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hori May 07. 2019

인사만 잘해도

진심이 쌓여 인연이 된다

 대학원 선배가 유학 가서 처음 지도교수를 만나고 "How do you do?"라고 했더니, 교수가 한참 뜸을 들이다 인사를 했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닌데 이런 말은 잘 안 쓰고, 정말 오랜만에 듣게 되어 인사가 늦었다고 하셨단다. 비슷한 경험을 미국 출장 중에 마주하니 신기했다. 교과서에 첫 장에 나오던 말이었는데. 이런 경험은 우리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사전에 어떻게 준비했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한다. 순식간에 잘 대응하는 민첩성도 중요하지만 삶의 기간을 생각하면 조금씩 잘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습관이라고 하고 인사이트라고 하는 것은 삶의 소중한 시간에 삶의 중요한 것을 조금씩 쌓아서 만들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인사는 살아가는데 나를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이왕이면 즐겁게 해야 하고, 상대방도 즐거운 마음이 들게 해야 한다. 고마운 일이 있다면 정중하게 진심을 담아서 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공부는 좀 못할 수 있지만, 사람이 오고 나가고, 옆집 어른들을 만나면 인사를 제대로 하라고 한다. 어려서 머리를 눌러서라도 시키다 보니 아직도 맘에는 안 들지만 여전히 내가 자주 하는 잔소리다. 노인네와 같은 꼰대란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결정적 순간에 그간 쌓아간 예의가 삶에 큰 도움이 된다. 사람이 기분이 나쁜 것과 합리적인 의견 사이에서 후자에 대한 결정이 높을 것 같지만 밥벌이를 하다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감정이란 본능은 강하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OB 출신 사장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부품을 공급하는 중국 업체 문제로 우리도 어려운 일이 많았는데, 그 업체를 인수하신다고 하신다. 생각나서 전화하셨다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서로 인사를 했다. 돌아보면 사장님과 어떤 사업적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시회 때 뵈면 인사드리고, 항상 똑같이 "사장님 잘 계시고, 어르신들 속 안 썪이고?"라는 말씀만 하셨었다. 그런 것들이 어르신의 인사법인가? 더 늙어봐야 나도 그렇게 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뵐 때마다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보낸 시간이 7-8년 정도가 흘렀다. 이런 인연과 진심이 함께 일하고 도움을 받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 꼭 우연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게 되는 이유다.


 그런가 하면 함께 일하다 이직한 선배 전화가 왔다. "내가 다른 곳 제품을 보고 있었는데,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라며 전화가 왔다. 수출 건으로 우리 제품을 선정해서 협의하시겠다는 말이 참 고맙다. 자주 뵈지는 못해도 전화나 메신저로 종종 인사드린 결과일까? 이런 일이 생기면 세상과 사람에 고맙다는 마음이 생긴다. 일보다는 종종 들러서 안부를 묻고 소주도 한 잔 하던 것이 무엇을 바라기 때문에 가는 것은 아니다. 명절이나 연말, 연초에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은 사람의 향을 지우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사무실에서 우리 직원들만 봐도 아침마다 즐겁게 인사하는 사람들과 본체만체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다 하루 기분이 나빠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인사는 가끔 '나를 기억해 주세요'라는 말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의 말은 하는 사람의 생각과 듣는 사람의 해석, 바라보는 사람의 해석 3가지 이상으로 의미를 만든다. 이왕이면 좋은 뜻을 담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의도를 잘 이해한다면 협상, 토론이 훨씬 풍부해진다.


 밥벌이 과정에서 인사 잘하는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관심과 애정을 받는 경향이 높다. 본인도 그 힘이 자기 발전의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고, 좋은 기회를 마주할 수 있는 인연도 된다. 결과적으로 자신감도 채워지고, 결과물의 성과도 좋아지는 계기가 된다. 누군가 기대를 갖고 나를 바라본다는 잠재적 의식이 생기는 것도 같다.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도와주고 협조적인 경향이 생긴다는 것은 삶의 큰 힘이다. 적을 만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성공을 하는 방법은 알 수가 없지만, 망하게 하는 방법은 모두들 잘 이해한다. 세상은 현명하게 산다는 것은 작은 시작부터 좋은 매듭을 만들어야 한다.


 어려서 인사를 하고 다니면 "너 누구냐? 뭐하는 녀석인데 여기서 매일 얼쩡거리냐?"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허리를 숙여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면 동양 사람뿐만 아니라 서양사람도 그 진실한 마음을 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셨지만, 처음 방문했을 때 동유럽 고객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글쎄 이 녀석이 매일 연락하고 그래서 작년에 얼마나 우리가 거래했나 담당자에게 물어봤더니 고작 6천 달러더라고. 미친 녀석인가 했지. 온다고 해서 나도 호기심이 생겼어"라며 같이 동행한 팀장에게 일 년 동안 내가 한 짓이 미친 짓이라며 한껏 흉을 보던 사장이 있었다. 그 사업이 백 만불을 훌쩍 넘을 정도로 커졌다. 서로 역할을 잘 수행하고, 고객의 요구사항에 대한 대응도 잘 되었지만 고객이 그렇게 열심히 움직여주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일이다. 고객이 우리 제품에 집중해서 시장 판로를 개척한다는 의사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품의 완성도가 사업의 중요한 이유지만 그 의사결정에 자주 연락하고 인사하며 거리를 줄여간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진심이 받아들여진 결과가 아닐까? 결과가 있을 때만 인사치레를 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잠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고, 그 행동이 평판과 품격을 타인에게 남긴다. 종종 이런 사람들을 보면 어떤 해를 입혀서가 아니라 예의염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 회사에 다니던 시절 알게 된 지인들을 출장에서 시간이 되면 만나서 식사를 하곤 했다. 출장 중에 잠시 나는 짬을 이용해서 서로의 안부도 묻고 식사도 한다. 종종 시간이 되면 미술관, 박물관, 시장 등 현지 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그런 시간이 쌓여서 인연이 깊어지고, 매일 해외 현장의 정보를 접하기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그 목적으로 만난 것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진심으로 대하며 좋은 기회가 올 때 제안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업체를 소개받아서 진행하는 사업도 있고, 먼저 사업기회를 주는 때도 있다. 미운 놈이 아니라 정겨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주는 것이다.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쌓아 온 과정이 결국 인연이다. 해외영업을 하면서 처음에 제품과 솔루션을 파는 것이 핵심업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갈수록 변화하는 생각을 그 의사결정을 모두 사람이 한다는 것이다. 전기가 통하면 시킨 일만 하는 컴퓨터와 달리, 사람들은 회의에 참석해서 온갖 다양한 의견과 의사결정을 한다. 그 결과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결정되는 것을 보면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에게 다가가는 인사가 정말 중요한 이유다. 


 영업을 하며 장사꾼처럼 잔머리 굴리고, 약싹 빠르게 몇 푼을 더 챙기는 것이 마치 나의 능력처럼 느끼는 사람이 있다. 당장 몇 푼의 즐거움이 있지만 삶이 천박해질 수 있다. 그것을 수수만년 할 수 있다면 능력이지만 인간이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왜 상도(商道)라고 하겠나? 경영, 경제, 회계, 통상 , 개발, 품질관리, 제조, 분야에 도(道)라는 글이 붙지 않는다. 상거래는 물건을 팔고 사는 것으로 보이지만 마음과 마음의 교감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해외 상거래는 무역(貿易)이라고 하고 그 의미를 반추하면 '변화에 대응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 부분에서 사람이 제일 자주 변한다. 상도라는 말을 거창하게 붙이는 이유는 인간관계의 확장  때문이다. 거래에 예의가 없으면 법을 부르고, 법이란 기준으로 상대를 촘촘히 옭아맨다. 그렇게 해서 오래갈 수 있겠나? 그 좋은 시작은 타인 나를 보면 환하게 웃게 만드는 노력이다. 


 신뢰란 법이나 계약서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거래 상대방에 대한 존중, 배려, 이해를 바탕으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 시작에 서로를 알아가는 인사만 한 것이 없다. 


#인사 #예의 #해외영업 #khor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