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와 햄버거

햄버거 먹다가 하는 사색.

by 한시영

엄마와 함께 본 영화는 ‘아저씨’였다. 과외를 해서 번 용돈으로 표를 예매하고, 영화관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포장했다. 본인 입으로 늘상 자신은 여리고, 약하고, 착한 존재라는 것을 내게 주입시켰던 엄마는 아이러니하게도 액션 영화를 좋아했다. 원빈이 나올 때마다 수줍은 표정을 짓던 엄마. 그런 엄마를 곁눈질로 확인했었다.


영화 <아저씨> 의 배스트 of 배스트씬

햄버거를 먹으며 봤던 아저씨, 무엇보다 영화를 보며 좋아하는 엄마를 보고선 느끼던 그 뿌듯함의 감정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다. 엄마에게 좋은 경험을 선물해줬다는 그 뿌듯함. 아이에게 새로운 것을 체험하게 한 부모의 마음을 나의 엄마를 통해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엄마인 동시에 내가 보호해줘야 할 어떤 존재였다. 엄마 입으로 말하던 그런 약하고 여린 존재. 그게 벌써 9년 전이다. 원빈 오빠 하며 보던 내가, 이젠 원빈과 함께 늙어가는 처지가 됐다.

오늘은 유난히 정신이 없었다. 시간이 없으면 무엇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중 가장 만만한 것,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건 나의 식사다. 아이들의 식사와 케어를 포기할 순 없기에 우선순위에 밀린 나의 끼니. 결론은 햄버거다. 빨리 먹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뒷정리까지 간단하다. 아이를 보며 햄버거를 한 번에 다 먹는 호사는 바라지도 않는다. 세 입 정도 크게 물어서 씹었을까. 강아지처럼 내게 기어 와 얼굴을 벼대는 둘째를 안기 위해 햄버거를 내려놓았다. 아이를 안고 재우며 먹지 못해 여운이 남은 식탁 위 햄버거를 쳐다보는데 이거, 그냥 햄버거가 아니다. 햄버거는 맞는데 자꾸 나한테 말을 건다. ‘기억해봐, 나야 나. 아저씨 보면서 먹었잖아.’ 그래, 아저씨, 엄마랑 봤었지.

햄버거에서 영화 아저씨, 아저씨에서 엄마까지 자연스레 사고가 확장된다. ‘아.. 또 엄마야?’하면서 흐르는 생각에 자리를 내준다

엄마는 새로움, 도전, 이런 것들을 싫어했다. 두려워했다. 경력 단절도 오래되었고, 아니 사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술에만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커가면서 엄마의 존재는 점점 무너져갔다. 내 피붙이가 무너지는 것을 보는 마음. 내가 대신이라도 그 인생을 살아주고 싶은 그 심정. 그 모습이 안타까워 볼링, 헬스, 요가 등의 운동도 권해보고, 여러 문화 강좌 등록도 해봤으나 엄마로부터 돌아오는 답은 ‘생각 좀 해보고’였다. 생각 좀 해본다는 것은 거절을 뜻한다. 영화관 가는 것도 겨우겨우 엄마에게 따낸, 엄마의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무조건 새로운 건 하고 봤다. 새로운 일을 벌임으로써 드는 에너지보다는 하지 않고 드는 망설임의 에너지가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엄마는 연민의 대상이면서 한심한 사람이었다. 왜 시도도 해보지 않고 주저앉지? 왜 주어진 삶을 저렇게 살까? 이제 와서 보니, 조금 더 살아보니, 엄마를 이해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나름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새로운 도전을 무서워하는 유형의 특징은 무엇일까? 작은 성공의 경험들의 뒷받침되지 않기에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 억압을 받은 경험이 있었을까? 스스로가 만든 틀 안에 갇혀있는 엄마에겐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게 만든 그 족쇄와도 같은 틀은 가장 사랑하는 딸조차 부술 수 없었다. 오로지 그것은 자신의 몫, 엄마 자신의 몫이었다. 내가 보면 그것은 엄마의 족쇄며 틀이었지만 어찌 보면 엄마에겐 그것이 보호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말한 작고 여린 존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 시작하지 않으면 상처 조차 받지 않을 테니까.

나는 왜 이렇게 엄마의 삶이 궁금한지. 햄버거에서 아저씨, 그리고 굳이 엄마를 불러내 이렇게 그 삶을 파헤치고 있다. 엄마를 추적해나가는 것, 그것이 내 인생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본능일까.

사람은 몇 만 년 전의 화석을 발굴하고 아주 작은 조각조차 붓으로 먼지를 털어가며 그 얼개를 맞춘다. 우리가 인류 역사의 기원을 알고자 유물을 발굴하고 연구하고, 그렇게 ‘역사’라는 학문을 만들어낸 것처럼 뿌리를 찾아나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나 역시 나라는 개인적인 역사를 알아내기 위해 나름의 유물을 건져내고 얼개를 맞추고 있다.

햄버거 먹다가 여기까지 왔다. 여리다던 엄마, 하지만 액션 영화를 좋아하던 엄마, 그 안에서 점점 작아져만 갔던 엄마. 정신이 없어 끼니까지 햄버거로 때운 오늘, 그 틈을 잘도 비집고 나의 사색은 오늘도 이렇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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