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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쉰다.

by 오경희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는 말이 있다.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쉬어진다’는 뜻으로, 아무리 맛있는 술을 빚어도 집 앞 개가 사나우면 손님이 들어오기 어렵고 결국 술이 팔리지 않아 쉬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고사는 한비자의 『외저설우』와 『안자춘추』 문상 편에 등장하며, 주로 간신배를 경계하는 정치적 비유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 말은 오늘날의 고객 서비스 현장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통신사에서 근무할 때 겪은 실제 사례가 있다. 당시 휴대폰과 인터넷을 묶은 결합상품을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한 고객이 할인 내역을 확인하고자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상담사에게 연결되기까지 너무 많은 단계의 ARS를 거쳐야 했고, 어렵게 연결된 곳은 휴대폰 전문 콜센터였다. 상담사는 “해당 건은 저희가 해결해 드릴 수 없고, 인터넷 부서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며 이관했다. 그런데 인터넷 부서에서는 다시 “요금 할인 적용은 휴대폰 쪽에서 처리해야 합니다”라며 다시 연결했고, 결국 고객은 같은 설명을 세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담당자를 찾지 못한 채 이 부서, 저 부서로 떠돌던 고객은 격앙된 목소리로 항의했고, 그제야 중재를 맡은 전담 매니저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당시 두 서비스 간의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동되지 않아 발생한 문제였고,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프로세스를 재정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객은 본인의 사례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고, 그 과정 자체가 큰 스트레스로 남았다. 또한 간단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 끊임없이 뺑뺑이를 돌면서 “왜 나는 이 회사에서 내 이야기를 단 한 번에 끝낼 수 없을까”라는 감정적 피로를 크게 겪어야 했다.


이 사례는 아무리 좋은 상품이나 기술력이 있어도, 고객 접점에서의 경험이 그것을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나운 개’가 술을 쉬게 하듯, 무심하거나 복잡한 고객 응대 구조는 회사를 외면하게 만든다.


비슷한 일이 개인적으로도 있었다. 음악을 전공한 딸을 위해 방음부스를 설치하려고 쇼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여러 업체를 비교해 보다가 지인의 추천을 받아 그중에 가장 규모 있고 오래된 업체를 찾았다. 미리 예약하고 아침 10시에 방문했지만,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온 여성 직원은 표정부터가 불쾌해 보였고, 질문에도 형식적으로 응답했다. 준비해 간 도면과 위치 설계 자료를 보여주었지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설명도 대충대충이었다. 결국 딸아이가 먼저 “그냥 가자”라고 했고, 우린 계약하지 않은 채 발길을 돌렸다. 상품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던 터라 실측만 가능하다고 하면 현장에서 바로 계약을 진행하려고 방문했었는데, 고가의 장비를 그런 식으로 구입하고 싶지 않아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전화를 건 다른 업체에서는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 응대는 친절했고, 직접 실측하러 오겠다고 했다. 요청사항도 꼼꼼히 검토하고 피드백을 줬다. 결국 우리는 그곳과 계약을 체결했다. 제품 성능은 비슷할지 몰라도, 고객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달랐다.


사실 고객이 기억하는 건 제품의 사양이나 기술력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대접받았는가’이다. 통신사든, 병원이든, 식당이든 마찬가지다. 아무리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직원의 말투와 태도 하나로 고객의 인상은 완전히 바뀐다. 특히,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는 전적으로 직원의 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신뢰를 주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어떻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겠는가?


고객 응대는 단순한 소통이 아니다. 그것은 기업의 얼굴이며, 브랜드의 진심을 전달하는 창구다. 그렇기에 고객 접점에 있는 직원은 단순히 정보만 전달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브랜드를 대표해 감정을 전달하고 신뢰를 만들어야 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사나운 개’를 문제 삼는 것은 고객이 ‘예민해서’가 아니라, 기업이 그만큼 고객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요즘 고객은 더 이상 참고 기다리지 않는다. 대체제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한 번 돌아선 마음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아무리 좋은 상품도 고객 접점의 태도 하나로 그 가치를 잃을 수 있다. 고객을 향한 문 앞에 어떤 사람이 서 있는지, 그 사람의 눈빛과 말투는 어떤지를 기업은 늘 점검해야 한다. 사나운 개는 술을 쉬게 하고, 무심한 응대는 회사를 외면하게 만든다.


고객을 향한 태도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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