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훌쩍 찾아온 아홉수.

나이 먹는 슬픔을 극복하는 현실적인 방법

by Sunday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든 슬픈 일입니다.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셔도 다음 날 쌩쌩하게 수업 들으러 가던 나의 모습은 이제 없습니다. 전날 회식으로 소주 두 병이 넘어가면 하루 종일 산송장입니다. 여명 808로도 커버가 힘듭니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늘어나면서 지갑은 두툼해질 줄 알았지만 점점 더 홀쭉해졌습니다. 서른 정도 넘을 때면 내가 사고 싶은 것은 다 살 줄 알았죠. 게임만 할 수 있는 게임방을 만들어 밤새 컴퓨터 게임도 하고, 주말이면 근사하게 입고 나가 우아하게 와인잔을 부딪히면서 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마이너스 통장이고, 주름살뿐이죠...



나이를 먹는 일은 슬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울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똑같은 속도로 늙어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이 그렇게 절망한 일은 아니라고 외치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마흔에게’라는 책입니다.


어느 정도 사회에서 성공한 50대들에게 물었습니다. ‘10대로 다시 돌아가겠습니까?’ 모두가 ‘네,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할 것 같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더군요. ‘지금의 경험치, 능력, 생각의 깊이를 들고 10대로 간다면 당연히 가겠지만, 그렇지 않고 다시 10대로 돌아간다면 사양하겠습니다’라고 대부분의 성공한 중장년층이 말을 했습니다. 물론 젊음은 좋지만, 다시 한번 그때로 가서 고생을 반복하기는 싫은 모양입니다.

진지하게 고민을 해봅니다. 저도 10대로 돌아가서 내신 준비하고, 수능 준비하는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네..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 몸에서 이상 징후를 하나씩 보냅니다. 노안이 오고, 무릎이 시려 계단을 올라가기가 싫습니다.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이제 더 이상 당기지 않습니다. 이가 시리기 때문이지요. 예전의 건강했던 모습과 비교를 하면 점점 더 슬퍼집니다. 이렇게 슬픔에 빠진 우리들에게 저자는 말합니다.


‘뺄셈식으로 사고를 하지 말고 덧셈식 사고를 해라’ 이게 뭔 말인가요?


저자는 뺄셈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제 친구 중에 진짜 말도 안 되게 잘난 친구가 있습니다. 키는 크고, 잘생겼는데 대학교도 명문대입니다. 경제학과를 다니는 그 친구는 대학교를 다니다가 회계사 시험도 붙고, 지금 회계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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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비교를 시작합니다. 인생에서 이상적인 모습을 그 친구로 설정하게 됩니다. 이상적인 그 친구 모습과 나의 모습을 비교를 하게 됩니다. 그 친구의 현실을 기준으로 나의 현실의 차이를 뺄셈을 통해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뺄셈적 사고입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모습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잡게 되면 지금 어버버 하는 내 모습이 싫어집니다. 또다시, 영어를 포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지요.



무엇보다도 비교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나가는 남뿐만 아니라 제가 만들어낸 허상의 모습과도 비교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모습을 기준으로 뺄셈 하여 나를 바라보지 않아야 합니다. 이상적인 모습에서 하나하나 뺀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기보다는 내가 지금껏 쌓아 올린 것들을 봐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덧셈적 사고지요.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를 칭찬하고, 지금의 모습을 인정해야 합니다. 쌓아 올린 게 많지는 않지만요....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현재에 만족한다는 것이 지금의 모습에 안주하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현재에 집중하고, 감사하고, 만족해야만 우리의 기분이 좋아지고, 신바람 나게 일하게 됩니다.




저자는 인간의 가치와 생산성을 분리하라고 주장합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생산성은 일을 잘하고 돈을 잘 버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완벽한 상태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생활과 세계는 매우 불완전합니다. 내일까지 써야 하는 보고서는 도저히 시간을 못 맞출 것 같습니다. 막상 오늘 점심 전에 보고도 들어가야 하는데, 준비상태는 엉망입니다. 일을 잘해서 생산성이 높은 것과 여러분의 가치는 다른 영역입니다. 생산성이 좋지 않다고 해서 여러분의 가치가 깎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치와 생산성을 묶어서 생각합니다. 그것이 불행의 시작입니다. ‘왜 똑같이 5시간 공부했는데 쟤는 합격하고, 나는 떨어졌을까..’ , ‘내 입사동기인 친구는 어떻게 저리 맛깔나게 프레젠테이션을 할까?’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힙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한 사람의 생산성과 가치는 완전히 다른 영역입니다. 이것을 빠르게 깨닫고 인정하셔야 합니다. 단박에 깨치고 꾸준하게 살아가셔야 합니다.



절대 인생의 의미를 ‘생산성’에서 찾지 마십시오.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에 놓고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나이가 들거나, 아프거나, 생산성을 발휘하지 못할 때, 살 이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버지들이 은퇴하고 나서 방황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산성과 가치를 동일시했기 때문이지요. 즉, 사장님이 나고, 내가 사장님이었던 것이지요.

지금부터라도 나의 존재가치와 생산성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당신은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무엇을 성취하거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목표를 이뤄나가는 과정 한 순간 한 순간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미래가 많이 걱정된다면,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렇게 슬픈 일 만은 아닙니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우리는 남의 평가와 시선에 초연해집니다. 점점 더 자신을 알아가게 됩니다. 뭘 좋아하는지, 언제 기분이 좋은지, 무슨 말이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 느낌이 마냥 싫지만은 않습니다. 자신의 속도를 찾게 됩니다.




자신의 속도를 찾으면 행복해집니다. 왜냐하면 행복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행복은 따라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해 보이는 사람의 삶을 따라 해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십시오. 타인과의 비교는 최대한 줄이십시오. 생산성과 가치를 분리하십시오. 비교하는 쓸데없는 시간을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에게 쏟아부어야 합니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하면서 살아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은 자꾸 외면합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조금 관대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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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기시미 이치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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