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아시겠지만 최근 들어 10대를 중심으로 메타버스가 유행하고 있고, NFT 기술을 활용해서 디지털 자산을 소유하는 게 트렌드가 되고 있습니다. 저희도 마인크래프트나 제페토 같은 유행 게임 내에서 가상 편의점을 구축하고, 다양한 상품들을 활용해 자신만의 족적을 남길 수 있게 한다면 MZ세대와의 교감을 높여 신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왜 10대를 신규 고객으로 확보해야 하지? 그들의 구매력은 어느 정도지? 편의점에서 족적을 남기는 과정에서 우리가 얻는 효용은? 게임 내 매장 구축에 필요한 IT인력은? 아웃소싱인가 아니면 직접 제작인가? 대체 자네는 뭘 하자는 겐 가?”
기획안을 써오라고 하면 많은 초년생들은 신박한 아이템, 아이디어 제시에 몰두한다. 대학생 시절 공모전 꽤나 해본 초년생들은 자신감을 보이기도 하지만 현업에서는 택도 없다. 초년생들이 짜는 기획안을 보면 현실성, 설득력, 기획력 모두 떨어진다. 그저 블링블링한 아이디어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Business 관점이 부족하다.
기업활동의 목표는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이윤은 매출-비용으로 산출된다. 내가 투입한 비용보다 큰 매출을 거뒀을 때 이윤이 창출된다. 한발 더 나아가 투자한 비용 대비 매출이 커질 때 수익성은 더욱 커진다. Input은 줄이고, Output을 키움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고,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기업활동의 기본 중의 기본개념이다.
그리고 회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조건이 중요하다. 가상계좌에 꽂힌 수억원의 투자금을 여기저기 손 가는 대로 줍줍하는 모의투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수없이 많은 투자안들 중 어떤 곳에 Resource를 집중시키는 순간 다른 투자안에 대한 투자기회는 상실된다. 잘못된 선택으로 떡상과 떡락의 희비가 교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무작정 멋지고, 화려한 프로모션과 홍보, 최첨단 신기술과 기계장비를 투자해서 돈을 버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실현 가능한 꿈 같은 이야기다. 흥행보증수표 차은우, 수지를 모델로 앞세운 광고에서 중박은 쪽박과 다름 없는 이유다. 돈은 돈 대로 썼는데 폭망이다? 사표각이다. (KBS2 드라마 ‘함틋’이 문득 떠오른다.) 좋은 기획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작지만 효율적인 개선이다.
출처: MBC수목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 5화 중
직원1: 완전. 일리 있어요. 화려한 거 신박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 기존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라. 연구에 최소 일 년 이상 걸린 아이디어는 과감히 패스해라.
직원2: 나는 이 부분에 별표 다섯 개요. 최악은 머신러닝. 빅데이터 iot ai 기능까지 다 때려 박은 기획안이다.
여기는 우주도 화성도 아니다. 일차로 떨어진다.
MBC수목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는 퇴직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 치는 직장인들의 삶을 그린다. 현재 인사팀으로 밀려난 주인공 최반석 부장은 본래 엔지니어다. 5화에서 최부장은 기획안의 레전드라는 입소문을 타게 되고, 노하우를 전수 받고자 하는 직원들이 부리나케 몰려드는 장면이 등장한다. 최반석 부장은 3가지 원칙으로 깔끔하게 기획의 핵심을 정리한다.
1. 화려한 것, 신박한 것에 목숨 걸지 마라.
돈이 많이 든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때문에, 어지간 해서는 결재를 받기도 쉽지 않다. 실행계획을 세우는 것도 빡세다.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획안의 효과성에 대해 사전에 예상하기도 어렵다. 추진할 때 유관부서의 불만과 투정도 덤이다. 그래서 온갖 핫하다는 신기술을 모두 접목시킨 변화보다는 작지만 확실한 개선이 더 큰 실효성을 갖는다.
출처: MBC수목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 5화 중
최반석 부장: 아니 형은 뭐 AI랑 사귀어? 죄다 인공지능이야?
노병국 팀장: AI가 대세잖아. 인공지능 없으면 너무 약하지 않나.
최반석 부장: 아이고, 이걸로해. 인공지능 빼고. 기존 모델 버전2로 가. 그게 안전빵이야. 초음파 세척이니까 소음이 심할 거 아냐. 형이 잘하는 거 있잖아. 소음저감챔버. 내장컨셉으로 밀어.
노병국 팀장: (희번뜩! 왜 그 생각을 못했지라는 표정)
출처: MBC수목드라마 '미치지 않고서야' 5화 중
안선임: 차선임이 그러는데 한팀장님 거 진짜 1빠로 떨어졌데요.
동책임: 진짜? 소름… 와 최부장님 예언 적중
머신러닝, 빅데이터, IoT, 인공지능 다 때려박은 한세권 팀장의 기획은 탈락!!
2. 기존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라.
기업 내에는 기존에 개발되고, 존재했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자원들이 많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시도는 접근이 용이하다. 기존의 자원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비용 투입에 대한 부담도 적다. 안 되면 마는 거고, 되면 개이득이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그 자체다. “편의점 내부 인테리어 컨셉을 바꾸면 좋겠다” 보다 “고객의 동선과 시선을 고려해 품목 별 위치와 진열방식을 바꾸면 좋겠다”가 좋은 기획이다. “저희도 유행하는 트렌드에 맞춰서 제품 라인업 확장과 신규제품 개발이 필요합니다”보다 “저희 30년된 Best Seller 제품의 재해석을 통한 Repositioning으로 20-30대까지 Target을 넓혀보면 좋겠습니다”가 좋은 아이디어다.
3. 연구에 최소 1년 이상 걸리는 프로젝트는 과감히 패스하라.
본부장, 팀장이 자기가 있는 동안에 끝날지도 않을 지리한 프로젝트에 목숨을 걸까? 평가시점 마다 자신의 실적과 성과를 입증해야 되는데 전사 전략 차원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아니고서야 일개 직원이 제안하는 중장기 프로젝트를 밀어줄 이유가 없다. 제안하는 개인 입장에서도 그만큼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얼마나 큰 인정을 받고, 호사를 누리겠다고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까지 감당할 자신은 있는가? 보고 받는 입장에서도 짧은 시간에 실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팀장, 본부장, 상무, 부사장도 보고를 받고, 다시 보고를 올린다. 보고를 올리는 입장에서 빠르게 개선된 지표, 수치, 도출된 성과가 있다면 어깨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회사는 대학시절 공모전의 장이 아니다.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는 장도 아니다. 회사의 희소한 자원의 활용을 극대화해 최고의 효율을 내고, 이윤을 창출하는 곳이다. 회사의 입장에서 사업이 갖는 의미를 생각하고, 보고 받는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보면 힘을 적게 들이면서도 더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는 곳이 회사다. 회사는 ‘열심히’ 보다는 ‘효율’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