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29주 하고 3일 된 날이다.
오늘은 마지막 근무일이었고, 나는 이제 10주 남짓 있으면 우리 아이를 만나게 된다.
입덧과 몸의 변화에 적응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초기를 지나,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줄 알았으나 자궁경부길이라는 난제 때문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했던 중기를 보내고 나는 임신 후기의 임산부가 되었다.
곧 있으면 우리의 첫 번째 결혼기념일인데, 나는 내가 임신을 한 상태로 우리의 기념일을 맞이하게 될 줄 몰랐다.
여하 간에 임신 후기에 접어들고는 긍정봇이던 나임에도 요즘은 여러 걱정을 계속하게 된다. What if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를 상상을 하며 나답지 않은 겁쟁이 같은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임신기간 동안 이벤트가 많았어서 그럴까 싶기도 하지만, 나와 비슷한 주수의 다른 엄마들에게 물어도 다들 비슷한 양상을 띤다고 하니 어쩜 호르몬의 영향이 큰 것 같기도 하다.
임신 중기부터 나를 가장 힘들게 해 왔던 것은 자궁경부길이였다. 주수에 비해 급격하게 짧아진 자궁경부길이는 오늘 검진에서 2.2cm-2.8cm 사이가 나왔고, 나는 질정을 처방받고 또다시 눕눕처방을 받았다.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꽃도 보러 가고, 봐야 할 얼굴들도 보려고 했는데 어려울 것 같다.
자궁경부로 인해 지속되는 눕눕덕에 몸은 더 급격하게 커지고, 나는 원래 몸무게에 비해 현재 딱 20kg가 찐 상태이다. 부종이 너무 심해 손가락 마디마디 통증이나, 손목에 신경이 눌리는 증상으로 하루종일 날이 서있을 때도 많고 밤에도 잠을 뒤척인다. 뿐만 아니라 방광은 지속적으로 눌려서 자다가도 몇 번씩 화장실에 가게 되고, 잦아진 배뭉침 덕에 배가 아파 깰 때도 있다. 이 배뭉침은 후기에 들면 겪는 증상이라고도 하지만 사실 주기적이거나 잦으면 위험신호기에 당장 병원을 가야 할 수도 있어, 유독 심한 날에는 추이를 보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거 세대에 임신을 하며 이벤트가 있었던 사람들보다는 편하게 지내고 있고, 주변사람의 여러 배려로 나와 아기 위주의 생활을 할 수 있었고 그저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요즘 나의 또 다른 고민은 대학병원 전원이다. 내가 다니는 병원은 거주하고 있는 구에서 유명한 산부인과지만 대학병원은 아니다. 사실 출산 시 대학병원을 고르는 이유는 혹여나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대처를 더 잘할 수 있기 위해 하는 것이다. 다만 대학병원의 단점은 웨이팅이 길고, 전문 여성의원이나 산부인과보다 불친절하고,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부분도 있다.
초기에 자연분만을 강하게 하고 싶던 나의 의지와 달리 현재는 여러 이유로 선택 제왕절개로 마음이 기울고 있는데, 남편은 내가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고, 그렇게 된다면 이왕이면 큰 대학병원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중이다. 나의 의견도 반반이나, 나는 가급적 나를 봐주시던 선생님이 나를 수술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크다.
산모들이 우스갯소리로 제왕절개는 고통의 할부, 자연분만은 일시불이라고 한다. 제왕절개는 진통의 무시무시함이 없는 대신, 수술 후 회복기간이 더 오래 걸린다고 한다. 반면 자연분만은 각자 진통을 겪는 시간은 다르지만, 무시무시한 진통을 겪은 후 실제 출산 후 아무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덜 걸린다고 한다. 물론 자연분만을 하다가 꼬리뼈가 부서졌던 지인이나, 회음부를 찢다가 항문까지 찢어 기저귀를 오랫동안 차야했던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빠른 회복"이 개런티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엄마 세대 때는 제왕절개가 선택제왕의 개념보다는, 아이가 역아라서, 탯줄을 목에 감고 있어서, 전치태반이라서, 머리크기가 커서 등의 이유가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 수술이었지만 요즘엔 다르다. 나의 주치의 선생님도 이건 전적으로 산모의 결정이고, 산모가 원하는 대로 결정을 내리라고 하셨다. 일각에서는 자연분만을 할 경우 태아에게 더 유산균이 많이 가서 면역력에 좋다는 말들도 많지만, 실제 자연분만을 위해 진통의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고 응급제왕을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고, 뭐 주변에 제왕으로 나온 아이들을 봐도 면역력에 크게 이상이 없는 것 같다.
여하간 어디서 어떠한 분만을 할지가 최근의 화두이다.
또한 제왕을 할 경우 입원기간 동안 보호자가 이 꼴 저 꼴 다보며 병시중을 들어야 하는데 혹여라도 내 떡진 머리나, 소변줄을 차고 있는 모습 등에 남편이 나에게서 성적인 매력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된다. (이런 유치한 고민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귄 첫해 남편이 비염수술을 하고 내가 보호자 역할을 해서 그의 풍선같이 부은 얼굴과 떡진 머리를 이미 나는 경험했는데, 반대 상황이 되니 괜히 걱정이 된다. 매번 나보고 귀엽다고 하는 그.. 진심이겠지? ㅠ_ㅠ
또 다른 고민? 아니 고민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맞이해야 할 변화는 외벌이이다. 우리 부부는 꽤 만족스러운 맞벌이 생활을 하며 나도 쓰고 싶은 만큼 쓰고, 일정 금액을 함께 모으는 정도의 생활을 했는데 이제 남편의 카드를 쓰든, 아니면 남편한테 일정 금액을 이체를 받든 하겠지. 물론 애초에 벌이도 그가 훨씬 높고, 그가 숫자 쪽으로 나보다는 훨씬 빠르기에 나는 가계 관리의 대부분을 그에게 부탁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지출생활에서 '자유'라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된다. 남편은 내가 벌고 쓰는 것에 있어서 크게 뭐라고 제약을 거는 사람도 아니지만 말이지... 유독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나이기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모멘텀을 살려서 나도 새로운 생활패턴에 적응을 하고, 또 더 건강한 가계를 꾸려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늘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우리 든든한 가장 남편 고생이 많고 고맙고 너무 대견하다.
여하간 두 달 뒤쯤이면 우리 아기를 만난다니... 참으로 떨리고 설레며 감사하고 경이로운 일이다. 부디 출산일까지 무탈하게 큰 이벤트 없이 잘 지내고 즐겁게 만날 수 있길! 그럼 최근의 사진들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