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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소이 Oct 15. 2021

장맛비

집안은 눅눅한 기운이 감돌았다. 방바닥에 밥풀이 달라붙듯 끈적거려 보일러를 틀었다. 한증막처럼 후끈 달아오른 거실 기온, 습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에어컨을 틀고 잠시 냉기에 의지해 몸을 말렸다. 눅눅한 기운은 다시 찾아오고야 말았다. 연이틀 장맛비가 줄기차게 퍼붓는다. 이젠 슬슬 지겨워지려고 한다.

“으악! 이게 무슨 냄새야?”

코끝을 부여잡고 이맛살을 찡그렸다. 지린내가 진동했다. 전날 밤 네 살배기 아들은 요에다 오줌을 쌌다. 요가 흥건히 젖어서 당장 세탁기에 집어넣지 않을 수 없었다. 기분 좋게 시작해야 할 아침에 나는 한숨부터 나왔다. 건조대 위에 요를 널고 아들에게 소리쳤다.

“오줌 또 싸면 소금 받아와야 해!”

“네.”

아들은 멋도 모르고 웃는다. 가뜩이나 날도 구질구질해서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녀석마저 나를 돕지 않은 것 같아 울화통이 터졌다.

“더워서 못 살겠다. 나 샤워시켜 줘.”

남편이 부탁했다. 남편은 경추 손상 장애인이다. 걷지도 못할뿐더러 더위 앞에서는 몸이 늘어져 여름이면 에어컨과 선풍기를 끼고 살아야만 한다. 남편이 해달라니 덩달아 아들까지 샤워시켜 달란다.

“그래. 우리 가족 모두 샤워하자.”

시원하게 몸뚱이를 닦으니 습한 기운이 조금이나마 사라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남편은 후텁지근한 기운이 싫어선지 수건을 두 세장씩 꺼내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수건은 바닥에 낭자하게 깔리고, 아들은 욕탕에서 물총놀이를 하겠다며 내 기운을 쏙 빼놓았다. 빨래를 한꺼번에 해야 하는데, 수건이 왕창 나와 있으니 이러다간 당장 쓸 수건조차 부족할 것 같았다. 이미 빨래 바구니에는 전날 나온 빨래로 넘쳐 났다. 내 한숨도 그 위에 하나 더 올려놓았다.

샤워를 하고 나면 꼭 갈증이 찾아온다. 수박 반통을 잘랐다. 평소 수박 먹으라고 하면 진저리 치던 아들이 더웠는지 득달같이 달려와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는다. 수박 즙을 뚝뚝 흘리며 게걸스럽게 먹는다.

"요 녀석아. 흘리지 좀 말고 먹어."

나는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주고 걸레질을 했다. 아들은 꾸중을 들어도 먹느라 바쁘다. 엄마 한번 드셔 보세요 소리도 없다.

오후부터 빗줄기는 차츰 가늘어졌다. 창문을 열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 한 자락이 집안에 들어오기를 고대했다. 남편과 아들은 팬티와 러닝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 자세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이리저리 집안을 살피며 먼지 닦고, 어질러진 곳 정리하느라 잠시도 가만있지 못했다. 그러다 아들이 나를 찾으며 놀아달라고 보챘다. 계속 들들 볶아 “조금만 기다려.”라고 윽박을 질렀다. 그러자 녀석이 울기 시작했다.

  “으앙.”

  “울지 마.”

  더운 것보다는 아이 울음소리가 진을 더 빼놓는다. 결국 나는 아이에게 질 걸 뻔히 알면서도 심통만 부렸다. 남편이 놀아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러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가끔 남편에게 투정 부린다.

   “자기가 좀 놀아주면 안 돼?” 

   “내가 어떻게 놀아 주냐?” 

  남편이 말했다.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빈말이라도 그래, 놀아줄게 라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나의 욕심이다.  아들은 휠체어를 타는 아빠 몸 상태를 알고부터 놀아달라거나 보채지 않는다. 아빠의 정을 많이 느끼지 못하는 아들이 어느 때는 안쓰럽다. 그래서 누구보다 엄마인 내가 아들에게 아빠의 몫까지 두 배로 신체놀이를 하며 놀아준다. 그러나 살림과 간병까지 하다 보니, 생각처럼 몸이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아들과 놀아주는 시간은 신나게 즐기려고 한다. 아들을 목마 태우고 방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 나는 인간 비행기가 되었다가 우주선이 된다. 아들은 좋다고 상글벙글하다. 한참을 놀아주고 나면 등줄기로 땀이 흠뻑 젖는다. 힘이 바닥날 즈음, 나는 아들을 내려놓고, 대자리가 깔린 침대로 달려갔다. 그대로 벌러덩 누웠다. 대자리는 땀이 묻거나 끈적거리는 느낌이 없어서 좋았다. 차가운 기운과 더불어 몸에 흡착되지 않는 느낌, 무엇보다 편안해서 좋으니 눈이 저절로 감겼다. 아들도 졸렸는지 내 젖을 만지작거리다 잠이 들었다.

  “빵빵.”

  자동차 경적소리로 귓가가 찢어질 듯했다.

  “젠장.”

  욕이 저절로 나왔다. 꿀맛 같던 잠이 확 달아나고 말았다. 어느 차인지는 모르지만, 달려가서 혼쭐을 내고 싶었다. 아파트 저층이라 바깥 소음이 크다는 것은 알았지만, 잠마저 빼앗아간 날은 분통이 터진다. 그래서 가끔 남편에게 바가지 긁는 소리로 아파트 고층으로 이사 가자고 투덜댔다.  잠이 달아나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모처럼 찾아온 나만의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바빴나? 싶어서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만의 시간이 생겨서 기분은 좋았다. 모처럼 책을 펼치고 독서 좀 즐기려고 했다. 그런데 책을 가지러 책꽂이가 있는 창가로 가보니 바닥이 질척거렸다. 창문이 열려 있었다. 빗물이었다. 독서고 뭐고 간에 다시 걸레질을 했다.  창문을 닫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게 남의 탓 같아 부아가 났다. 자업자득이라고 했나? 아침부터 장마 탓을 하며, 아이 탓을 하며 불평만 늘어놓고 한나절을 심통 속에 보낸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건넛방에서 사람들 함성소리가 터졌다. 아마도 남편은 야구 채널을 틀어놓고 잠들었나 보다. 아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선풍기도 없이 자려니 더웠을 게다. 나는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건넛방으로 아들을 안고 건너갔다. 남편은 두 팔을 벌린 채 세상모르고 잔다. 아들을 남편 옆에 니우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피는 못 속인다 해도 어쩜 자는 모습까지 저리 닮을 수 있을까? 싶어 우스웠다. 두 남자는 닮은 구석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아이처럼 나에게 늘 뭐해달라고 부탁하거나 요구할 때다. 남편은 몸 상태가 나쁘니 내가 이것저것 수시로 간병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나이 어린 아들까지 나에게 떼쓸 때는 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 이렇게 생활한 지도 벌써 5년이 되었건만, 나도 어린아이 마냥 왜 그리 불평을 늘어놓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받아들여도 좋으련만. 아직도 무엇이 부족해서 일상 속에서 마녀처럼 못된 심보를 가질까? 그건 아마도 ‘나’라는 여자의 삶은 없다고 여겨져서 그런 걸까? 선택은 내가 했다. 장애인 남편과 함께 살면서 로맨틱한 꿈은 꾸지 않았다. 남편 건강 잘 챙기면서 알콩달콩 사는 걸 행복으로 여겼다. 아기가 생기면서 현실은 달라졌다. 아내로 살면 될 것을 엄마가 되면서부터 남편 입장이 아닌 아이 입장에서 모든 걸 맞추려다 보니, 적응이 되지 않아 혼란이 왔다. 하지만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깟 역경도 이겨낼 수 있어, 체념도 즐거움으로 바뀔 것을, 나는 계속해서 부딪히는 일상을 감수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나 스스로 전부 주기만 하기 때문에, 대접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그 마음 때문에 두 남자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장애인 가족은 여느 가족들과는 불편함이 많다. 신세타령만 하면서 삶을 포기하는 자세는 나 스스로 잘못된 것 같다. 아마도 창문에 들이친 빗물이 아니었더라면 소갈 머리 없는 심보로 우리 가족을 원망하고 있었을 것이다. 일상을 기쁨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내가 펼치는 ‘일’들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나 자신부터 여유를 갖고 바라보아야 한다.  언제 멈추어 바라보았던가,  우리 집에 찾아온 빗물에게 감사해야 할 듯싶다. 두 남자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사람들인지 잊고 있었다. 천천히, 여유롭게, 느리게 살아도 될 것을, 너무 앞서가려고 했고, 조바심만 낸 것 같아 부끄럽다. 

  비가 그쳤다. 먹구름이 걷히고 있다. 그 시간 아들과 남편은 잘 잤는지 기지개를 켰다. 나도 마음의 기지개를 켰다. 장맛비처럼 퍼붓던 악한 감정들을 걷어내고. 햇볕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가족을 대하련다. 아, 햇살이 나온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해님,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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