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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소이 Oct 14. 2021

출발

  “빌어먹을. 그래 잘났다.”

  나는 허공에 대고 발길질을 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택시를 보자마자 좋아했건만, 택시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옆에 있던 남편은 하얀 입김만 내뿜었다. 발바닥을 비비적거리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당장이라도 진눈깨비가 내릴 것처럼 하늘은 흐려있었다. 칼바람마저 옷깃을 스쳤다. 목덜미가 여느 날보다 더 시리게 느꼈다. 어디를 가려할 때마다 출발은 순조롭지 않았다. 매번 겪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막상 일에 부딪힐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잠시 저쪽에 가 있어.”

  나는 안 되겠다 싶어 남편에게 손짓을 했다. 남편은 무슨 뜻인지 알았다 듯 휠체어를 굴려 차도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차도로 나가 손을 흔들었다. 택시 한 대가 멈추었다. 

  “장애인이 한 명 있는데…….” 

  말끝을 흐렸다. 운전기사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타라고 했다. 그에게 손짓했다. 남편은 택시 근처로 다가왔다. 트렁크 문을 열고 휠체어를 실었다. 남편은 조수석에 앉았다. 택시 기사는 몸을 기울여 남편에게 안전벨트를 매주 었다. 그 모습이 흐뭇했다.      

  남편과 나는 다섯 살 터울로 식당 종업원과 손님이라는 인연으로 만났다. 그는 식당 옆 컴퓨터 가게 사장님으로 종종 밥을 먹으러 왔다. 남편은 지체 1급 장애인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 때문에 나는 그에게 두 배로 친절을 베풀었다. 우린 자주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많았고 여느 연인들처럼 사랑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우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고 구분 짓고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끝이 안 좋을 것이다. 포기해라. 평생 후회할 짓 왜 하느냐? 등등 부정적인 말만 했다. 그럴 때마다 오기가 났다. 다들 왜 그렇게 부정적이지?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안 될까? 세상을 탓하며 그의 곁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부모 몰래 동거했다. 서로를 신뢰하며 사랑을 키웠다. 그 행복은 오래가는 듯했지만, 염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어느 날 친정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향에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갈 수 없다고 말하였다.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셨다. 어디서 병신 같은 녀석을 만났냐는 것이다.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부녀의 관계는 끝이라고 하였다. 나는 참아왔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앞에서 불효한다는 생각이 억장을 무너뜨렸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고생하길 바라겠는가? 그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나는 아버지가 축복해주길 바랐다.  


 자동차 면허시험장에 도착했다. 남편은 그동안 운전을 배울 엄두를 못 내었다. 가족 누구도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라고 권한 사람이 없었다. 남편에게 운전은 절실했다. 어디를 가고 싶어도 남편의 발목을 잡는 건, 이동권 문제였다. 마침 그때 남편은 차 한 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면허가 없어 주차장에 세워두기만 했다. 나도 면허증이 없어 동행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택시를 불러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 방법은 오래가진 못했다. 여러 생각 끝에 우린 면허를 따기로 의견을 모았다.

  면허시험은 통과해야 할 전형들이 많았다. 서류심사가 마쳐졌다고 생각되면 아래층에 있는 건물로 가서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다. 모든 일이 한 곳에서 이루어졌으면 하고 바랐는데,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문제가 있었다. 나야 상관없지만, 남편은 또다시 엘리베이터로 왔다 갔다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동하는 문제는 역시 우리의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이동하는 문제보다 더 눈을 뒤집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바로 화장실 문제, 본관 건물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었다. 나는 몹시 화를 냈다. 면허시험장 같은 공공기관에 장애인 화장실 하나 만들어놓지 않았다는 점이 불쾌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었다는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신체검사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오랜 병원생활이 남편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각 검진마다 자연스럽게 통과를 불렀다. 일이 술술 풀려 마음을 놓고 있을 즈음에 남편이 눈살을 찌푸렸다. 핸들 조작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가 남아 있었다. 검사는 상당히 어려웠다. 경추 손상 장애인은 상체 운동을 꾸준히 했어도 근육 신경이 살아나지 않아 핸들을 돌리는 게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남편이 휠체어에서 내려 핸들 조작하는 기계에 앉았다. “삑”소리가 나면서 기계는 작동되었다. 남편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핸들을 일정 수만큼 빠르게 돌렸다. 남편이 핸들을 힘차게 돌렸지만 돌리는 횟수가 적었다. 기계는 통과했다는 부음이 없었다. 검사원은 다시 하라고 권했다. 남편이 한숨을 내쉬고 다시 핸들을 돌렸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계속 실패만 하였다. 나까지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압박붕대를 이용해서 해 보시는 게 어떨지? 다른 분들도 안 될 때 손목에 감아서 돌렸는데 되더라고요. 이것을 해서도 안 되면 운전을 할 수 없습니다.”

  검사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번 해보지요.”

  남편은 압박붕대를 건네받고 씁쓸하게 말했다.  내가 압박붕대를 남편 손목에 친친 감아 주었다. 내 손이 떨고 있었다. 잘 될까? 진땀이 났다. 여자 손처럼 가늘기만 한 남편 손목. 남편은 내 손을 살포시 잡았다. 걱정 말라는 남편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남편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는 힘껏 핸들을 돌렸다. 초긴장 상태였다. 만약 여기서 실패하면 영원히 면허를 딸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순간, “통과입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어찌나 기뻤던지 남편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 검사원도 의외로 잘했다며 박수를 쳤다. 놀라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럴 때를 두고 쓰는 말 같았다. 남편도 긴장이 풀렸는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모든 서류전형을 무사히 통과하고 본관에서 나왔다. 

  “눈이다.”

 남편이 함박꽃만 한 미소를 보였다. 하늘에서는 야광충 같은 눈이 사뿐히 내리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모두 눈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아직 필기시험과 기능이 남았지만, 면허증을 받은 것 마냥 뿌듯했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기분이란 어떨까? 상상 만해도 가슴이 벅찼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곁에서 차를 타는 기분, 빨리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감상에 빠지고 있을 무렵, 우리 옆으로 누군가 눈물을 훔치며 지나는 사람이 있었다. 더러는 이맛살을 찡그리며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기능시험에서 불합격한 사람들이었다. 불합격한 사람들의 이유는 다양했다. 차 시동이 중간에 꺼졌다거나, 신호를 지키지 못해 아웃되거나, 출발선을 넘자마자 정차를 한다거나, 변속을 놓쳐 차도를 이탈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런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절망적이라는 점에서 슬퍼 보였다. 하지만 대기실에는 기능시험을 치르려고 순번을 기다리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왜 그들은 떨어지면서 또다시 오는 걸까? 남편은 핸들을 몇 번의 실패 끝에 완벽하게 돌릴 수 있었다. 처음부터 잘하면 좋겠지만, 결과는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택시를 탈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원하는 택시가 처음부터 왔으면 좋았지만, 일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사랑도 그랬다. 나는 아버지에게만큼은 축복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내 욕심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도했다. 아버지가 반대하셔도 설득해보는 데까지 노력을 해보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자식 된 도리였다. 그러고 보니 남편과 나는 출발선에서 대기하는 차량과 같았다. 우리의 사랑은 급제동으로 번번이 정차되지 않았던가? 가끔은 언덕에서 비틀거리며 내려오기도 하고, 가고 싶은 길 앞에서는 장애물 때문에 돌아서 온 날도 많았다. 삶이란 결국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자만에 빠지며 마음 조리며 살았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삶을 가져야 하는데, 나는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다. 돌이켜보면 참 후회스럽다. 이 단순한 이치를 깨닫기까지 남편의 존재가 의미 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한없이 감사하다.

  눈은 소복이 거리에 쌓여만 갔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어디선가 간간이 들려왔다. 남편은 콧노래를 불렀다. 눈꽃 같은 미소도 짓는다. 나는 차도로 나가서 손을 흔들었다.

  “택시!” 

  좀처럼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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