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잠시 주차했습니다. 차에서 내렸는데 차 바로 옆 건물 2층(독일 1층)에 사는 남성 분이 “다른 데다 주차해! 저 밑에 내려가면 차 델 데 많잖아!”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깅하던 분이 제 앞을 지나가며 2층 남성에게 “좀 친절하게 말하세요-!” 외친 뒤 따봉을 날렸습니다. 따봉 응원을 받은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습니다. “당신 집 뒷건물 사는 사람이에요. 평소엔 지하에 대는데 잠깐 주차한 거에요. 10분 안에 돌아올 겁니다“
알고 보니 길 따라 평행 주차한 제 차 뒷꽁뎅이가 2층 아저씨의 건물 방향으로 주차 공간을 아주 살짝 침범했다는 게 불만의 이유였습니다. 저는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왔기에 그 자리에 델 일이 잘 없었지만, 다른 거주자들이 자주 그 위치에 차를 대는 바람에 정작 2층 아저씨가 자기 자리에 주차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고 하더군요. ”아, 충분히 이해된다. 그간 얼마나 짜증이 났느냐“ 위로를 건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창가에서 서로에게 몇 마디 더 건네다 너무 추워서 이내 집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사실 그 아저씨 차가 드나드는 데에 제 차가 그리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저였다면 아마 뭐 이 정도 가지고 예민하게 구냐며 버럭 맞대응 했을 겁니다. 한국에서의 저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거든요. 손해 안 보려고, 내 권리 침해 안 당하려고 아등바등, 아니 아득바득 우기고 싸우곤 했습니다. 아내가 ‘당신 착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성격이 원래 이랬느냐’며 고통스러하기 일쑤였죠.
기본적으로 제 소양의 문제였겠지만, 감정 컨트롤 못 하고 버럭 욱하는 제 모습은 제가 일하는 환경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직장이니까요. 지금도 잊히지 않는 숨막히는 순간 중 하나는 첫 직장의 국장이 부장급 팀장에게 육두문자를 쏟아부으며 인격을 모독했던 사건입니다. 평소 국장은 늘 화가 나 있는 캐릭터였는데, 지극히 권위적이고 성격은 조변석개 다혈질이었습니다. 아침에 씩씩대고 출근해서 점심에 약주하고 돌아오면 아나운서팀에 들러 “내가 어제 룸에서 초이스한 아가씨가 너랑 동갑이더라”며 더러운 소릴 흘리던 군상이었죠.
어느 날 잔뜩 화가 나 있는 국장에게 부장이 기름을 부었나봅니다. 그런데 그 화가 난 포인트가 기가막혔습니다. 보고를 마친 부장이 뒷걸음질 쳐 국장 자리를 벗어났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마치 왕을 알현한 신하가 뒷걸음질 쳐 어전을 나오 듯 그 부장이 극진한 예를 갖췄던 건데요. 그게 그렇게 싫었는지 거품을 물고 부장을 온 직원들 다 듣는 사무실 한복판에서 그리 모욕했습니다. 가정에 충실하면서도 인품 좋고, 일도 잘하셨던 부장은 얼마 뒤 타 방송국으로 이직하셨습니다. 첫 직장에서 만난 빌런 캐릭터부터 만만찮았죠.
이후 저는 앞에선 위해주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헛소문 내며 견제하는 선배, 아무 이유 없이 뒷담화를 일삼는 인간, 사내외 정치에 혈안이 된 사람들 사이에서 꿋꿋하게 제 밥 값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잦았습니다. 물론 나이스하고 긍정적 자극을 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죠. 그럼에도 욕심, 직업적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던 저로선 이상한 사람들로 인해 손해보지 않으려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굴었습니다. 그게 어느틈에 제 성격으로 번지고 있었던 겁니다.
예민함을 다스리기 시작한 건 현 직장의 직속 팀장을 만난 후였습니다. 어느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제가 타부서 시니어급 직원과 다소 감정섞인 메일을 주고받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제 딴에는 성과를 내려고 ‘일이 되게끔’ 밀어붙였는데, 상대는 자꾸 안 된다고만 말을 돌렸습니다. 뭐하자는 거지, 싶어 다소 감정 섞인 메일에 팀장급 C.C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니가 이렇게 하면 더 결과가 좋지 않겠느냐며 강대강 으르렁댔습니다.
“병진 씨, 저라면 이렇게 할 것 같아요” 이렇게 조언해주는 리더를 만난 건 독일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저보다 3살 어린 팀장은 30배는 더 풍성한 글로벌 직장, 군대(심지어 여성분), 사회생활을 겪은 분이었습니다. 팀장은 우선 감정은 배제하고, 현 상황을 정리부터 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러이러한 거구나, 나는 이러이러한 입장인데, 내가 잘 이해한 게 맞을까? 그럼 상대가 반응을 할테고, 우린 공동의 이익을 위해 제안 1, 제안2를 제시한 뒤 반응을 계속 보라는 거죠. 여러 사람, 특히 리더십까지 메일 참조에 들어온 상황에선 그 메일을 주고받는 과정과정을 모두가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대번 드러납니다. 이건 독일에서도 인사고과에 하등 좋을 게 없다는 게 팀장의 충고였습니다.
결국 저는 제가 이해한 바를 간단한 불렛 포인트로 정리해 요건만 전달했습니다. 그들이 본 업무를 하면서, 이 업무도 신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key take away‘를 짚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니어 친구와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봤습니다. 이후 저는 타부서에 대한 공격적 태도를 모두 거둬들였고, 커피챗을 먼저 제안하며 감정과 업무를 정돈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제 진심을 헤아려주는 온유한 동료들과 기분 좋게 일하는 중입니다.
무방비 상태인 제게 누군가가 말로 공격한다면, 저는 이제 바로 욱하지 않습니다. 곰곰히 생각한 후 제가 이해한 바를 정리해 되묻습니다. 그러곤 상대 반응을 기다립니다. 이렇게 하니 감정소모도 적고 훨씬 편합니다. 제가 변하니 곧 제 주위 사람들 특히 아내가 저를 대하는 태도도 덩달아 바뀜을 느낍니다. 그래서 조동화 시인은 ‘나 하나 꽃피어’를 노래하며 너와 내가 꽃피면 온통 풀밭이 꽃밭되지 않겠느냐 되물었나 봅니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내가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감정을 내세우기 보단 정중하게 되물을 줄 아는, 무해한 어른이자 할아버지가 제 장래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