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도 장소와도 갑작스러운 이별은 힘든 법이다.
삶이 고단했다. 어린 시절 마음 비빌 언덕 하나 없이 그리 살아왔다. 어린아이와 고단한 삶의 조합이라니, 어딘가 어색하지만 그 나이에 감당하기 팍팍한 현실이 힘에 부쳐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지는 해가 내뿜는 다홍색이 잔뜩 물든 구름과 하늘을 배경으로 삐죽빼죽 올라선 아파트들이 보였다. 저런 아파트 안에는 불행은 결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행복이 가득해서 불행 따윈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는 그런 곳. 닿기엔 너무 먼 거리라 금세 고개를 떨구곤 했다.
다음 달에 이사를 간다. 내가 나고 자란 이 동네를 떠난다. 어제 오후에 역곡역으로 걸어가던 중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떠날 마음의 준비가 안됐는데, 물리적으로 이렇게 떨어지네.’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엄마를 보낼 때도 그랬다. 그때도 난 아무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사랑할 수도, 용서할 수도, 떠나보낼 수도 없었는데, 그렇게 엄마가 가버렸다. 엄마가 떠났을 때 느꼈던 그 상실감과 허탈감을 이사를 앞두고 느낀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엄마를 연상시킬 만큼 그렇게 중요했나 보다.
어려서 힘들었던 기억들과 당시의 장면들이 눈앞을 스친다. 얄밉게도 정말 자세하게. 의식하지 않아도 눈감으면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들을 나는 거부할 수가 없다. 그저 기억나면 나는 대로, 생각나면 나는 대로 그 기억들에 시간을 내준다.
내 평생 엄마와 함께 했던 동네를 떠난다. 이별은 사람만이 아니라 장소와도 하나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돌이 안된 9개월 아이를 보느라 마음껏 슬퍼하지 못해서 그런가. 그때 미처 다 울지 못했던 마음들이 올라온다. 난 아직인데, 헤어져야 하고 떨어져야 했던 그 상황 속에서 더 울었어야 했고, 더 아파했어야 했던 마음들이 고개를 내민다. 네 마음속에 이런 마음들이 있었다고, 그러니까 알아달라고.
아, 이번 이사 쉽지 않다.
(20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