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좀 괜찮아?"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오늘부로 임신 19주 5일을 지나고 있다.
14주에 경미한 출혈을 경험한 이후부터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조마조마해하며 매일 확인을 하고 있다. 다행히도 눕눕을 2주 동안 한 이후에는 별도의 출혈은 없었으나, 한번 놀란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찾아보니 그 시기 출혈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는 증상이었고, 아직은 태반이 온전히 자리 잡지 않은 상태이기에 눕눕 처방 역시 빈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임산부들의 노파심은 백번 이해하지만, 제발 본인 분비물 사진 좀 맘카페 같은데 사람들이 안 올렸으면 좋겠다. 보는 내가 수치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대한 무리하지 않기 위해 조심을 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 시간에 맞춰 (특히 오전 시간에) 출근을 하는 것은 임신을 한 나에게 너무나도 고역이고,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인류애가 상실되기에 중기 이후부터 서울시에서 지원해 주는 교통비 70만 원으로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계속하고 있다. (관련 링크) 카카오택시를 타면 간혹 가다 말씀이 너무 많은 기사님들을 만나기 때문에 아임택시를 애용하는 편인데 서울시에서 지원해 주는 교통비는 아임택시에도 적용이 된다. (*정정: 2/20 - 아임택시에도 적용이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입덧으로 혼란스러웠던 초기와는 다르게 중기에 접어들며 또 다른 많은 증상들을 마주하게 되며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한다. 증상은 각 임산부마다 다르기에 내가 겪는 것들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내가 지난 4주 동안 겪었던/겪고 있는 증상들을 정리해 본다. 여담이지만 너무 구구절절해서 몸은 좀 괜찮냐는 질문들에 어디까지 답을 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1. 치아가 시리고 아프다
중기에 접어들자마자 가장 처음 느낀 증상은 특정 어금니가 시리고 아픈 느낌이었다. 거울로 보았을 때 충치가 보이진 않았지만 신경 치료를 한 것 마냥 계속 아프다. 임산부는 치과치료 하는 것을 지양하기 때문에 가급적 버티고 있지만 가급적 오른쪽으로는 음식을 씹으려고 하고 있지 않다. 실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과정에서 빠져나가는 칼슘 덕에 임산부들은 충치, 치통 등으로 많이 고생한다.
2. 임산부 소양증
원래도 몸이 예민해지면 잘 뒤집어지는 알레르기성 체질이지만, 소양증과 더불어 찾아오는 건조증은 정말 괴로웠다. 난생처음 등과 팔뚝 역시 뒤집어지는 것을 보며 고통스러웠고, 심지어 발목에는 양말 라인에 맞춰 살갗이 빨갛게 부풀다가 이내 까지기 시작해 지금은 딱지가 앉은 상태이다. 남편이 안방에 별도 가습기를 사다 놔주었고, 친구가 가려운데 바를 크림을 선물로 주어서 지금은 많이 나은 상태다.
3. 임산부 비염
중기에 접어들면 많은 임산부들이 겪는 증상 중 하나가 임신성 비염이다. 하루 종일 재채기와 훌쩍댐을 반복하다가 코를 풀면 코피가 나기도 한다. 그래도 겪는 다른 증상들에 비하면 나름 '버틸만하다.'
4. 환도 선다 증상 & 골반통
들어는 보았나 "환도가 서는 증상"
환도는 양쪽 엉덩이에 움푹 들어가는 골반을 칭하는데, 정말 중기부터는 매일 이 환도 통증과 허리 통증, 꼬리뼈 통증, 골반 통증 때문에 고통스럽다. 나도 모르게 앉았다 일어날 때 "악" 소리가 나거나, 1시간 이상 딱딱한 의자에 앉으면 정말 너무너무 고통스러워서 바로 침대나 빈백을 찾게 된다. 오전에 기모레깅스에 발을 넣다가 골반이 너무 아파 급하게 재택으로 돌린 적도 있다. 정말 골반과 엉덩이 주변에 360도 다 '통증'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그와 더불어 계속 평수를 넓히는 자궁 덕에 자궁이 당기는 증상,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자궁이 뭉치는 증상, 그 외에 알 수 없는 통증과 증상들로 가득하다. 이 증상의 해결 방법은 출산 밖에 없다고 한다.
5. 1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간다
점점 커지는 자궁 덕에 방광이 눌려 자주 화장실에 간다. 나중에는 재채기하면 실례까지 할 수 있다 하는데 미리 걱정이다.
6. 위염과 식도염 그리고 변비
점점 커지는 자궁 덕에 위와 장이 영향을 받는 중. 위액이 과다 분비 되어 속이 쓰릴 때가 종종 있고, 그 '식도가 타는 느낌' 덕에 밤에 깬 적도 몇 번 있다. 별도의 약을 먹을 수는 없기에 먹는 것을 가려 먹는 방법 정도로 타협해야 한다. 그 와중 철분약 때문에 오는 변비는 또 고통스럽고..
7. 편두통, 두통, 어지럼증
원래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나 잠을 잘 못 자면 두통이 있는 편인데, 임신을 하고 이 빈도가 더 빈번해졌다.
8. 이렇게 부을 수 있나
단순 몸무게가 늘어나서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어서 신발도 맞지 않고 반지도 맞지 않는다. 가급적 결혼반지를 빼지는 않으려고 하는데, 임신 막달에 119를 불러 반지를 자르는 썰을 몇 번 읽은 후에는 스스로의 다짐을 내려놓으려고 한다.
9. 흰머리가 엄청 늘어난다
출산을 하면 새치가 늘어난다 하는데, 출산도 하기 전에 이럴 줄 몰랐지. 염색, 파마 다 하지 못하는 임산부는 그저 슬프다.
10. 몸무게 이래도 됩니까
이미 임신 전부터 과체중이었던 임산부는 19주 차에 벌써 7-8킬로가 늘었다. "걱정 마 아기 낳으면 다 쑥 빠져"라는 맘 편한 소리만 하는 남편이 야속하다. 1:1 필라테스를 30회 이상 끊어달라고 요청을 해놓았다.
11. 몽쉘 같은 젖꼭지와 흑드랑이, 그리고 임신선
정말 시꺼메진 젖꼭지와 겨드랑이가 일말의 여성성 마저 다 잡아먹은 듯하다. 그리고 점점 또렷해지는 임신선은 "나는 임산부예요"를 울부짖는다.
12. 눈물이 많아진다
아니, 20대 이후로 전멸해 버린 눈물샘에 자꾸 누가 수분 충전을...
13. 꿈이 다이내믹하다
이건 임신 초기 때부터 그랬는데, 호르몬 덕에 꿈이 매일 다이내믹하다. 애꿎은 남편만 가끔씩 멱살이 잡힌다. 어젯밤엔 남편이 알고 보니 결혼을 한 과거가 있고 숨겨둔 애가 있는 꿈을 꿨다. 꿈은 매일 이런 식이다.
14. 숨이 차다
매일 숨이 차다. 조금만 움직여도 차다. 하루에 3000보 이상 걸으면, 2시간 이상 낮잠을 자야 한다. 너무 숨이 차고, 너무 피곤하다.
뭐 사실 이렇게 나열해 보는 이 모든 증상들을 차치하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가졌다"라는 것과 "가정을 꾸린다"라는 것에 대체불가능한 감사를 느낀다. 내 배에 대고 말을 거는 남편의 정수리를 보면 눈물이 찔끔 나고, 우리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며 설레기도 한다. 또한 아주 조금씩 느껴지는 "이게 태동인가" 싶은 느낌들에 뭉클하다. 제대로 느끼게 팍팍 움직여주었으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나의 부모의 소중함을 더더욱 느낀다. 나를 가졌을 때 우리 엄마, 아빠가 그랬겠구나... 싶은 생각에 부모님의 얼굴만 떠올라도 눈물이 계속 난다.
아직 출산을 하려면 142일 남짓이 남았다고 한다. (베이비 빌리 어플이 말하길) 요즘은 태교랍시고 책 낭독도 시작하고, 튼살크림을 바르며 이런저런 말도 건네고 있는데 부디 순신이가 잘 듣고 있길 바란다. 여담이지만 아빠가 될 준비를 하느라 고생이 많은, 내 옆에서 코를 지겹게 골고 있는 나의 남편에게도 새삼스레 더 감사한 밤이다. 그래도 제발 렌즈는 좀 빼고 잤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