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잠잠해지고 종식해갈 쯤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유럽여행을 계획했다. 많이 갈망하고 고대했던 여행이었다. 이번에도 혼자였다. 몇 개월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진 않았지만 독일 옥토버페스트와 겹치는 여행날짜를 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옥토버페스트 날짜에 독일여행을 가려거든 여느 여행보다 미리 준비해야한다. 숙박 가격도 몇 배로 비싸지고 당장 독일에 가려는 비행기가 없을 수도 있다.)
타국에 도착했을 때 당장 느꼈던 감정은 5년 전 그때와똑같았다. 낯선 나라에 대한 동경,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 나 혼자 동양인이구나. 이제 타국에서의 환경을 그대로 흡수해보자. 라는 생각. 그리고 혼자 헤쳐 나가야 할 날들에 대한 두려운 감정들이 함께 혼합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두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숱한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되리라.
사실 수많은 유럽 나라들 중 굳이 독일과 오스트리아를꼽았던 이유도 그저 친언니가 추천해준 나라이기 때문
이었다. 언니는 수많은 유럽 나라들을 여행했는데 그 중에서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나라로 독일을 꼽았었다. 얼마나 좋았기에 독일을 다시 가고 싶은 나라로 꼽았을까 하는 마음에 언니를 믿고 무작정 독일행 티켓
을 예매하고 독일로 떠난 것이다.
독일에서 느꼈던 행복 중 가장 큰 행복은 독일 사람들의 친절함이었다. 특히 제일 인상적으로 남았던 기억은독일에서의 마지막 날. 무거운 캐리어를 가까스로 들고지하철 계단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수많은 계단이 너무 미워지려던 찰나 내가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내 캐리어를 선뜻 들어주던 독일남자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좋은 여행은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이라고. 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좋은’이라는형용사는 만질 수도, 선뜻 이렇다 저렇다 할 수도 없는 상대적이고 추상적인 용어였다. 그렇지만 타국의 여행자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분명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독일에서 너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오스트리아에 도착하니 혹여나 옆 나라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새로운 나라를 넘어간다는 기대보다 앞섰지만, 이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리만큼 오스트리아는 완벽한 나라였다. 르네상스 건축물들 사이사이 동화보다 더 동같은 아름다운 비엔나 사람들은 눈만 마주쳐도 나에게
Hello하고 인사를 건넸다. 아름다운 도시에 길들여져 마음까지 아름다워진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다’라는 말을 사전에 검색하면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
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비엔나에 머무는 동안엔 시도 때도 없이 아름답다 아름
답다를 되뇌이며 길거리를 배회했던 것 같다. 때로는 아름답다 라는 말보다 더한 말이 없어서 아쉬울 정도로
무척이나 어여쁘고 아름다웠다.
누구든 홀로 하는 여행을 부디 외로움으로 생각하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나는 대부분의 여행을 홀로 했다. 그럴 때마다 주변사람들은 걱정 아닌 걱정과 따끔한 충고 같은 것도 서슴지 않고 나에게 이야기 했다. 혼자 여행을 왜하느냐. 무섭지 않느냐. 외롭지 않느냐.하고 안좋은 말들만 내뱉었던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법정스님 잠언집에 나와있는 ‘고독과 고립은 다르다. 절대 고독이란, 의지할 곳 없이 외로워서 흔들리는 그런 상태가 아니라 당당한 인간 실존의 모습이다.’ 라는 글처럼 나는 혼자 여행하며 단 한 번도 외로움, 고독 이란 단어를 연상시켜 본적이 없다. ‘혼자’라는 것에 대한 의식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나에겐 더 적절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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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의 Cover girl을 들으며 거닐던 이른 오전 뮌헨 거리의 초록빛 산책, 민낯어린 깨끗한 거리위에 파노라
마처럼 펼쳐지던 비엔나 풍경. 이 모든 순간들에 사무치도록 아름다움을 느꼈다. 거리위에 고여 있는 수많은낭만 조각들을 고이 담아 한국으로 가지고 오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훗날 나는 다시 떠나려 한다. 낭만은 여행자의 일이다. 9월의 유럽여행은 영구적인 아름다움으로 서른셋 나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여행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