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그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지 않아
젠더 기반 차별 및 폭력 피해 지원 센터의 C는 나에게 ‘회복은 일관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꾸준히 나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전보다 못한 것 같은 상태로 굴러 떨어지기도 하면서 점차 회복하는 거라고 말이다.
새로운 지역, 새로운 학교에 와서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 보니 확 회복된 것 같은 순간도 있고 다시 제자리거나 오히려 퇴보한 것 같은 순간도 있다. 훌륭한 세미나를 듣거나 지도 교수님들과 신나게 과학 이야기를 할 때, 연구가 성큼 진행될 때, 학회에 가서 발표를 하고 학계 사람들과 연결된 기분을 느낄 때면 이제 괴로움도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땐 ‘내가 지금까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했던 거지?’, ‘어라, 그게 그렇게까지 괴로울 일이었나?’ 하고 의아할 정도로 가볍고 긍정적인 마음이 차오른다.
하지만 C의 말처럼 회복은 그런 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왠지 연구실 동료들과 잘 섞이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거나 그날따라 지도 교수님이 나에게 좀 뾰족하게 대했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들이 나를 수렁으로 빠뜨리는 때가 있다. 불안이나 사소한 무언가가 생활을 무너뜨리기 시작하면 이메일 답장, 운동, 청소, 빨래, 장보기 같은 일들은 고사하고 먹는 일, 제때 잠자리에 들고 제때 일어나기 같은 것들도 못 하겠는 것이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숏 폼 동영상 같은 것들로 채우는 날들도 여전히 가끔씩 찾아온다.
새로 시작한 연구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문득 버겁고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도 꽤 자주 있다. 학계 사람들에겐 흔한 문제지만 왠지 나는 별로 겪은 적 없었던 가면 증후군 ('임포스터 신드롬'이라던가) 같은 것을 나도 요즘은 느끼고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이나 경쟁자들은 다 훌륭한데 나만 자격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멀리서, 길게 보자면 회복의 과정인 것 같다. 요즘은 이런 날이 또 왔구나, 한다. 수렁에 빠진 기분을 조금 더 빨리 건져낼 줄 알게 되었다. 하루 이틀쯤 널브러져 있다가,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한다. 자전거를 타거나 운동을 가거나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거나. 대체로 무엇이라도 함으로써 저점을 빠져나온다.
요즘은 누가 나에게 박사를 어느 랩에서 했냐고 물어보면 짐짓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답한다.
"어 그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인데 말이야?"
예전 지도교수 Z의 랩에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거기서 도저히 졸업할 수 없는 일이 생겨서 B 교수님네에 입양을 가고 S 교수님 네에서 위탁 보호를 받아 졸업했다고, 무려 박사 4년차에 랩을 옮겼다고 설명해준다.
이렇게 설명하면서 이젠 별로 마음이 아프지 않다. 이전 지도교수나 그 랩에서 내가 했던 연구도 언급하기 싫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진 않다.
그 교수님 어때? 이런 질문이라도 받으면 또 괜히 무게를 잡고 "그것은 나에게 물어보면은 안 돼." 하고 답해준다. "근데 누가 그 랩 간다고 하면 그땐 꼭 나랑 진지하게 상담을 하라고 해라", 하고도 덧붙인다.
회복의 과정에는 이런 순간도 있었다. 포닥(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필수 윤리 교육을 몇 차례 이수했는데, 한 번은 교육 모듈의 일부로 익명 설문 조사가 있었다. 이런 식이었다.
다음은 당신의 현재 신념, 태도, 경험 등을 묻는 설문입니다. 다음 문장들에 매우 반대 / 반대 / 보통 / 그렇다 / 매우 그렇다로 답하세요.
나는 연구실에서 일어나는 괴롭힘 / 차별 / 가혹 행위를 알아볼 수 있다.
‘그렇다’를 선택했다. ‘매우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런 것들은 워낙 교묘하니까.
연구실에서 괴롭힘을 목격한다면 나는 그것을 보고할 것이다.
연구실에서 차별을 목격한다면 나는 그것을 보고할 것이다.
연구실에서 괴롭힘이나 가혹 행위를 목격한다면 나는 개입할 것이다.
매우 그렇다. 나는 그런 것들이 얼마나 누군가의 영혼을 상하게 하는지 알고 있다. 나는 싸워보았다.
부적절한 행동에 대하여 나의 소속 기관은 명확한 정책과 절차를 가지고 있다.
이 문항에 대한 내 대답은 ‘보통’이었다. 대개 대학들은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구성원들을 충분히 보호하지는 못한다고 이제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착취적이거나, 남을 존중하지 않거나, 피해를 주는 고용인은 마땅한 조치를 통해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았다. 마음이 울렁였다.
연구실에서 괴롭힘을 목격한다면 내 동료들은 그것을 보고할 것이다.
연구실에서 차별을 목격한다면 내 동료들은 그것을 보고할 것이다.
연구실에서 괴롭힘이나 가혹 행위를 목격한다면 내 동료들은 개입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이 세 문항에 연속으로 '그렇지 않다'를 선택하는데 갑자기 막 눈물이 나는 것이다. 아니, 이제 제법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깟 설문조사가 이렇게까지 마음 아플 일인가?
연구실에 앉아서 컴퓨터로 교육을 이수하다가 속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차올라서 모니터만 간신히 끄고 밖으로 나섰다. 나무들 사이로 걸으면서 자꾸 눈물로 시야가 흐려졌다. 걸으면서 속으로 ‘나는 그래도 마음이 무너질 때 밖에 나와서 걸을 줄 알게 되었군’, 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료들은 부조리를 목격해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해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냥. 어려운 일이다.
아픈 경험은 이렇게 전혀 예상치 못한 것 때문에 불려 나와서 나를 뒤흔들어 놓고 간다. 그때서야 내 마음의 이런 부분에도 상처가 나있었구나 하고 아는 것이다.
이제 그 후로 또 1년 정도가 지났다. 글을 쓰면서 설문 문항을 다시 보며 생각해 봤는데 지금 다시 한대도 내 대답은 여전할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대답하는 일이 내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할 것 같지는 않다.
나도 이제는 포닥으로서 학부생이나 박사 과정 학생을 지도하는데, 학생에서 포닥으로 입장이 바뀌고 보니 학교나 학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교수님들의 현실적인 고충엔 또 어떤 게 있는지도 전보다는 더 이해하게 된다.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이 하는 걸 보고 있자면 (혹은 뭘 안 하는 걸 보고 있자면) 솔직히 자주 속이 터진다. 나한테 요구는 많이 하면서 제 할 책임은 안 다하고 변명만 하는 것 같아서 괘씸할 때도 있다. 게다가 어떨 땐 내가 가르치는 학생의 성과가 내 능력의 지표 같이 되는 상황도 있어서 억울하고 답답하다. 이런 상황들을 겪다 보면 교수님들도 이런 입장이라서 못되게 구는 걸까, 하여 이상한 이해를 하기도 한다.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또 문득,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쟤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겠구나', '이런 식으로 다그치면 성과를 빠르게 뽑아내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누구 일인지 모호한 일을 저쪽으로 떠넘길 수 있겠는데', 하는 좀 무서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너무 부서지기 쉬운 섬세한 걸 들고 있다 보면 실수로 힘을 줘서 그것을 망가뜨리는 상상을 해보게 되는 것처럼. 학생이 얘기할 때 한숨을 쉰다거나 말을 자른다든가 내 기분 나쁜 걸 그냥 드러낸다든가, 그런 미묘한 태도들로 하여금 학생이 나를 불편하고 어렵게 받아들이도록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딱히 실행해보진 않아서 전부 내 망상일지도 모르겠지만. 학생들이 얼마나 취약한 입장인지를 이제는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새삼 느낀다.
그래서 내가 겪은 부조리의 가해자들을 이해하느냐면, 글쎄 이걸 이해라고 해야 할까. 그러는 메커니즘은 약간 알 것도 같은데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학생들을 보면 종종 속이 터지다가도 이내 으이구, 너도 나름대로 열심이다, 싶으면서 도와주고 싶어진다. 내가 열심히 설명을 해서 애들이 조금씩 알아듣는 것 같을 때는 기특하다. 나한테 배우는 학생들은 또 나에 대한 불만이 있을 테고 어쩌면 어디 가서 내 욕도 하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연재를 마무리할 생각을 하면서 이전 글들을 살펴보았다. 박사과정 전후를 비교해 나는 이렇게 썼다.
그 사이 나는 어떤 면에서는 더 단단해졌고 어떤 면에서는 더 유연해졌으나, 어떤 면에서는 다소 손상되고 찌그러졌다고 느낀다. (20화)
동료들은 부조리한 일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답하게 되는 부분은 다소 찌그러진 것 같다. 불안과 고립감, 우울, 자기 의심 같은 것들이 악화된 면도 있다고 느낀다. 전과 달리 다른 사람들과 내 상황을 시시때때로 비교하고 이상한 피해의식을 느끼는 때도 있다.
하지만 수렁에 빠진 마음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어떻게 건져내야 하는지는 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힘들고 막막할 때도 결국 내가 행동을 해서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내가 더 단단해진 부분일 것이다. 나와 사람들의 연약한 부분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된 것도, 학생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최대한 존중하며 잘해주겠다고 다짐한 것도 유연하고 단단해진 부분일 것이다.
근본적으로 내 책임이란 건 아니지만, 내 마음의 빈자리들이 어떻게 문제를 악화시켰는지도 이제는 좀 더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 비슷한 문제를 만나면 다음에는 더 잘 대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겪은 말도 안 되는 봉변에 의미가 있었나? 생각해 보면, 뭐 의미랄 것까진 없다. 아무튼 손상은 가해졌고, 나는 그런 시간을 겪었고, 그 경험에는 이런 면과 저런 면이 있었다.
주화입마에 빠졌던 어느 박사과정 학생은 그다음에 주화입마에 빠진 박사 백수가 됐다가 이제는 포닥이 되었는데, 주화입마가 이젠 해소되었는지, 재활이 어디까지 이루어졌는지는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상처는 또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튀어나와서 나를 치고 지나가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상처 입기 전의 흠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완전하고 매끈한 회복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스스로를 책임지면서 그럭저럭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이만하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미래는 막막하고 불안하지만 어떻게인가 또 해내면 될 것이다.
이젠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해도 그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지 않다. 불현듯 아플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괜찮다.
질병이라고 치자면 초기의 급성 단계는 지나고 재활을 통해 회복이 꽤 많이 이루어지는 단계도 지나서 이제는 만성 질환 관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나 할까. 앞으로는 그동안 애써서 얻은 건강한 방식들을 지키면서 혹시 상태가 다시 나빠지지는 않는지 장기적으로 추적ㆍ관찰하는 것으로 하고, 두서없는 재활 일지는 여기서 마친다.
우와, 쓰다 보니까 이게 끝이 나네요. 끝을 어떻게 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만 끝내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재 후기를 한 편 쓸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