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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a Days Mar 26. 2023

임신 중기의 기록 - 6 (26주-27주)

임신 중기 졸업을 자축하며 써보는 글

임신 26주-27주 사이에는 하는 일 없이 정신이 없었다.


우선 지속되는 눕눕생활 때문에 회사와 육아휴직 및 출산휴가를 조금 조율해야 했고, 몸은 멈추지 않고 무서운 속도와 예상치도 못한 다양한 방향으로 여러 변화들을 겪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컨디션 난조와 겹쳐진 호르몬 대잔치에 나의 기분은 설렘과 두려움, 극단적으로 양가의 감정을 왔다 갔다 했다.


여하 간에 나는 원래보다 4주 정도 빠른 30주 차에 육아휴직에 들어가기로 결정을 했고, 여러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했으며, 여러 가지를 또 정리하기 시작했다.


26주-27주 사이 있었던 인상적인 순간들을 꼽으라면:


1.

초음파 사진으로 가늠해 보는 우리 딸 얼굴

베이비페이스라는 서비스에 53,9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초음파 사진으로 우리 아이 얼굴을 뽑아보았다. 나중에 지인에게 이 서비스를 추천하면 추천인코드로 나는 5,000원 페이백을, 새로운 사람은 5,000원 할인을 받는다 하여 내가 출산 후 3개월 이후에 출산 예정인 사촌언니에게 냉큼 링크를 보냈다.


마지막 입체 초음파인 7개월 때 입체초음파에서 보이는 얼굴은 실제 아기가 출산 후 보여줄 얼굴과 많이 흡사하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코는 남편, 입은 나를 닮은 것 같은데 눈은 어떨지 참 궁금하다. 나는 #도치맘 따위의 해시태그나 용어를 정말 싫어하는 편인데, 웃긴 게 나도 이 초음파를 계속 보고 있자니 우리 딸이 유독 예뻐 보이더라.


2.

기가 막히는 1일 소비, 바야흐로 소비의 나날들

고민 없이 소비하던 날들은 안녕. 임신을 하고 출산을 준비하며 맞는 여러 변화 중 하나는 소비의 변화이다. 나는 내가 쓰는 곳에 있어서는 돈을 잘 쓰고, 반면 나에게 우선순위가 아닌 분야에 있어서는 돈을 잘 안 쓰는 편이다. 아이쇼핑도 하지 않고, 굳이 세일을 한다고 어딜 찾아가지도 않으며 조금 더 돈을 주고 사도 편한 방식으로 산다. 그리고 그런 소비습관에 있어서 귀차니즘 역시 상당 부분 차지를 하는데, 귀찮아서 여러 곳 가입을 하는 것도 싫어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콘텐츠를 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며, 임신을 하기 전까지는 핫딜이 뭔지도 몰랐다. 귀찮아서 택배 반품도 안 하던 나였는데 말이지..


그런 내가 이제는 핫딜 단어가 뜨면 들어가 보고, 여러 쇼핑몰 가입까지 했다. 왜 어디는 특수기호가 비번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고, 어디는 아닌지.. 다 다르게 설정해야 해서 짜증이 난다. 난생처음 당근마켓 알람을 설정해 놓고, 괜찮은 게 뜨면 당근마켓에서 구매를 하고 어쩌다 선배 육아맘이나 육아대디들이 물건을 물려주거나 빌려주겠다고 하면 너무나도 감사하다.


만족스러운 맞벌이 근로소득 부부에게도 턱이 벌어지는 매일의 소비를 보며, 내가 과연 사회초년생 때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으면 이렇게 소비하고 살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단순 소비가 적고 많고를 떠나 남들이 다 하는 것은 꼭 해야 한다는 식의 마케팅을 싫어하는 반골기질에, 어쩜 ”맘마존“ 따위의 단어가 다 마케팅의 상술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모든 과정에서 조금씩 불편할 뿐이다.


3. 약 18kg의 체중변화와 더불어 역류성 식도염, 팔에 신경이 눌리는 증상, 잦아지는 배뭉침, 숨이 차는 증상 등으로 계속 고통받고 있다. 자궁경부길이로 눕눕 처방을 받은 산모의 활동은 제약적이고, 그만큼 더 붓는 편이다. 그래도 남편이 사 와준 공기압 마사지기 덕분에 팔다리가 아프다고 눈물을 꺽꺽 쏟아내는 것은 좀 나아졌다. 남편이 조금 낫게 해 준다고 주물러준 다음날이면 어찌 더 아파서 (...) 공기압 마사지기 만세! 를 외치고 있다. 그 외에 산후조리원 계약에 포함된 산전마사지도 다니기 시작했는데, 어찌 포함된 세션 수가 간에 기별도 안가 다 쓰면 추가로 결제하려고 보니 1회에 25만 원이다. 그냥 공기압 마사지기 더 열심히 해야지..


4. 아이의 나날이 격해지는 태동은 그야말로 경이로울 따름이다. 동시에 조금이라도 태동이 조용한 날이면 하루종일 거기에 신경이 가있는다. 이렇게 오랫동안 태동이 안 느껴지면 바로 응급실에 가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며 나의 불안감을 남편에게 잔뜩 전이시킨다. 무던한 남편은 아빠가 되어가며 나에게 보조를 맞추느라 힘들 것 같다.


5. 배가 너무 커져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남편이 발톱을 잘라주기 시작했다. 웃긴 게 나는 발톱이나 손톱을 정말 흰 부분이 하나도 없이 타이트하게 자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남편은 그걸 무서워하는 편이라 자꾸 내 손발톱을 들여다보며 "자를 게 없는데?"라고 한다. 그러고 허공에 대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는 당신을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온다.


6. 자궁이 너무 커져 늘 방광이 눌려있기에 화장실을 갔다가 10분 뒤에도 또 가고 싶은 느낌이 계속 든다. 막상 화장실에 가서 앉으면 정말 찔딱찔딱하게 나온다, 열받게시리... 게다가 어쩔 땐 재채기를 하다 오줌을 지린다. 임신성 비염이 너무 심해져서 재채기와 기침을 아주 자주 하는데 말이지.. 자연인이 되어가는 이 과정이 아주 굴욕적이다.


7.

우리가 찍을 만삭사진

원래 예약해 둔 만삭사진용 셀프 스튜디오를 취소하고 홈스냅으로 대체를 했다. 셀프 스튜디오까지 가는 게 너무 힘들 것 같기도 하고, 올해 이사 예정이라 곧 작별을 할 우리의 첫 신혼집과 고양이들도 담고 싶었다. 여담이지만 원래 조리원 연계로 예약을 했다가 애초에 취소를 했던 스튜디오에서는 정말 취소 후에도 몇 번이나 연락이 와서 차단을 박아버렸다. 아무리 예쁜 무드로 사진을 찍는다 해도 약 20kg가 불어버린 몸탓에 나는 어떻게 해도 그다지 드라마틱하게 나올 것 같지 않다만, 그래도 우리의 일상을 담을 생각에 설렌다.


8. 연애를 한 후 결혼을 하자마자 나는 남편을 보며 "나 결혼을 잘했구나" 생각을 했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편을 보며 "나 정말 결혼을 잘했구나" 새삼스레 더 느낀다. 그러니 이 마음이 유지가 잘 되게 아기 낳고도 잘 부탁해 남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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