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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r 16. 2024

천사를 데리고 한의원에 오는 여자

진료실 풍경

"우리 아기 트림했어?"


100일이 채 안된 아기를 품에 안고 침을 맞으러 오던 환자가 계셨다. 아픈 곳은 왼쪽 손목. 한쪽 품엔 아기를 안고 아픈 팔은 쿠션에 걸친 채 치료실 침대에 걸터앉아 침을 맞았다.


내가 치료를 하고 있으면 뒤통수만 보여주던 아기가 고개를 돌려 동그란 눈으로 나를 열심히 관찰하곤 했다. 누가 날 빤히 쳐다보는데 이렇게나 기분 좋을 수 있다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환자분을 치료하는 건지, 아기 숨소리를 들으며 내가 치유받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매일 오시던 시간이 다가오면 내가 먼저 기다려지기도 했으니까. 


아이들은 누구나 저들 부모의 삶을 지키는 천사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최은영 소설 <쇼코의 미소> 중 「미카엘라」


친한 친구가 아이를 낳았을 때 보러 갔다가 아기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아서 놀랐었다. 사진으로만 볼 때는 몰랐는데 실제로 보면 정말 작아도 너무 작다. 그런데 그 조그마한 몸에서, 숨 쉬고 꼬물거리는 자체로 가장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이제 막 엄마가 된 그녀를 치료하고 옆 베드에선 90세를 바라보고 계신 환자분께 침을 놓았다. 침을 놓는 내내 엄마가 아기를 달래는 소리와 이 세상에 나온 지 80일 된 아기의 숨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들으면서.


'나도 우리 엄마, 아빠에게 밥만 먹어도, 트림만 해도 예쁨 받던 시절이 있었겠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시절을 지나왔겠지?'


기억할 수 없어 아쉬운, 하지만 그런 사랑을 받았으리라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 시절을 떠올리려 애쓰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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