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삐끗해 집에서 쉬던 중 장안의 화제 ‘폭싹 속았수다‘를 시청했습니다. 감동 포인트가 많은데 현실적으로 안타까웠던 점은 애순이가 오갈 데 없어 야반도주를 감행했던 일화입니다.
아내는 “아무리 분통 터지더라도 그냥 살던 집에 붙어 있지,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해도 더 많은 기회가 있던 시절이니 좀만 더 버티지” 하더군요. 동네에 그런 말을 해줄 언니나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같은 감독의 다른 작품 ‘나의 아저씨‘도 동일한 문제 의식을 다룹니다. 극중 지안은 할머니를 부양하는데 요양원 돈이 없어 궁지에 처합니다. 돈 천만 원이 필요해 잘못된 선택을 하는데요.
극중 ‘아저씨’인 이선균 배우가 “근데 왜 할머니를 니가 모셔, 요양원에 안 모시고. 손녀는 부양의무자 아니야. 자식 없고 장애 있으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데 왜 돈을 못내서 쫓겨나?”라고 알려줍니다. 어떤 어른도 지안에게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습니다.
‘좋은 어른의 부재’라는 메시지는 제게도 생각거리를 던집니다. 나는 소외되고 약한 존재에게 눈길이라도 주고 있는가, 돌아보면 전혀 그렇게 살고 있진 않거든요. 독일에 와서도 주중에는 ‘바쁘다 바뻐 현대인’ 모드입니다.
지안과 애순처럼, 비빌 언덕이 필요한 제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었으면 합니다. 적어도 무해한 중년이 되길 바랍니다. 고주파 온열 찜질을 마무리하며 나도 좋은 어른이 되길 다짐해 봅니다.. 끄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