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증가, 입맛변화, 정밀초음파, 태동 그리고 응급진료
보통 임신의 중기는 14주부터 27주까지라고 한다. 조금 더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초기의 기록과는 달리 중기는 조금이라도 시기가 지나면 이야기할 것이 산더미이다.
나는 아쉽게도 초음파일지나 태교일지 같은 것을 따로 쓰고 있지 않은 엄마이기에 나는 오늘도 나의 기억의 파편들을 더듬더듬 모아 이렇게 기록을 해본다.
우선 20주에 접어들어 생겼던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입덧약을 끊었다는 것이다. 임신 초 입덧으로 꽤나 고생을 했던 나였기에 입덧약을 끊은 것은 상징적인 것이었는데, 초반에 입덧이 심했단 것이 무색할 만큼 중기에 접어들고 내 몸무게는 정말 무서운 속도로 찌기 시작했다. 남편을 만나기 전 평균 몸무게가 52kg, 남편을 만나고 58kg, 그리고 그 상태에서 임신을 해 현재 23주 차인 나는 67kg를 찍었다. (68kg까지 찍었다가 감사하게도 좀 내려갔다) 처음에는 "합법적으로 먹을 수 있는 기간"이라 생각한 동시 당기는 음식이 버블티, 빵 등의 단 음식 위주여서 당길 때 먹긴 했으나 (임신을 하지 않은 기간 동안에는 내가 2-3달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한 메뉴들이다) 이렇게까지 찌다니, 나는 야식도 잘 안 먹는데 좀 억울한데? 싶기도 했다. 여하간 불어난 몸무게 덕에 나는 뒤뚱뒤뚱하게 걷고, 두꺼워진 몸통 덕에 입을 수 있는 옷이 없어지기도 했다. 끊은 입덧약과 동시에 입맛에도 조금 변화가 생겼는데, 임신 후 고기는 아예 쳐다보기도 싫던 내가 조금씩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배가 많이 커져서 앉아있으면 허리와 갈비뼈가 너무너무 아프며 다리가 저리다. 특히 딱딱한 의자에는 1시간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다. 여담이지만 이 이유로 결국 코칭 심화수업도 출산 후로 미뤘다. 절대 풀데이로 수업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20주 차 3일에 드디어 하게 된 정밀초음파.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아기의 모습에 마음이 설렜고, 태동이 온전하게 느껴지지 않아 조금 시무룩하던 와중 초음파를 통해 본 아기의 모습이 너무나도 활동적이고 건강해서 마음이 많이 놓였다. (이 이후로 21주 차에 접어든 후 태동은 많이 느끼고 있다) 이제는 초음파 한 번에 온전히 들어오지 않는 아기. 20주 차에는 약 360g 정도였는데, 그 작은 몸에도 모든 장기와 손가락 5개, 발가락 5개에 필요한 것들은 다 지니고 있어 얼마나 신기하던지. 내 뱃속에서 저렇게 작지만 강인한 생명이 꼬물거리고 있단 생각에 나도 모르게 초음파를 보는 내내 눈물이 계속 났다. 남편은 20분 동안 초음파를 하며 누워있는 내 발가락을 지긋이 잡아주었다. 여하간 모든 검사가 "정상"이라는 이야기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자궁경부 길이 (자궁경부 길이가 짧아지면 조산의 위험이 있다. 보통 2.5cm 이하부터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역시 5cm라는 말씀에 슬슬 운동도 시작하고, 출퇴근도 열심히 해야지!라고 생각을 했다.
21주부터 시작된 태동의 느낌을 한마디로 칭하자면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일전에 남편의 당숙모님을 뵈었을 때 "태동의 느낌이 참 행복하고 그리워서, 그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임신 때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도 했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서, 참 궁금했다. 처음에는 이게 태동인가 싶은 느낌이 조금씩 들다가, 언제부턴가 뱃속에서 "투두둑" 나를 치거나, 꿀렁하고 움직이는 아기를 느끼며 참으로 행복했다. 처음 태동을 느낀 순간은 너무 놀라 벗은 상태로 화장을 하다가 남편을 불렀다. 남편 역시 너무 기뻐하고 설레어하며 계속 "아기가 찼어? 아기가 움직여?"라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보통 중기에 접어들면 태동은 태아의 안녕을 이야기하는 지표가 되기에 2시간 이상 태동을 느끼지 못하면 바로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미세한 움직임이라도 아기가 계속 움직이는지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다. 태동은 보통 낮시간보다는 밤시간에, 편한 옷을 입었을 때 더 활발하다.
여하간 나는 상대적으로 편한 시기라고 하는 중기에 접어들었는데, 사실 출퇴근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가서 일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좋고, 동료분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는 것도 좋았으나 출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오는 요통 등이 참 쥐약이었고,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어 1시간 앉아있다 5분 가서 누워있고를 계속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고 감사해서 출퇴근을 하던 어느 날, 회사 근처에 있는 엄마가 나를 보러 오셨고 나의 모습을 보더니 "너 너무 고단하고 힘들어 보인다"라며 계속 걱정을 하셨다. 나는 임신하면 그 체력이 디폴트라 생각을 했기에 괜찮다며 걱정을 말라고 엄마를 돌려보냈고, 그날은 전 직장동료이자 친한 동생의 청첩장 모임까지 하고 집으로 갔는데 유독 몸이 피곤하고 속옷을 보니 속옷이 다 젖어있었다. 원래 임신을 하면 분비물이 많아지는지라 속옷을 갈아입고 파자마 바지를 입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지까지 다 젖은 것을 보고는 이게 좀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나의 원장선생님은 인터넷에 너무 무분별한 정보가 많으니 보지 말라 하셨으나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니 "양수 새는 증상" 이란 것이 있었다. 양수가 어떠한 이유로 조금씩 새는 것인데, 단순 분비물과 달리 투명하고, 약간의 락스냄새가 나며, 계속 새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나는 다니는 병원의 응급분만실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았던 분의 태도가 너무나도 불성실하여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밤에 조금이라도 이상증세가 있으면 꼭 병원에 오라고 했던 원장선생님 말씀대로 그분에게 내가 꼭 진료를 지금 봐야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팬티 라이너 차보고 그래도 젖으면 전화 주세요"라는 퉁명스러운 말에, 팬티 라이너를 차 보았는데 30분이 채 되지 않아 반절 정도 젖어서 전화를 하고, 다음날 새벽녘부터 출장 예정이라 바쁜 남편과 함께 자정이 넘어 응급분만실에 도착을 했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응급 침대에 누워있는데, 진통이 온 듯한 옆 산모의 신음소리는 정말 공포 그 자체였으며, 몇 달후 나의 모습일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모든 것이 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여하간 2-30분 정도 대기를 한 후 본 진료의 소견은 다행히도 양수는 아니지만, 자궁경부 길이가 2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3.3cm로 줄어들어 긴 편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간단한 일상생활 정도는 가능하지만 가급적 눕눕을 권장, 재택으로 전환이라는 소견서 (인 줄 알았는데 진단서를 끊어주심...)를 받고 나는 그 이후로 일주일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지난 일주일은 올해 중요한 일이 많은 회사에 내가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좌절감과, 팀 동료들에게 미안함, 그리고 올해 회사 일 외에도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스스로에 아쉬움에 대해 종종 눈물을 흘렸던 시기였다. "나는 무쓸모한 사람 같아"라며 우는 나를 보며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을 제일 못하는 남편 역시 속상해하며 "네가 왜 무쓸모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일을 하고 있는데, 아기를 품고 있잖아"라고 말을 해주었다.
왜 임신과 출산을 하는 직장 선배들이 그렇게 고민을 했는지, 눈치를 봤는지, 힘들어했는지 나는 뒤늦게 이제야 배우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아침에 유독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라고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