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hori Apr 17. 2021

난 잘했다?

도랏신 가라사대 "무식은 힘이다"

 온갖 다양한 일로 다시 사업부를 안게 됐다. 누군가의 기대를 받는 것이 좋은 일인지 부담스러운 일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누군가의 원망을 받는 일이 당연한 일인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사실 알 수 없다기 보단 스스로 여유가 없는 것이다. 가장 고민하는 일이란 상황이 항상 실력이 부족하다 점을 알려주는 것이다. 특히, 마음을 다루는 실력의 문제다.


 전 부서를 추스르며 다가오는 내일에 맞서는 일은 쉽지 않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대로 한다고 옳은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도 매일매일 걱정이 있고, 무엇을 준비하는 사람도 매일매일 걱정이 있다. 무엇을 준비하는 사람도 볼 수 있는 것이 다르고, 감당할 그릇의 크기가 다르며, 당연히 생각도 다르다. 기업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그래서 다들 바쁘고, 나는 잘했다는 주장을 하는 건가?


 무엇을 한다고 약속하고 결과가 목표에 부합하는가? 전혀 엉뚱하지만 좋은 결과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도 나에게 좋은 일만 잘했다는 것인가? 잘 듣다 보면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게다가 눈치도 없고, 상황도 잘 모르면서 헛소리를 많이 하는 것일까? 그러다가도 '아니지, 내가 아니라 재들이 도랏??' 이런 의심을 사람인 이상 안 할 수가 없다. 다들 마찬가지다.


 하여튼 그놈의 "잘"은 기준이 없다. 눈치가 있어야 하고, 상황을 잘 읽어야 한다. 동시에 그 상황을 타개할 지식 총량이 충분해야 한다. 역지사지의 존재 이유 이런 이유 때문일까? 나는 "고구마 있어요?"라고 물었는데 "그놈의 호박은 구할 수가 없다니까요!"와 같은 대답이 돌아올 때의 답답함이란. 이 상황에서 내가 도랏질을 하는 것인지 네가 도랏질을 하는지 경계가 혼미할 때가 많다. 벌써 인식과 인지의 문제가 생기는 것인가 가끔 의심스럽다.


 더 정확하게 "호박 말고 고구마 있어요?"라고 미리미리 간파해서 물어봤어야 한다는 말인데 실력이 없으니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타인이 어떻게 답할 것도 고려해서 질문을 한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런 일에 관해 "난 이런 거 잘 못한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용기만 남았다. (내가 종교가 없는 이유는 그 잘난 신이 이런 것도 고민해서 미리미리 정해놨다는 그 심뽀가 맘에 안 들기 때문이다. 경우가 없어)


 회사에 울려 퍼지는 '난 잘했다'는 여러 주장을 듣고 주위를 잘 관찰하면, 정작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자신이 하기로 약속한 것, 자신이 해야만 하는 것, 스스로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올바른 것에 집중한다. 말하지 않아도 '나는 OO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를 입증하고 있다. 


 발 벌이 터전은 일들이 모여 결정되고, 서로 돕고, 협력적으로 움직여야 결과 도출이 쉽다. 초심을 유지하려는 이유는 그 공동의 뜻이 틀어지지 않고, 무엇을 하기 위해 모여있는가를 상기시키다. 그런데 초심을 유지하는 일이란 녹슨 철길을 수세미로 박박 닦아서 기차를 한 땀 한 땀 밀고 가는 일처럼 쉽지 않다.  


 대만 전시회에 갔던 기억이 난다. 전시부스부터 전시장 시설 문제까지 온갖 문제로 너무 힘들었다. 하도 짜증이 나서 포털에서 띠별 운세를 봤더니 "운수대통"이 나왔다. 이걸 보고 후배가 항상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운수대통이라고 말해서 웃곤 한다.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운수대통이라면 운수대통이다.


 반면 '난 잘했다'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류는 신문지 덮고, 흙 뿌리고, 풀떼기 덮어놓은 위장에 탁월하다. 문서를 남기지 않고 항상 남 탓에 바쁘다. 내가 잘했다고 믿거나 주장하니 당연한 결과다. 하나씩 점검하면 약속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은 들은 바 없으며, 어떤 일이 요구되었는지 관심이 적다. 본인이 행사할 권한과 이익에 탁월한 관심을 가질 뿐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본인 좋은 것만 하기도 바쁜 나날이다. 당연히 문제가 산만큼 쌓여간다.


 불편함이 다가오면 "남들도 다 그렇던데 왜 나만 갖고 그러세요"라는 상투적 말이 분란을 키운다. 용기랑 자신의 잘못을 이해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일 때가 있다. 무턱대고 호구가 되지 않겠다고 소리부터 지르는 것 참 볼썽사납니다. 이해 당사자가 무릎 맞대고 한 땀 한 땀 확인을 하면 '피곤하다'와 '몰랐다'가 나오기 일수다. 이런 상황은 협력적 관계로 충분히 분쟁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대립하기 때문에 일이 커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아는 것은 힘이다"는 현실에서 맞지 않다. "무지는 힘이다"라는 말이 상황에 훨씬 효과적이다. 밥벌이 중에 모르는 사람에게 시킬 수는 없다. 결국 아는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아는 놈이 빨리 맛이 간다'라는 말에 훨씬 공감이 간다. 장자의 말처럼 쓰임이 있으면 명을 재촉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아는 사람이 알아서 하거나 참거나를 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밥을 끊고 밥벌이가 아닌 다른 것을 찾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복잡한 사람들의 제각가 막하는 행동이 어수선하면 내게 '인지 부조화'가 생긴다. 애꾸눈이 장님을 따라가는 일처럼 인지 부조화란 생각이 든다. 자세히 상황을 보면 장님 세상에서는 애꾸눈이 양보를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인가?라는 혼선도 생긴다. 이럴 땐 가끔 도랏신이 강림하는 것 같다. 이 분이 오면 밥벌이 터전이 전쟁터처럼 요란하다. 무엇보다 도랏신이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다만 이럴 때 마음속에 올바른 것을 담아 되도록 바르게 걸어야 나잘난 사람들과 도랏신의 소용돌이를 현명하게 피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이 정도 쿨하게 생각하며 사는 것 어렵지 않다. 내가 본 다양한 세상의 스펙트럼과 인간 군상의 현란한 스펙트럼을 넘어서는 사람들 드물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진정한 문제는 밉던 곱던 다들 자신의 재주가 있고, 역할이 있고 함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내일 함께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려움이다. 왜냐하면 그 문제와 답이 뒤죽박죽 엉켜있기 때문이다. 뒤죽박죽 엉켜있는 일은 쾌도난마와 같이 싹둑 썰기를 하는 일이 쉬운 것도 아니다. 한 끼에 짜장면 10그릇씩 먹는 것도 아니면서 다들 너무 소란스러울 때가 있다.


 중요한 과제는 그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진정한 가치만 남게 잘 발라내면 아주 괜찮은 일이란 생각이 든다. 뜨거운 물 부으면 되으면 안 된다. 사람 참 소중하고 어렵다. 제기랄. 무식과 유식을 떠나 어째던 사람이 힘이라는 정신 승리법을 꼭 간직하기로 한다. 그래 잘났다 다들.


#사업본부 #직장생활 #khori #정신승리 #도랏신 #사람 #천상잡부 #天上雜夫


이전 03화 인사만 잘해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