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커플이 있다. 한 이성은 상대방이 너무 좋다. 타오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연애 초반부터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자의로 양껏 표현하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나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활활 타오르던 열기는 사그라 들기 마련이다. 1초 칼답, 쓸데 없이 서윗하기, 기념일도 아닌데 쓸데 없이 선물하기 등등 연애 초반의 오버페이스를 몇 달간 이어가려니 버겁기도 하고, 갈수록 나의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상대방을 보면서 다소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별 것 아니라는 생각으로 섭섭함을 표현해 보는데… 이게 웬걸? 생각지도 못한 상대방의 날 선 한 마디가 나의 가슴에 비수로 꽂힌다. “내가 언제 칼답하고, 매일 선물해 달라고 했어? 자기 마음대로 해놓고 왜 강요해?!”
누구의 잘못일까? 흥분을 주체 못하고 혼자 무지성 돌진한 쪽의 100% 과실이다. 상대방과의 윈윈을 원했다면 상대방이 원하는 페이스와 기준, 속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만남을 이어갔어야 한다. 상대방이 원하는지도 모르는 방식과 양의 호의를 마음껏 베풀어 놓고,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보이라는 것이 과연 정당한 요구일까?
상대방에게 일방적 사랑을 표현하고 제 풀에 지쳐 섭섭함을 토로한 사람이 바로 신입사원들의 모습이다.
대체 누가 그들에게 보상을 약속했는가?
사실 회사에서는 신입사원들에게 거는 기대가 없다. 신입사원들만 입사 전부터 꿈꿔온 설레는 기대들을 잔뜩 갖고 있다. 주어진 자잘한 업무 범위를 넘어서 서둘러 더 일을 배우고, 더 난이도 높은 업무 담당부터 선배들이 부탁하지도 않은 도움까지 자처했던 것은 본인들이다. 구체적인 대가로 회유한 적도 없다. 순수한 의도에서 정말 자신의 업무능력, 스킬 향상을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나섰고, 어떤 대가도 바란 게 없다면 그 자체로 크게 될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초년생들 생각 기저에는 ‘인정과 성공’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순수한 의도가 아니었고, 그들이 인정과 성공을 바랐다면 회사와 조직 안에서 인정 받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했어야 된다.
순수하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게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욕심을 내고, 노력하는 것은 나쁜 욕심이 아니다. 다만, 잘못된 방법과 제 멋대로의 방식으로 공부를 하고서는 점수가 오르고, 실력이 늘길 바라는 게 헛된 욕심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1년 차가 되도록 열심히 하면 안 되는 이유
회사에서 인정 받기 위해서는 인사체계의 기본을 알아야 된다. 우리는 1년 간의 업무성과를 토대로 연말에 정해진 성과지표와 기준에 맞게 평가를 받고, 평가점수에 따라서 성과 등급이 결정된다. 그래서 다들 연말이면 내년도 부서 성과지표, 개인 성과지표 수립에 사활을 건다. 최대한 낮게(?) 목표를 잡아야 내년에 목표 달성이 수월해지고,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장은 대주주를 상대로, 부사장/주요임원들은 사장을 상대로, 팀장들은 본부장/임원들을 상대로 최대한 보수적인 성과지표를 수립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최선을 다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자신의 생존권을 보장 받고, 똑같이 노력하고도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수립된 성과지표는 매년 갱신되는데 '낮아지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악의 시장상황 속에서도 매년 성과지표는 최대치를 '경신'한다.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1년 차는 ‘고과’가 없다는 것이다. 인사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그냥 십중팔구, 아니 백중구십구는 B다. 그리고 기준미달에 해당하는 C도 없다. (희박하게 가끔 있다.) 열심히 해도 팀장, 사수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정성적인 평가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정도다. 견물생심 S나 A를 바란다는 것은 헛물을 켜는 것이다. 업무 숙련도가 다른데 1년차가 주어진 잡일을 열심히 했고, 빨리 업무에 적응했다는 자체만으로 좋은 성과를 바란다는 것도 어불성설 아닌가? 물론, 좋은 평판을 쌓는 것은 향후 평가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빡세게 죽기 나서서 하지 않아도 좋은 평판은 충분히 쌓을 수 있고, 당장에부터 삶을 갈아 넣지 않아도 고과 시즌부터 적극적으로 임해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심지어 1년차 신입사원이 분골쇄신의 자세로 회사생활에 임하게 되면 부작용이 씨게 온다. 처음에 쓴 연애 사례를 생각해보자. 열혈 신입사원의 케어를 받는 팀장, 사수 입장에서는 신입사원이 대견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을 하겠다고 자처하고, 허드렛일, 야근, 잡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양하고 난이도 있는 업무에 초기부터 투입됐고, 신입 치고는 많은 업무를 경험하면서 1년차 답지 않은 신입이 된다. 연말이 되었다. 내년도 개인 별 성과지표를 수립하는 시점에 팀장은 당연히 현재의 업무수행능력을 기준으로 성과지표를 설정하게 된다. 자발적으로 나서 나의 최저치를 높여 놓은 덕분에 나는 다른 동기 2년차들보다 높은 성과지표와 기준을 적용 받게 된다.
만약, 거기에 불만을 품고, 싫은 소리라도 뱉는다거나 기존에 쏟던 시간과 에너지를 줄인다면 곧바로 리액션이 돌아올 것이다. “옴스, 입사 초반이랑 많이 변했네”, “옴스, 그런 친구인 줄 몰랐는데…” 듣는 입장에서는 억울함에 기절초풍할 노릇이겠다마는 회사와 조직의 기준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멋대로 노력하고 몽니를 부리는 신입사원을 좋게 볼 꼰대들은 아무도 없다. 결국 이렇게 나만 손해를 보게 된다.
1년 차가 열심히 할 필요가 있는 경우
그럼에도 1년 차가 열심히 해야 될 이유가 있는 상황이 있다.
정말 스스로 일 자체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열심히 해서 나쁠 게 없다. 사회 초년임에도 대리, 과장급이 업무를 수행한다면 부서들 간의 관계 파악를 파악하거나 팀장, 임원들의 의사결정 방식과 신경 쓰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관리자적 관점을 배울 수도 있다. 이렇게 습득한 경험들은 빠른 승진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또래 직원들에 비해 시야가 넓다는 건 그만큼 더 넓은 책임과 역할을 맡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략, 기획 등의 요직에 차출되고자 하는 꿈이 있는 이들에게는 필수다. 항상 스마트하고, 빠릿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야만 핵심인재 풀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단순하게 똑똑하고, 단순하게 열심히만 된다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S급 인재의 조건과 특징은 별도 챕터에서 풀겠다.
또한, 이직 시 자신의 이력사항에 비슷한 연차를 가진 경쟁자들에 비해 질 높은 업무수행 내역을 보여줄 수 있다. 이는 연봉협상 시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고, 혹은 내가 근무하던 회사 보다 더 급 높은 회사로 이직을 가능케 하는데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는 지원 성격의 업무를 했다고 하더라도 초반부터 신사업기획 및 사업타당성 분석을 했다는 이력이 이력서 상에 기입되어 있다면 스펙만 보고 서류검토를 진행하는 경력직 면접에서 당연히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이직시장에서는 구직자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보다는 어떤 타이틀의 부서에서 어떤 타이틀의 프로젝트와 업무를 맡았다고 '표기'되어 있느내가 중요하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추적해서 cctv로 돌려볼 수 없지 않는가.
이 같은 이후의 경력관리 차원에서 열심히 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무작정 시간과 땀으로 승부를 보려는 마인드는 좋지 않다. 매사 모든 일에 열심히 임하는 것 보다는 정말 나의 경력/이력 관리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인지를 판단하고 그렇다고 판단될 때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원하는 업무를 취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조직원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기본적으로 주어진 업무를 완수하는 와중에 자신의 경력개발 및 이력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나서라는 의미다. 기회주의적으로 항상 소극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하면서 필요할 때만 나서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미 당신은 조직에서 최악의 평판으로 낙인 찍혀 먼 미래에 reputation/reference check 단계에서 최악의 평가를 받고 탈락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