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스씨~ 지금 김과장 시간이 안 된다는데 지난 달 프로모션 제품 별 매출, 손익 보고서 좀 작성해주겠어?” (나도 바쁜데 말 안하고 가만히 있으니 시켜 버리기)
“옴대리님, 저희 영업에서 처리할 일이긴 한데… 클라이언트 중 하나가 제품 컴플레인을 강하게 걸고 있는데 설명이 좀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직접 통화 한번 해주실 수 있을까요?” (내 설명 듣고 전달하면 되는데 욕 듣기 싫어서 일 떠넘기기)
“옴대리님, 저희 지금 진행 중인 A프로젝트 건이요. 옴대리님이 수주하셨잖아요. 저희 공사 수행 과정에서 일정 문제 생기면 누구 귀책인지 아시나요?” (계약서 보지도 않고 물어봐 버리기)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매 순간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왜 사람들은 나에게 자신들의 일을 떠미는 걸까. 시작은 미약한 부탁이었으나 어느새 나의 고정업무가 되어 있고,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능숙하게 너스레를 떨며 일을 던져놓고 커피타임을 하러 간다. 부서의 잡일이란 잡일은 나에게 수렴되고, 유관부서, 협력사의 욕 받이, 감정 쓰레기통 역할까지 담당하며 뚫리지 않는 답답함에 몸서리 치면서 짬찌의 스트레스는 점차 커져간다.
나는 성악설을 지지한다. 물론 그들도 처음에는 정말 바빠서 부탁했고, 나한테 고마워했고, 미안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업무부담을 덜어내면서 느껴지는 희열과 안도감이 나에 대한 미안함의 크기를 넘어서는 순간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급하고 애절한 표정과 말투로 부탁만 하면 내가 들어주는데 일을 부탁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선의가 반복되면 권리로 생각하듯 어느 순간부터는 죄책감 조차 느끼지 않는 순간이 온다.
짬찌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처음엔 당연히 거절이 어려우니까, 나의 사수이고, 선배이고 협업부서니까 해줬을 것이다. 이해한다. 그럴 수 있다. 그리고, 다들 바빠서 그랬던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도 못지 않게 바쁘고, 정신 없는데 내 일만 늘어난다면? 유관부서에서는 나한테 일을 던져 놓고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뉴스를 보고 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원래 내 일이었던 듯이 감사는 커녕 당연하게 자신들의 일을 던진다면? 절대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참아서도 안 된다.
우리에게는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건방지다고 생각하면 어떡할까 걱정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본래 내 일이 아닌데 어렵다고 답변했을 뿐인데 내가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결국 떠안 게 되더라도 당당하게 할 말은 할 수 있어야 하고, 분명한 감사인사 혹은 나중에 내가 필요한 시점에 상대방에게 원하는 요구나 부탁을 할 수도 있어야 된다. 내 손이 놀고 있다고 한들 나는 분명 내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해서 도움을 준 것이며 상대방은 나로 인해 자신의 부담을 덜어냈다는 것은 팩트다. 우리는 조금 더 떳떳하고,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다만, 거절하는 방식은 중요하다.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바빠서 못하겠는데요?”와 “제가 지금 급하게 처리하는 건이 있어서요. 혹시 끝나고 다시 연락 드려도 될까요?”는 다르다. “이번에도 저 보고 하라고요?”와 “그때는 제가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제가 여유가 없어서요 ㅠ 정말 죄송한데 내일도 괜찮으시면 제가 그때 봐 드려도 될까요?”는 다르다. “아 … 네… 알겠습니다. 저한테 보내세요…”와 “알겠습니다. 저도 정신 없지만 이번에는 제가 도와 드릴게요! 대신 다음에 제가 도움 청할 때 꼭 도와 주시는 거죠?!”는 다르다.
거절도 현명하게 해야 하고, 부득이 타인의 업무를 처리해주더라도 상대방에게 부채의식을 무의식에 심어줘야 한다. 무작정 Give and Take를 하자고 무섭게 달려들자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일을 받아야 될 것 같은 상황이라면 기분 좋게 수락해주면서 다음 번에는 나를 도와 달라고 유쾌하게 얘기하자는 거다. 거기다 대고 ‘아 그건 어려운데’라고 얘기할 사람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소패나 싸패다… 말 한 마디이긴 하지만 그렇게 던져 놓게 되면 다음 번에 정말 상대방에게 부탁할 상황이 닥쳤을 때 내게도 큰 도움이 된다.
사람의 속내는 겉으로 드러내고,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알 수 없다. 연인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내가 힘들다고 얘기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자기만 힘들고, 참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의 사소한 습관과 행동, 말투, 좋아하는 마음으로 참을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이 쌓이고 쌓여 결국 터져 상대방에게 불만을 토로할 때에 상대방은 얘기한다. “그걸 지금 얘기하면 어떡하자고? 누가 꾸역꾸역 참으래? 나는 얼마나 참았는지 알아?” 그땐 이미 너무 늦는다. 누구도 참으라고 한 적이 없다. 꾸역꾸역 참아가며 속으로 삼켜 넘긴 건 본인이다.
각자의 업무에 종일 바쁜 하루를 보내는 직장인들이 내 시간, 내 기분에 정말 관심이 있을까? 당연히 내 일이 먼저고, 가장 중요하다. 옆 부서 동기가 고과 C를 받네 마네 보다 내가 오늘 칼퇴를 하고, 연인과의 기념일을 지킬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게 사람이고 직장인이다. 내가 주어진 일을 빨리 끝내고 뉴스를 보면서 쉬더라도 내 삶, 내 시간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시간이 남아 상대방의 부탁, 요청을 들어주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은 나에게 고맙고, 감사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상대방의 요구와 부탁에 대한 대응을 바꿔나가야 된다.
지속적으로 시그널을 보내자. 그리고, 노력에 따른 응당한 대가와 대우를 받자. 핏대 세우면서 싸우자는 게 아니다. 웃으면서 유쾌하고 밝은 말투로 나도 너무 도와주고 싶다고, 근데 너무 바쁘다고, 근데 도와주면 이번 뿐이라고, 그리고 다음에 내 부탁도 꼭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해보자. 처음엔 너무 어색하고, 어렵다. 뭐든 처음은 다 그렇다. 해적왕 루피도 촌구석 악당 하나 버겁게 상대했던 시절이 있다. 실력과 요령은 키워 나가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행운 같은 게 아니다.
재밌는 건 그렇게 유쾌하게 거절하고, 유쾌하게 부탁하는 이들은 많은 관계자들과 좋은 관계를 구축한다. 최소한의 염치와 최소한의 감사를 아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도움을 청할 때는 진심으로 미안함을 표하게 되고, 부탁을 들어주면 감사함의 커피라도 사고, 추후에 내가 도움이 필요한 시점에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다. 나의 똑 부러지는 태도는 상대방에게 내 시간의 가치, 내 행동의 의미를 깨닫게 만들고, 나 또한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매너를 지키는 과정에서 서로는 좋은 파트너십을 만들 수 있게 돈다.
나는,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서, 좋은 게 좋은 거라서 꾸역꾸역 참고 있었다? 그건 본인의 잘못이다. 난 내성적이고,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도무지 그렇게 못하겠다? 그렇다면 계속 모든 일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살면 된다. 벗어나고 싶다면? 어색하든 부족하든 쭈뼛대든 첫 발을 내딛고 차츰 더 크게 목소리 볼륨을 높여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