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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소이 Oct 14. 2021

바람 빠진 휠체어 바퀴

전날 남편이 바퀴에 바람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바람 넣기가 귀찮았다. 잔꾀를 부려 자동차 정비소를 찾았다. 자동차 공기압 넣는 기계는 휠체어 바퀴에 바람을 시원하게 넣었다. 집에서는 휴대용 펌프로 바람을 채웠다. 휴대용 펌프는 팔 근육이 저리다 할 정도로 손을 움직여야 했다. 바퀴가 빵빵해져서 속이 후련했다. 기꺼운 마음으로 바퀴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어디선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슝 하면서도 펑 소리에 가까운 굵은 소리, 그 소리에 근원지는 아들 놀이방에 있는 파란색 휠체어였다. 전날 넣은 바퀴에 바람이 빠짐과 동시에 튜브에 구멍이 났다. 허탈했다. 남편 출근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남편도 이맛살을 찡그렸다. 남편은 경추 손상 장애인이다.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몸이었다. 파란색 휠체어는 그의 외출용 발이었다.

  남편 차는 지상에 있었다. 즐비하게 늘어선 차량 뒤편으로 빨간색 휠체어를 굴렸다. 빨간색 휠체어는 실내용이었다. 오래 탈것을 생각하고 아끼고 열심히 닦았던 빨간색 휠체어, 오래간만에 바깥에 나선 기분이 어떨까? 사람이라면 묘하거나 신선할 것이다. 남편을 차에 태우고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었다. 집에 들어섰다. 축 늘어진 파란색 휠체어 바퀴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바람 빠진 꼬락서니라니. 당장 고치러 갔다. 그런데 막상 고칠 곳을 찾아보니 장애인 보장구 수리점이 없었다. 지인에게 전화했다. 그 또한 다른 지역에 가서 수리하고 온다는 얘기뿐이었다. 순간 화가 났다. 장애인 인권에 대한 목소리는 높으면서 정작 공공기관에서는 복지정책으로 보장구 수리점 하나 만들어놓지 않았다는 점이 이해가 안 갔다. 인터넷으로 검색했지만 뾰족한 정보는 없었다. 한참 고민한 끝에 자전거 점포를 찾아가기로 했다. 자전거 점포 주인은 오십대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땜질은 안 되겠고, 이런 크기는 없는데.”

  점포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공구 몇 개를 이용해서 바퀴 표면을 뜯어낸 후, 안에 있는 검은색 고무 튜브를 벗겨 냈다. 그의 손놀림은 예사롭지 않았다. 오랫동안 자전거를 정비한 손놀림이었다. 점포 입구 벽면에는 상장처럼 걸린 정비사 수료증이 그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의 팔뚝에 힘줄이 돋았다. 주인은 새 튜브를 꺼냈다.  휠체어 치수에 튜브를 맞추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도 아닌데.”

  주인은 바퀴 안쪽에 고무로 만든 끈을 두르고, 테두리에 튜브를 사이클에 맞게 끼웠다. 다음으로 바퀴 겉면을 안쪽으로 넣었다. 바퀴 겉면을 끼우는 게 생각보다 힘을 요구했다. 그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됐다. 겉면을 다 끼우고 나서 바퀴 꼭지에 바람을 넣었다. 슝 하는 기계음과 동시에 공기가 들어갔다. 바퀴가 탱탱해졌다. 이윽고 퓽! 하는 소리와 함께 구멍이 났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렵네.”

  나는 괜히 미안했다. 그러나 당장 휠체어를 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다시 튜브를 갈았다. 두 번째에서는 구멍이 나지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주인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튜브를 갈면서 질문을 던졌다.

  “누가 타는 거예요?”

  “남편이요.”

  “교통사고?”

  “아니요. 추락사고였어요.”

  “저런.”

  주인은 혀를 찼다. 사소한 질문이었지만 나는 성실히 답했다.

  “요즘 사람들 사고로 장애도 입지만, 세상이 험해서 정신장애가 더 많아요.”

  순간 그 말을 듣고 나는 뜨끔했다. 주인은 공구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수리비는 단돈 만 원. 온 힘을 다해 수리한 품값으로는 너무 적다고 여겼다. 나는 어쭙잖게 지갑을 열었다.

  “종종 장애인들이 우리 집을 많이 찾아요. 땜질할 때는 그냥 공짜로도 해 드리는걸요.”

  너털웃음을 날리는 주인의 모습에서 인정이 넘쳤다. 계산대에서 상황을 지켜본 그의 아내도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구멍이 나면 언제든 오세요.”

  주인이 이 말을 남기고 나를 배웅해줬다. 집으로 가는 발길이 가벼우면서도 무거웠다. 나는 잔꾀를 부리다 일을 크게 만들었다. 다시는 정비소에 가서 휠체어 바퀴에 바람 넣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장애인 남편과 같이 살면서 그를 이해한답시고, 게으름을 피운 건 건강한 정신이 아니었다. 점포 주인이 내뱉은 말이 계속 맴돌았다. 세상이 험해서 정신장애가 많은 게 아니라 사람들 정신이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바른 정신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신 욕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한 사람이 나라는 것. 그 바르지 못한 정신이 점포 주인이 말한 정신장애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에 이르자, 나는 부끄러웠다.

  혹여 불상사가 생길지 몰라 휠체어 튜브 여유분을 넉넉하게 구했다. 인정 있는 분을 만나 바퀴를 고쳤지만, 인색한 분을 만났더라면 나는 온종일 내가 잘못한 일로 우울했을 것이다. 세상은 아직 살맛이 난다. 깨우침을 준 점포 주인에게 감사하다. 더불어 지역에 장애인 보장구 수리점이 생기길 고대해본다. 남편이 이제는 바퀴를 잘 굴릴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마음 바퀴를 잘 굴려야겠다. 속이 꽉 찬 바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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