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둘째 나오기 전 엄마를 보러 가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by 한시영

1년마다 돌아오는 날을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날이 차다 싶었는데, 3년 전 그 날처럼 비가 왔다. 그 날은 유난히 추워 아기띠를 하고 겨울 패딩을 입었더랬다. 첫 아이와 뱃속에 있는 아이까지 두 아이의 엄마로 나의 엄마 기일을 맞는다.


한파가 몰려온 날, 이날도 점심시간에 서울로를 찾았다.

유난히 첫째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아이 9개월에 엄마 장례를 치뤘다. 아일 보며 울 순 없으니 제대로 슬퍼할 수도, 울 수도 없는 마음에 어찌 한구석에 응어리가 진 듯하다. 장례식장에 상주 한복을 입고선 아기를 업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가 배고파 하면 젖을 물렸고


지금도 어쩌다 눈물이라도 흐르면 아이가 볼세라 훔쳐내기 바쁘다. 아이의 머리를 감기고 살갗에 비누칠을 하며 당신도 내 살을 만지고 씻기던 기분이 이 기분이었을까. 열이 끓어 자지 못하는 아일 보며 이 애끓는 내 마음이 당신 마음과 같았을까? 대답을 들을 순 없으니 추측만 해본다. 시간 차가 있어도 엄마란 이름으로 같았을 혹은 비슷했을 마음을 공유한다.


어떤 부모였던 간에 뱃속에서 열 달을 키워내 이 세상에 “생명”이라는 것을 틔워낸 그 자체가 대단함을 새삼 느낀다. 첫 아이와 마찬가지로 아이가 생긴 걸 안 후부터 시작된 입덧. 물만 먹어도 변기를 잡고 토악질을 해대는 괴로움에 더더욱 생각이 진해진다.


옅어질 그리움이라 그렇게 쉽게 생각했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그리움이라고. 그런데 어른이 되어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어른이었던 당신과 교차되는 부분이 많아지고 그 순간마다 놀라 마음이 놀란다. 식탁에 수저를 놓을 때, 아이 옷을 갤 때, 아이 머리를 빗겨줄 때, 아이 소풍을 보낼 때, 커가는 아일 볼 때, 그렇게 문득문득.

움트는 저 싹을 길러내려 뿌리는 온힘 다해 흙 속에서 몸부림 쳤겠지


슬픔을 써 내려가는 배경엔 위로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거다. 위로도 위로지만 이것이 내가 엄마를 기록하고 추억하는 방식이라 여기고 싶다.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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