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몸에 새겨진 그녀의 기억

많은 기억을 안고 새긴 채 살아가는, 인생의 고달픔에 대하여

by 한시영

딸로서, 내가 엄마였고 엄마가 나였던 적이 있다. 엄마는 나였고 나는 엄마였던 시간. 그러다 엄마와 나는 다를 수 있다는 것, 우리 둘은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자라 가며 알았다. 정확히는 알거나 깨달은 건 아니었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거 같다.



Trigger라는 단어가 있다. 방아쇠, 무엇의 원인이 된다는 뜻을 가진 단어다. 요즘 들어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Trigger가 많다. 좋은 발라드를 듣다가 엄말 떠올린다. 그 연결고리는 더 웃기다. 중학교 시절 부천역 지하상가에서 옷을 사며 듣던 발라드가 생각났고. 그때의 엄마와 내가 떠오른다. 내 의식의 흐름이란 발라드에서 엄마를 떠올리는 그런 건가. 요즘 쌈, 마이웨이를 정주행하고 있는데 문득 엄마가 떠올라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주인공들이 나와 매우 유쾌한 장면에서 왜 목구멍이 뜨거운지, 가슴이 묵직해지는지 몰라 찝찝함으로 침대에 누웠다. 잠시 뒤 trigger가 무언지 번뜩 떠올랐다. 극 중 설희가 3년 전 아침 시대극 주인공이었고, 우리 엄만 그 드라마를 좋아했다.



오후에 내리쬐는 볕이 제법 따스하다. Fuji Natura black


이렇게 무섭다. 내 의식은 설희가 누구였는지 모르지만 내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때론 너무 많은 기억을 안은 채, 새겨진 채 살아가는 것, 그것 자체가 인생의 고달픔이 아닌가 한다. 이럴 때면 나의 기억과 아픔과는 비교하지 못할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이 교차된다. 가족을, 동료를, 이웃을 잃은 사람들. 가슴과 머리와 온몸에 그 기억을 새기고 살아갈 사람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 말은 여기서 나온 게 아닐까.

정확히 묘사할 만한 단어가 생각이 안 난다. 그리움과 씁쓸함, 목 막힘 정도겠다. 그런 감정과 느낌들이 날 툭 치고 갈 때면 여운이 길다. 나는 그대로 회사에 다니고 일을 하고 아일 보지만 실은 며칠은 앓은 느낌이다. 갑자기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뜨거움에 눈물을 참기도 하고, 무튼 요즘은 그런 날들이다. 무엇으로 나마 표현하지 않으면 가슴속 응어리가 돌이 되어 그 무게로 가라앉아버릴 듯하다. 그래서 움직이는 지하철 안에서, 지금 내 감정이 어떤 거고 이걸 표현할 만한 단어를 머리와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찾는다. 이 초여름의 습함이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201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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