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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텍터십

by 정병진


실적 1등보다 더 값진 상을 받았습니다.


‘Lean on me’, 즉 팀원들이 믿고 기댈만한 혹은 지속적으로 도움을 받은 동료에게 주는 일종의 격려상 내지 특별상입니다.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시장을 총괄하는 킷 부사장께서 출장 차 함부르크에 들러 겸사겸사 직접 수여해 주셨습니다.


커리어 전환 중이던 저의 성장 포텐셜을 포착해 기회를 준 코리아 헤드,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면서도 국가별 조직의 부족한 부분을 시스템적으로 보완해주는 부사장 님을 만나면서 리더십, 무엇보다 고운세상코스메틱 이주호 대표께서 고안하신 ‘프로텍터십’이 어쩌면 이 분들 이야기 아닐까 싶었습니다.


프로텍터십은 ‘직원을 보호하는 리더십’입니다. 이 대표님 회사에는 육아휴직 최대 2년 보장부터 아픈 가족이 있을 때 쓸 수 있는 가족 돌봄 재택근무까지, 일과 가정 그리고 건강한 삶의 양립을 위한 제도가 마련돼 있습니다. 이주호 대표는 이를 ‘직원 복지’가 아니라 ‘직원 보호’라고 말합니다. 프로텍터십입니다.


그 결과는 최악의 불황 속 10년 만에 22배, 34분기 연속 성장, 연평균 67% 매출 성장입니다. 동시에 합계출산율이 0.7명에 가까운 초저출산 시대에 사내 출산율이 2.7명에 달하고(2022년 기준), 이 회사는 5년 연속 ‘대한민국 일하기 좋은 기업’, ‘대한민국 부모가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대한민국 밀레니얼이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뽑혔습니다.


제가 제 리더들로부터 이 프로텍터십을 느꼈던 순간은 제 퍼포먼스가 다소 부진할 때였습니다. 전례 없는 R&D 예산 삭감, 제조업을 위축시키는 중국 배격 정책 속 계약을 진행하던 고객사들은 모두 긴축에 들어갔습니다. 저희 회사 솔루션을 활용한 맞춤 대안을 만들어 컨설팅했지만 고객사들은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지금 회사가 숨 쉬기도 힘든데 헬스장 연회원권 끊겠다는 거냐, 한강 가서 그냥 뛰시라”는 겁니다.


사내 퍼포먼스 정기 평가 시 저는 위축됐습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르는 어떤 책임도 감수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한국 시장 환경, 제 대처를 투명하고 요연하게 보고했습니다. 다소 간의 압박이나 질책까지도 각오했습니다.


그런데 제 리더들은 관점이 달랐습니다. ‘어떻게 병진을 채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병진을 도울 수 있을까’ 리더십들이 모여 논의했습니다. 그에 필요한 제도적 지원, 별도 코칭 등 생각지도 못한 대안이 제공됐습니다. 제 직속 리더들이 저를 조직 부속품이 아니라 ‘조직이 보호하고 함께 성장을 꾀하는 파트너‘로 여긴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조직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제 의지만 있다면 제 조직은 제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어떠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런 느낌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너머 애틋함으로 이어집니다.


이 애틋함이 발호해, 저는 저희 팀원들에게 시간과 마음을 나눕니다. 온보딩 과정이 끝나면 저희 팀은 온전한 수평관계에 놓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돕고, 지시가 아니라 요청을 합니다. 저와 신입 직원 분의 관계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신입 직원 분의 업무 로드가 많을 경우 너무도 당연히 신입 직원은 제 요청을 거절•혹은 역제안 할 수 있습니다. 팀의 구심점인 팀장(헤드)의 프로텍터십이 팀 내 문화로 자리잡은 결과입니다.


부서 간 과격한 언사가 오가거나 정권이 바뀌면 대규모 인사로 초토화 되던 조직 문화, 말도 안 되는 여건에서도 결과물을 위해 ’까라면 까라‘ 식의 막가파 논리가 횡행했던 방송국 생활과 제가 독일에서 경험한 프로텍터십은 이토록 천양지차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제가 받고 느낀 프로텍터십을 비단 직장 뿐만 아니라 가정, 일상에서 배로 돌려주고 싶습니다. 제 사람들이 부담없이 ‘lean on me’ 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는 게 제 장래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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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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