각이 잘 이어지지 않고 말로 표현도 잘 못 하겠다 보니 스스로가 멍청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멍청해진 느낌과 더불어 무책임하고 한심해진 느낌도 들었다. 무엇을 해내려 할 때 마주치는 아주 조그만 턱조차 넘기 어려웠다. 스스로에게도 변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고 사소한 것들 때문에 할 일을 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이메일 제목을 뭐라고 쓸지, 발표 자료 배경을 무엇으로 할지 같은 사소한 것들을 정하지 못해서 그 일을 못 했다. 별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자기 역할을 안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할 기분도 아니었다. 대체로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기분이었는데 여전히 문득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면,
이상한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런 채로 좀 있어보기로 했다. ‘살다 보면 괴로울 때도 있는 거고 잠 못 이루는 밤도 있는 거지 뭐. 좋은 기회를 멍청하게 놓치는 일도 일어나는 거지. 사람이 멍청한 시기도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은 괴로운 스스로를 2차, 3차로 볶는 일부터 덜 하기로 해봤다. 여전히 괴로웠지만 차츰 견딜 만해졌다.
그리고 누가 뭔가를 하자고 하면 별로 그럴 기분이 아니더라도 웬만하면 하려고 해 봤다. '그럴 기분'은 웬만해선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가 가자고 해서 몇 년 만에 놀이동산도 가봤고, 몇 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달리기를 하자기에 달리기도 하고, 멀리 다른 지방에 사는 친구네 집이나 오빠네 집에 가서 며칠 있기도 했다. 백수 상태인 게 민망해서 안 가고 싶었던 석사 연구실 홈커밍에도 다녀왔다. 졸업생들이 나 빼고는 다들 잘 지내는 것 같아서 좀 심란했지만 그냥 내 얘기 들어주는 사람마다 붙잡고 괴롭다고 하소연했다. 다들 사실은 자신도 그랬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도 아마 이 무렵의 일이었을 것이다. 당장 상황을 바꾸는 데엔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무엇이라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글이 무엇이 될지는 몰라도 한두 달은 꾸준히 하겠다고 다짐했더랬다.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옆 동네 구립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고 도서관 근처 재래시장에서 매생이 칼국수를 사 먹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시절이었다. 괴롭고 불안한 때가 많았지만.
상태가 좀 나아졌을 때쯤, 목이 졸리는 느낌을 받으며 깬 어느 밤에는 이런 이과생스러운 생각도 했음을 고백한다.
‘오 나 이거 알아. 몸과 마음의 생리학적 균형이 깨진 상태인 것이로구나. 교감 신경 어쩌구라고 했지. 해부학 교수님이 이럴 땐 배 깔고 누워서 숨 쉬는 게 도움이 된다던데.’
그래서 배를 깔고 엎드려 누운 채 숨을 고르다 보면 실제로 기분이 꽤 나아지고는 했고 그러다 보면 평소보다 쉽게 다시 잠이 들기도 했다. 다음 날 목이 무척 결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침에 이상한 자세로 발견되어 오빠에게 놀림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 오빠가 박사 백수 동생의 존재론적 괴로움에 대해 뭘 알겠냐.
아주 충실했다고는 할 수 없더라도 내 나름의 싸움에 열심이었던 박사 백수 시절이 그렇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