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에 물을 받는다. 뜨거운 물이 담길 동안 남편의 옷을 벗긴다. 그 사이에 여섯 살배기 아들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나를 찾지 않겠다는 뜻이다. 안심이다. 욕실 입구에 남편이 타는 휠체어를 세운다. 브레이크를 잠그고, 남편 손을 잡은 뒤 내 앞으로 몸뚱이를 잡아당긴다. 벌거벗은 몸뚱이, 남편의 두 다리는 핏기가 없어 뼈만 앙상하다. 걷지 못하는 두 발, 한 달에 한 번 일으켜진다. 남편 엉덩이가 욕조 바닥에 천천히 닿는다. 처음 입수시킬 때 하는 작업이다. 다음으로 하체인 두 다리를 넣는다. 뜨거운 물에 닿는 두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진다. 강직이다. 뜨거움과 찬 느낌을 잊어버린 피부, 다리는 한 달에 한 번 물속 방문이 낯설다. 남편 다리가 욕조에 푹 담긴 뒤에야 마지막으로 남편 손을 놓는다. 그때까지 잠시라도 방심하면 남편은 타일 바닥에 고꾸라진다. 조막손이라 불리는 그의 두 손이 물속에 잠긴 걸 확인한 뒤에야 나는 숨을 고를 수 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수증기가 욕조에서 모락모락 올라온다. 잠시 의자에 걸터앉는다.
10년 전, 남편은 추락사고로 사지 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휠체어 없이는 잠시도 움직일 수 없다. 4년간의 재활 끝에 그는 사회에 나갈 수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비장애인인 지금의 나를 만나 결혼했다. 물론 반대도 있었지만, 아픔을 극복하고 잘살고 있다. 슬하에 자식도 있고 직장도 다닌다. 비교적 그는 안정되어 보인다. 그러나 그 뒤에는 내조를 아끼지 않은 나의‘손이 있었다.
욕조 안에는 남편 몸에서 나온 허연 분비물이 둥둥 떠다닌다. 나는 때수건에 손을 집어넣어 남편 손부터 닦는다. 나는 가끔 남편 손을 장난 삼아 ‘우리 주먹이’라고 부른다. 경추 신경 4번 손상으로 남편 손은 손목에 힘이 없다. 손바닥을 펴지 못해 굽어 있는 손. 그런 손이 안쓰러워 나는 밤마다 손바닥을 펴주며 잠들었다. 팔과 배, 등, 다리 순서로 물리적인 힘을 가해 때를 밀고 나면 나는 허리가 아프다. 찜질방에 앉은 것처럼 욕실 안은 후끈하다. 뜨거운 공기가 허공 속에서 날아다닌다. 남편도 물속에 오래 앉은 탓인지 힘들어 보인다. 국숫발처럼 밀려 나온 그의 때들이 바닥에 낭자하다. 바가지에 온수를 담아 그의 몸뚱이에 뿌린다. 남편은 탄성을 내뱉는다. 온기로 뿌예진 거울을 쓱쓱 닦는다. 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마지막으로 비누칠을 한 후 다시 그의 몸에 물을 뿌린다. 그의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개운하다는 뜻이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남편을 휠체어에 앉힌다. 목욕은 끝났다. 샤워기로 욕실 안을 정리하면서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때를 본다. 남편 몸에 한 달 동안 숨어 지낸 녀석들. 내 손을 거치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을 미물이다. 그러나 때는 뜨거운 물속에 담가줘야 나타나는 묘한 존재다. 한 시간 가량 수고한 내 손을 보면서 문득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삶은 수없이 많은 담금질이 필요하다. 어떤 뜨거운 기운, 아니면 감회가 내면에 자리 잡히면 ‘때’처럼 더럽거나 지난날 불순했던 토사물이 뱉어질 수 있다. 우리 삶 속에 숨어 있는 때는 어쩌면 놀라운 가면을 쓴 녀석일지 모른다. 나도 남편의 장애로 내조를 잘하는 여자, 착한 천사로 사람들에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겉모습이 있기까지 내 곁에는 ‘손’이 있었다. 손이 거쳐야 할 일은 많다. 그러나 이 불편한 ‘손’의 내어줌으로 지금의 남편이 우리 가정에 든든한 가장으로 머무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남편의 손에 크림을 바른다. 미끌미끌한 감촉이 닿는다. 조막손을 펴주며 골고루 크림이 흡수되도록 문지른다. 손과 손으로 전해지는 감촉, 따뜻하고 보드랍다. 내 손이 있어 전할 수 있는 사랑, 뿌듯하고 기쁘다. 그리고 감사하다. 더불어 이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련다. 죽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