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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sta Seo Jun 15. 2024

사랑이라는 MSG를 넣었습니다.

딸바보표 육개장

딸을 가진 세상의 모든 아빠는 딸바보다. 


2022년 가을, 곱게 키운 딸아이를 시집보내는 날이었다. 결혼식에 온 축하객들에게 인사말을 하던 중 나는 뭔지 모르는 밀려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그만 한참을 울먹이고 말았다. 다행히 감정을 추스른 후 마지막까지 인사말을 마치기는 했다. 도대체 그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애틋함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세상의 아빠들이라면 누구나, 딸에게 각별한 애틋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안녕하세요, 방금 소개받은 신부의 아빠 되는 ㅇㅇㅇ입니다.


먼저, 이 아름다운 계절에,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두 집안의 어르신, 친지분들과 지인, 동료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사실 지난 며칠은 지나온 제 삶의 시간을 차분하게 돌아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로 저희 부부에게 안겼던 아이가, 어느 사이에 자기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는 때가 되었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의 주체로 새롭게 인생의 페이지를 그려 갈려고 하는 딸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오늘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말, 평소에 하기 어색했던 말이 무엇일까? 이제 하겠습니다.


"ㅇㅇ아 고맙다. 아빠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선택하고, 행했던 모든 일 중에서 가장 가치 있고, 행복했던 것은 너와의 만남이었고, 너와의 시간이었단다. 네가 아빠에게 주었던 자부심과 긍지는 아빠가 늘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세상과 만날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단다. 

너와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감동하고, 토라지고, 마음 아프고 했던 모든 시간이 아빠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이야기로 남는구나. 네가 주었던 이 행복, 영원히 잊지 않을게.

변함없이 앞으로도 너의 옆에서 늘 고마워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너의 편이 되어주는 아빠로 계속할 거야."


ㅇㅇ아, 이 세상에서 네가 가장 아름다운 오늘 이 자리가 아빠에게는 "또 하나의 축복"으로 느껴진다. 아마 앞으로 다가올 너의 인생이 행복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거야. 그런 확신은 너와 함께할 ㅇㅇ군이 참 부드럽고, 진실한 인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생긴 거 같구나.

<ㅇㅇ이 아빠로서 이렇게 ㅇㅇ군을 소중하고, 멋지게 키워 주신 ㅇㅇ군의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ㅇㅇ아, ㅇㅇ군의 바른 삶의 자세와 너의 친밀감이 결합하면 어떤 멋진 그림이 나올까? 정말 기대된다. 앞으로 너희 앞에 펼쳐질 비단길과 가시밭길을 두 사람이 어떻게 현명하게 헤쳐 나가면서 아름다운 시간으로 수를 놓을지 지켜보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구나. 


너희들이 함께하는 생활의 바탕을 늘 대화하고,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로 한다면 어떤 갈등과 난관도 다 극복할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각자의 꿈을 공유하고, 서로의 꿈을 지지하면서….

아무리 현실이 힘들어도 매일 서로에게 조금씩 소망, 관심, 호감 등을 표현하면서 살기로 하자. 꼬~옥이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벽이라는 말 명심하고.


매일 자기 전에 서로에게 "당신 때문에 오늘 하루도 행복했어..."라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거 같다.


다시 한번 너희 두 사람의 시작을 축하한다. ㅇㅇㅇ과 ㅇㅇㅇ의 멋진 인생 기대할게.


감사합니다.”


그렇게 애틋한 감정의 기억을 만들어 주었던 딸아이가 주말에 육개장을 먹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결혼하고 1년 반이 지나는 시점에 임신해서, 요즘 입덧에다 감기까지 걸려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었다.     

소고기 육개장의 주재료인 양지살


육개장은 공이 많이 들어가는 국물 음식이다. 딸아이의 건강과 축복으로 세상에 나올 아기를 위해 전력의 공을 들여 육개장을 만들기로 했다.


먼저, 음식의 재료들을 가격보다는 국내산의 신선함을 기준으로 꼼꼼히 살펴보고 샀다. 

육수는 기름 찌꺼기를 일일이 망으로 건져내면서 만들었다. 파기름을 베이스로 고춧가루 기름을 만들 때 고소함과 맛깔스러운 냄새가 집안 가득 퍼졌다. 여러 가지 육개장 재료를 삶고, 손질하고, 양념장에 무쳐 육수에 넣는 과정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피로함을 느낄 수 없었다. 

육개장에 들어간 재료들

은근한 불에서 서서히 육개장을 끓이는 동안 소파에 누워 창밖의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몽실몽실 퍼져있는 풍경에서 평온과 온유가 느껴졌다. 

많이 끓여 엄마에게도 갖다 줄 생각이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 때 느껴지는 행복감이 온몸을 감쌌다.      


딸바보표 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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