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새벽에 쓰는 편지

by 한시영

엄마, 지금은 새벽 4시 48분이야.


아이들을 재우려고 같이 누웠다가 잠이 들고선 새벽 3시에 눈이 떠졌어 켜져있던 거실 불을 끄고 오늘 끓인 시래기된장국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잠든 아이들 배를 이불로 덮어주고 누웠어. 잠이 안오더라구. 포털기사도 읽어보고 쿠팡에서 생리대도 사고 애들 물티슈도 주문해보고 했는데 잠이 더 달아나더라. 4시가 넘어가니까 이제는 정말 자야겠단 생각을 하고선 잠든 남편 옆으로 기어들어갔어. 왠지 따뜻하면 잠이 잘 올 것 같았는데 불현듯 이제 현이가 5월이면 곧 24개월이고, 그 정도면 많이 키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면서 엄마가 생각이 났어. 결국 엄마 생각에 거실로 나와 노트북을 꺼냈어.


엄마, 5월이면 현이가 태어난 지 24개월이야. 많이 키웠지. 내가 두 아이의 엄마라니. 두 아이를 보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있어. 내게 가족이란 것이 생길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어릴 때부터 그려왔지만 늘 그려지지 않았거든. 엄마가 불행해 보이는 만큼 나는 불행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 하지만 그 불행은 내게도 피할 수 없는 운명같은 숙명일까봐 두려웠어.


엄마, 현이는 솔이랑 정말 달라. 엄마가 봤다면 아마 “요 녀석 아주 대장이네.” 라고 했을거야. 아직 세 살짜리가 언니를 이겨먹기도 하고, 엄마 아빠 진을 쏙 빼놓기도 해. 잘 울고 잘 웃고 감정 표현이 극단적이야.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엄마가 직접 들었다면 “왜 애한테 그런 표현을 써. 애가 극단적이라니. 내가 볼 때 정상이구만.” 라고 했을까.


엄마, 나는 엄마가 내게 줬던 것들을 아이들에게 주며 엄마를 떠올리고, 엄마가 내게 주지 못한 것들을 아이들한테 주면서 위로받고 있어. 아이들 때문에 행복한 건 잠시고 힘든 건 매 순간이지만 그로 인해 엄마를 떠올릴 때가 많네.


엄마가 내게 준 것, 그리고 주지 못한 것. 사실 그것의 경계는 그리 분명하지 않아서 나도 헷갈려. 내겐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이기도 했지만 늘 흔들리는 엄마의 눈빛은 내 존재를 흔들었거든. 엄마는 왜 그렇게 흔들렸을까. 엄마는 무엇이 그렇게 불안했던 걸까. 아이들이 예쁜 순간에 그로 인해 충만한 순간에 엄마가 자주 떠올라. 그리워서인지 공유하고 싶어서인지 잘 모르겠어. 그냥 엄마가 떠올라.


아직도 내가 엄마를 떠올린다는 사실이 낯설어. 이 시간에 불현듯 생각난 엄마에 대해서 쓰는 일도. 지금은 눈을 감고 애써서 엄마를 떠올리는 중이야. 엄마 말투, 엄마 목소리, 엄마 표정들. 그런데 엄마 목소리가 희미해져서 그게 좀 슬퍼. 들리는 것 같으면서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야. 들리는 것 같은데 들리지가 않아. 음소거된 티비를 보는 느낌이야.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을까, 나를 이렇게 키웠겠지. 파도처럼 밀려오는 엄마 생각에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어. 지금은 눈을 감고 타자를 쳐. 밀려오는 엄마를 머릿 속으로 그려보는데 머리를 묶은 채 식탁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는 엄마 얼굴이 보인다.


현이가 이제 24개월이야. 많이 컸지? 키우느라 나 고생 많았지. 엄마가 현이 봤다면 진짜 예뻐했을텐데. 현이도 할머니를 좋아했을텐데. 아쉽다. 현이랑 엄마랑 만나게 해주 싶은데 그게 안되서 너무 아쉽다.


애들한테 어떻게든 엄마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 한 살 무렵에 그래도 엄마를 봤던 첫째, 지금은 솔이가 7살인데 할머니 이야길 종종해. 엄마의 엄마라고 표현하더라고.


솔이가 어느 날은 "엄마, 엄마에게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했어. 그러고선 “그럼 엄마가 행복할텐데.”라고 했어.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내가 엄마가 있어서 행복한 것 처럼 엄마가 엄마가 있다면 행복할텐데."라고 대답하더라. 어린 아이도 아나봐. 엄마라는 무게를. 엄마라는 존재를. 엄마 나는 이렇게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 7살 아이랑 같이 살고 있어.


생각해보면 나도 이렇게 엄마의 행복을 빌었던 것 같아. 엄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인 것 같아서. 나의 행복을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엄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인 것 같은. 아마도 어린 나는 그만큼 엄마를 사랑했나봐. 엄마가 받았던 내게 받았던 그 사랑을 내가 받으면서 살고 있어.


있었다면 괴로웠을 엄마의 존재라는 것을 알기에, 엄마가 그립고 보고싶을 때면 나는 그 마음을 감추고 지우려고 해. 티나지 않게. 덮으려는 내 모습을 내가 모르는 양 그렇게 넘기다가. 결국 넘긴 것 같았으나 실은 넘기지 못한 마음들이 이렇게 새벽녘에 고개를 들 때면 거의 끌려나오다시피 글을 써. 그러고선 옆에 의자에 걸린 아이 내복바지로 눈물을 닦고 코를 푼다.


엄마, 마음껏 그리워하지 못하고, 마음껏 보고싶다고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늘 뭔가 안쓰러운 엄마에게, 엄마가 안쓰러운 내가 안쓰러워서 덮어두는 엄마에 대한 마음. 엄마는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


내 행복을 빌어주는 나의 꼬맹이들. 엄마의 행복을 빌었던 나의 모습이 겹쳐서 부모와 자식에 대해 생각해. 늘 말하는 거지만, 나를 태어나게 해준 것.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것 고마워.


현이 두번째 생일에는 엄마를 보러갈게. 현이까지 네명 가족사진 뽑아서 갈게.


어렸을 때 엄마가 왜 새벽에 불을 켜고서 무엇을 조용히 적기만 하는지. 많이 신기하고 궁금했거든. 실눈을 뜨느라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간 눈을 번뜩 떠서 "엄마, 뭘 쓰는거야?"라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그 나이에도 분위기라는 걸 알았는지 왠지 엄마를 혼자 둬야할 것 같아서 실눈을 뜬채 참았어. 엄마는 내가 자는 줄 알았겠지만 내가 잠들려던 순간에 내 등을 토닥이던 엄마의 손이 멈추는 바람에 잠이 달아나버렸거든.

새벽이 되어서야 무엇을 쓸 수 있었던 것. 새벽이 되어서야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것. 아이를 재워놓고 글을 쓰면서 오롯이 내가 되어 마음을 내보일 수 있었던 것. 내가 지켜주고 돌봐줘야 하는 어린 아이가 꿈나라고 떠난 뒤에야 마음을 꺼낼 수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아 가. 모두가 잠든 밤과 새벽, 조용히 거실로 나와 글을 쓰면서 엄마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생각해.


곧 보러갈게. 엄마가 좋아하는 후리지아 꽃 들고 갈게. 따뜻한 봄에 만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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