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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끝나지 않은 고된 하루

by 트렌드 서퍼

새벽의 미명(微明)이 걷히면서 비로소 수거 동선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겨울철 수거 작업은 해가 뜨기 전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다.

낮에 익히 보던 길도 깜깜한 밤에는 헷갈리기 일쑤였다.


두 번째 지역으로 향하는 길, 그나마 다행이라며 사수와 서로에게 위로를 건넸다.

전(前) 업체로부터 받은 오탈자 투성이의 허접한 동선 목록과 길 찾기 앱을 활용하며 쓰레기 적치장, 분리수거장, 문 앞 수거 원칙에 따라 집집마다 배출처를 찾아다녔다.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아 배가 고픈 줄도, 목이 마른 줄도 몰랐다.

두 번째 시작한 지 어느 정도 지나서 차가 가득 차자 또다시 처리장으로 가야 했다.


문득 개인적인 의문이 들었다.

몸이 힘든 것은 둘째였다.

퇴근 시간이 입사 전 들었던 시간을 훨씬 넘어섰는데, 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다시 처리장에서 나와 남은 지역을 수거하러 가야 한다.

'오늘은 퇴근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래도 일은 마쳐야지' 하며 남은 수거 지역으로 향했다.


사실 우리가 배정받은 5톤 압착 트럭은 구형이었다.

말이 5톤이지, 실을 수 있는 쓰레기의 실중량은 3톤을 넘지 못했다.

신형에 비해 양을 적게 담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중고차라 리프트마저 고장이었다.

대형 쓰레기통은 일명 '까데기'를 해야 했다.

통을 쓰러트려 놓고 쓰레기를 다시 압축차에 주워 담는 방식이다.

늦게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었다.

우리가 배당받은 지역의 전 용역 대행업체가 12월 초 다른 구역을 옮겨질 것이 확실히 되면서 전(前) 업체가 대략 열흘 정도 대충 수거를 한 것 같았다.

적치장과 분리수거장에 쌓여 있는 쓰레기 양이 그야말로 산더미였다.


세 번째 수거를 마쳤을 때, 출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일이 끝났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지막 처리장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라 처리장은 고요했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해서인지 포클레인이나 지게차의 굉음도 들리지 않았고, 까마귀도 울어대지 않았다.

마치 조용해진 지옥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날씨가 추워져 압축차 뒤쪽 걸쇠가 얼어붙어 버렸다.

사수는 걸쇠를 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만약 걸쇠를 열지 못하면 쓰레기를 차에서 배출할 수 없다.

이런 낭패가 또 있을까!

손전등을 비춰가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을 무렵, 걸쇠를 여는 지렛대가 튕겨져 나와 사수의 정강이를 세게 쳤다.

"앗!" 외마디 비명이 쓰레기산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의 대가였을까.

다시 시도하니 압축차의 뒷문이 마침내 열렸다.


쓰레기를 버리고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우리는 차고지에 도착했다.

차고지 역시 고요했다.

직원들도 이미 오래전에 퇴근했을 터, 내일 출근을 위해 우리를 기다려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7시간이 훌쩍 지났다.

총 식사시간과 휴식 없이 꼬박 13시간을 일을 했다.

집으로 들어가면서 온갖 생각이 머리에서 빙빙 돌았다.


긴장이 풀렸다.

그때서야 온몸에 밴 쓰레기 냄새를 맡았다.

역겨웠다!

내가 역겨운 것인지 세상이 역격운 건지 모르겠다.

한창 자기 연민에 빠져 집 앞을 서성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나에게 한마디 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

그냥 때려치워."

아내는 현장 경험이 없는 내가 '일머리'가 없어 일이 늦어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사수에게도, 다른 직원들에게도 미안했다.

나로 인해 민폐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괴로움이 나를 짓눌렀다.

내일 세상이 망하기를 바라며, 나는 그렇게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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