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픽션
오늘은 연인과의 기념일이었다, 오 년간 한 번도 함께한 적 없던.
첫해는 노로바이러스가 우리의 시간을 뺏어 갔다. 기념일 전날 평일, (당시 연락처에는 ‘천정희 오빠♡’, 현재는 ‘웬수♥’라 저장되어 있는) 나의 남자 친구는 단골 굴보쌈집이라며 회사 근처 식당으로 데려갔다. 그는 빨리 발음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단어처럼 원체 느린 사람이었는데, 복통으로 쓰러진 나를 업고 응급실로 달려가는 순간만큼은 치타보다 빨랐다고 자부할 수 있다. 두 번째 해는 정희의 업무량이 극악에 달하던 시기였다. 하필이면 팀에서 가장 막내였던 시기라 온갖 잡일이 그에게 주어졌고, 기념일 다음 날에야 도시락을 싸 들고 회사에 찾아가 함께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서운함을 입안 가득 김밥을 밀어 넣으며 삼키고 또 삼켰다.
세 번째 해와 네 번째 해는 나와 정희가 잠깐 헤어졌던 시기였다. 우리는 장장 왕복 여섯 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커플이었는데 금요일 저녁이면 번갈아 가며 서로의 집으로 (데이트가 아닌) 여행을 떠났다. 여행인 이유는, 일요일 오전까지 서로의 집에서 생활할 짐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해의 중반쯤, 내가 자취방을 정리하고 본가로 들어간 후로는 짐을 챙겨 그의 집으로 향하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버스 안에서 옆자리의 이름 모를 남자를 신경 쓰느라 잠을 못 자는 일이 많아지고부터, 노후된 버스 의자에 허리 통증으로 무거운 짐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고부터, 내가 바라는 만큼 정희가 나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다고 여길 때부터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었다.
그래서 재회한 다섯 번째 해만큼은 기념일을 함께 보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헤어진 이유를 따지자면 간단하면서도 복잡했지만 끝없이 생각하다 보니 어쩌면 사소한 것에서부터 틀어졌을 수도 있겠다고 정희가 운을 띄웠다. 그건 바로 기념일이었다. 하지만 기념일보다 중요한 건 정희 어머니의 칠순 잔치였다. 정희의 본가 근처 한식당을 빌려 진행되었고, 오후 네 시가 넘어가자 파하는 분위기라 우리는 적어도 저녁은 함께 먹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나자 나는 어르신들을 너무 얕보았다고 후회했다.
어르신들의 주사는 생각보다 치기 어렸고 치열했으며 전투적이었다. 빚 얘기까지 나왔음에도 유혈 사태가 벌어지지 않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나는 식당 안의 나무 의자를 이어 붙여 그 위에 몸져누웠다. 정희가 그런 나를 그의 온 가족이 모여 있는 집까지 데리고 갔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내 옆에서 정희가 입맛을 다시며 자고 있었으니 그나마 다른 해에 비해서는 짧은 시간을 함께하긴 했다. 그때 나는 곤히 잠든 정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우리가 다시 헤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이상한 걱정이 들었다.
불안 속에서 우리는 여섯 번째 해를 맞이했고, 정희는 서울로 회사를 옮겼다. 왕복 여섯 시간은 두 시간으로 줄어들었다. 기념인 오늘, 정희는 내가 사는 동네로 오겠다고 말했지만 일찍 일어난 나는 기분이 좋았고 직접 가겠다며 거절했다.
퇴근 후 회사 근처에서 올라탄 3200번 버스는 출발한 지 십 분 만에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고속 도로를 달리는 와중이었다. 이렇게 멈추면 안 되지 않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급할 건 없지만 흘러가는 일분일초에 종종거릴 만큼 아쉬운 금요일 저녁이었다. 다음 날까지 그의 집에 있을 예정이라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오 년간 실패한 일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하지만 버스는 완전히 정차했고 마스크를 낀 서글서글한 인상의 기사가 현 상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승객 여러분, 버스에 문제가 있습니다. 잠깐 정차하겠습니다.”
기사가 그렇게 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퍼졌다. 내 옆자리는 이십 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앉아 있었다. 여성은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는데 기사의 말을 한쪽 귀로 듣고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조금 전과는 달라진 톡 쏘는 말투가 괜스레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자리도 좁은 데다 큰 가방을 다리 위에 얹어 놓은 상태였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통화를 대략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인 듯했다. 그런데 차가 멈춰 버리니 그 화가 상대방에게 향한 것일까. 나는 기분파, 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움트는 동시에 그만큼이나 긴 한숨을 뱉었다.
“왜 하필이면 이 차야.”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세 살쯤 되었을까. 부모로 짐작되는 달래는 음성이 겹쳤다. 아기를 대하는 태도는 한없이 상냥했으나 여성은 짜증 난다는 말을 반복했다. 슬그머니 대각선 각도로 뒤를 돌아보니 그의 동그란 이마에는 땀에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품에 아기는 없었다. 내 바로 뒷자리의 남성이 아기를 안고 있는 듯했다. 아기는 울면서 웃었고 웅성거림 속에서 그 천진함은 되레 짜증을 부추겼다. 나는 내 이마에도 어느새 땀이 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기의 부모는 뒤차가 언제쯤 올까, 하고 대화했다. 옆자리의 여성만큼이나 일그러진 음성이었다.
나는 사람이 기분이 이렇게나 순식간에 달라질 수 있다는 데 새삼 놀랐다. 자극이 넘쳐 나는 세상에 사는 우리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토록 작은 자극에는 무뎌질 만하지 않나. 나는 정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늦을 것 같아. 차 고장 났대. 먼저 저녁 먹어도 돼. 정희는 메시지를 보낸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 내 옆의 여성은 여전히 냉기가 가득했고 버스는 더욱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손이 자연스레 관자놀이로 향했다.
버스 기사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예비 차를 보내 달라고 했다. 그러다 소통이 되지 않는지 언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언성이 높아진 것치고는 표정이 평온했는데 원체 그런 사람이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다. 곧이어 버스는 달리다가 멈추고 달리다가 멈추고를 반복하더니 고속 도로 한복판에 멈춰 섰다. 기사가 다시 한번 상황에 대해 설명하니, 대뜸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버스 기사가 이런 상황에 뭔 대처를 못 해? 다 바쁜 사람인데 말이야. 제대로 된 말도 없고 말이야.”
설명을 제대로 못 들은 사람은 본인이신 것 같은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더 큰 소란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금요일 저녁이고, 정희와 만날 것이고, 기분이 좋아야 했다. 기사님, 일단은 갓길로 비켜서야 할 것 같은데요. 뒤에 차가 빵빵거리는데…… 이렇게 가도 돼요? 그냥 다른 차 올 때까지 서 있으면 안 돼요?, 아니 기사가 말이야…… 책임감도 없고 말이야……. 이러쿵저러쿵. 귓가를 울리는 말들에 며칠 전 정희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우리, 조금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