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즈플 Nov 16. 2023

엄마 거만 싼 거 찾지 마! 딸들 속상하니까!

'서운하다'. '속상하다'




저희 어머니는 억척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삶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원래는 인형의 집 속 공주님 같은 사람이었는데 가세가 기울자 집 문을 발로 박차고 나가더니 세상의 풍파를 맞으며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소에는 정말 잘 아끼다가도 가끔 "어 좀 과한데?" 싶게 돈을 씁니다. 소위 '지른다.'라고 표현하지요. IMF가 오기 전에는 최고급으로만 살아왔던 분이셔서일까요. 눈썰미가 딸들과는 다르다 보니 어머니의 씀씀이를 보고 있자면 헉 소리가 나 저도 모르게 안절부절못하게 됩니다. 턱턱 카드를 긁는 모습을, 계약서에 서명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눈앞이 아찔해지지요.


그런 어머니의 소비습관이 절정에 달한 것이 이번 이사였습니다. 새 집에 들어서면서 어머니는 가구와 가전을 거의 새로 구매하셨습니다. 원래 저희가 쓰던 가구들은 친척들 집에서 얻어온 것들이거나 가구매장에서 가장 싸게 구매한 것들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사용한 가구들은 이가 나가거나 칠이 모두 벗겨진 지 오래입니다. 가전들은 이 집에 맞지 않습니다. 전 집주인은 인테리어를 모두 가전들이 딱 들어갈 수 있도록 맞춤으로 해 놓았는데 그 사이즈에 맞는 가전들로 사야만 하거든요. 기존의 옛날 가전들을 가져가려면 인테리어를 다시 해야 하는데 우리 가족은 그 돈으로 차라리 가전을 새로 사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그렇게 결정을 내렸음에도 저의 작은 간담은 뒤에 붙은 0의 개수를 볼 때마다 저걸 어떡하나 싶어 지더군요.


"청소기는 그냥 쓰던 거 가져가자."

"스타일러가 꼭 필요한가?"

"공기청정기는 나중에 사고 에어컨도 나중에 해."

"TV 큰 거 사지 마. 눈에 안 좋아. 그리고 TV 엄마만 명절에 봐."


계속 딴지를 걸기 시작하는 큰 딸을 두고 결국 신이 난 둘째 딸의 팔짱을 끼고 매장을 휩쓸기 시작하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계속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살 집이고 너희가 쓸 거니까 괜찮아! 기왕 사는 건데 뭐 어때!"






집에 물건들이 채워지고 이제 남은 것은 어머니의 화장대입니다. 바쁘신 탓에 딸들에게 알아봐 달라고 해 나름 고심해 후보를 알아다 카톡방에 올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가장 비싼 것을 어떻게 알고 콕 집어내시는지요.


그런데 가격을 들으시더니 태도가 바뀌십니다.



이사를 준비하며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단어입니다. 그래도 저녁에 술을 드시고는 "그걸로 내일 주문해 줘."라고 하시더니 아침에는 생각이 바뀌셨나 봐요. 새벽 5시에 일어나자마자 딸들이 이미 주문했을까 봐 급하게 카톡을 남겨놓으셨습니다.


"화장대 저렴한걸루 다시보자."


그 카톡을 보고 동생은 하루종일 가슴속에 뭔가가 턱 막혔다고 합니다. 뜨거운 게 들어앉은 것 같고 그런 말을 하는 엄마에게 미운 감정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엄마 그런 사람 아니잖아. 엄마 소비습관을 딸들은 닮아. 특히 나는 많이 닮았다고."


동생의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어머니의 소비습관을 딸들은 닮기 마련입니다. 


슬프게도 안목을 닮지는 못했지만, (다행인 것 같기도 합니다. 싼 제품도 만족할 수 있으니까요.) 사고 싶은 것이 한번 생기면 며칠 동안 빙글빙글 그 품목만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그 쇼핑을 해치우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어머니는 그 화장대가 마음에 들었을 거고, 다른 싼 화장대가 온다면 분명 후회하실 겁니다. 엄마의 딸들이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니까요. 


"엄마한테 서운해? 섭섭해? 아무튼.. 아 모르겠어... 오늘 하루종일 기분이 나빴어."


서운하다는 감정을 가진 게 맞을까요?

'서운하다'

마음에 모자라 아쉽거나 섭섭한 느낌이 있다.

라는 뜻입니다. 기대에 어그러졌을 때의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엄마에게 저희가 기대하는 바가 있던 건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의 마음은 '속상하다'는 뜻이 아닐까요.

화가 나거나 걱정이 되는 따위로 인하여 마음이 불편하고 우울하다.


이 집을 꾸미면서 그렇게나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유일하게 어머니의 것일 화장대는 저렴한 걸 찾으십니다. 그게 너무 속상합니다. 마침 적금이 끝났습니다. 동생과 반씩 나누어 원하셨던 화장대를 사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냥 저렴한 화장대를 고집하셨습니다. 본인이 직접 쿠팡 화장대를 사겠답니다. 급하게 말리고 깜짝 선물을 미리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좋아하시면서도 그냥 저렴한 걸 사시겠답니다.


"딸들이 착하네."


그거 뭐 얼마나 한다고! 그냥 받아! 저도 모르게 못되게 말이 나갑니다. 생각해 보면 예쁜 말은 둘째 딸이 다하고 못된 말은 큰 딸이 하는 듯합니다. 어머니는 자기가 새로 고른 저렴한 게 더 예쁘답니다. 누가 봐도 아닌데. 스피커가 달려있고 이상한 불이 나오는 유리상판의 화장대. 첫 번째 서랍의 USB 포트는 싼 티가 납니다.


"네가 돈이 어딨어."


할 말이 없군요. 저는 백수니까. 하지만 엄마 화장대 하나 못 사드리겠습니까. 그저 속상한 마음만 드는 하루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라 더욱 그런 마음이 듭니다. 먹을 거 하나, 입을 거 하나도 자식들에게 먼저 건넨 분이니까요.


저렴한 화장대라도 사주겠다며 결제를 하기는 하지만 불편하고 우울한 마음이 가시지는 않습니다. 돈이 아주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의 안목에 맞는 걸 턱 하니 사주는 멋진 딸이 되고 싶은 날입니다.




이전 05화 밀이냐 쌀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