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적응을 어느 정도 마치고 아침 조깅을 시작했다. 조깅이라고 하기에 시간의 3%만 차지하고 있어서 조깅맛 산책이라고 하는 게 마음 편하다. 마치 바나나맛 우유 같은 조깅맛 산책을 막 시작했는데, 그날은 평소보다 늦게 집을 나섰다. 바로 전날 R과 함께 침대 프레임을 만들고 매트릭스에 침대 시트까지 씌우고 나니 별 거 없어 보였는데 2시간 반이 사라져 있었고, 드디어 침대를 장만하고 개운해진 마음의 우리는 늦은 시간 영화까지 보느라 꽤나 늦게 잠들었다.
조깅맛 산책이 평소보다 늦어져서 많이 더우면 어쩌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는데, 밤낮으로 비가 꽤 내리던 시기라 다행히도 날씨가 흐려서 많이 덥진 않았다.
복실이가 잔디밭에 모닝 루틴을 시원하게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큰길 방향으로 걷던 중, 몇 블록 지나지 않아 오른쪽 길목에서 복실이를 바라보며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챱챱 챱챱 챱챱'
누르스름하고 해맑은 강아지 하나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데, 아이 뒤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떠돌이 강아지인 줄 알고 혹시 복실이한테 달려들까 번쩍 들어 올렸더니 누르스름하고 해맑은 아이는 복실이 엉덩이 냄새를 맡겠다고 내 다리를 지지대 삼아 두 발로 서서 킁킁거렸다.
'잠깐만 목걸이가 있는데? 너 어디서 왔니? 집 어디야?'
누구네 집인지 모르는 담벼락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이 해맑기만 한 아이의 이름표가 자세히 나오도록 사진을 찍은 후 R에게 전화를 했다. 상황 설명을 하고 아이의 이름표에 전화번호가 있으니 이 번호로 전화를 부탁했다. 이때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계속 더 멀리 모험을 즐겨보려는 이 아이를 어떻게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느라 이름표에 아이 이름과 집 주소가 함께 있는 건 나중에 발견했다.
'Hey! Come here!'
아이는 복실이에게 관심이 있다가도 혼자 모험을 떠날 수 있는 기회에 신난 건지 1차선 도로를 계속 활보하면서 해맑게 돌아다녔고, 잘 나오지도 않는 휘파람을 계속 불어대며 나만 진땀을 빼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몇 분 동안 지속되는 중에 아이가 도로 한가운데에 앉아버렸고 달려오던 차는 아이 앞에 멈춰 서서 정신이 나간 채 계속 아이를 부르고 있는 내게 운전자가 괜찮냐고 묻기도 했다.
이 위험한 상황 직후에 아이의 이름을 발견했고, 이름을 부르며 쓰다듬으니 내 옆에 착 붙어서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
'네 이름이 후니야? 어~ 이름 불러주니까 내가 더 이상 낯선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이름을 조금 더 일찍 발견하면 좋았을 걸. 그럼 방금처럼 위험한 상황도 없었을 텐데.
'어떡해 그들이 모르는 번호라서 스캠전화인 줄 알고 네 전화를 안 받나 봐. 문자 남겨 놓는 건 어때?'
'응 그래서 문자도 남겨놨어. 내가 지금 나갈게.'
R을 기다리는 동안 후니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면서 계속 쓰다듬어 줬다. 몇 분 후에 R이 도착했고 후니는 꼬리를 흔들며 R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둘이 인사를 하는 동안 구글지도를 켜고 후니의 집주소를 검색했다. 이 길목 끝에 후니의 집이 있다고 알려주는 지도. 후니를 쓰다듬으며 쭈그려 앉아있던 담벼락에서 30초 걸었을까. 아이의 집 안에서 웅성웅성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복실이를 안고, R은 후니를 안은 채 그 집 앞에 도착하니 중년의 중국인 부부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문자를 보낸 게 당신이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여보 뒤뜰 문이 열려있었어. 집에 수리하는 사람이 왔다 갔는데 아마도 그때 뒤뜰 문을 안 닫았나 봐요. 정말 감사합니다.'
후니의 이름표에는 '춘'이라는 성도 함께 기재되어 있었는데, 반려인이 중국인일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후니를 데려다준 것에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조금의 대화도 오갔다.
집을 나선 지 불과 20분도 채 되지 않아 이 모든 일이 일어났고, 진이 빠진 나는 후니를 가족에게 돌려보낸 후 R과 집에 돌아와 이야기를 더 나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후니의 가족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안녕, 나 젠 춘이야. 너희가 후니를 구조해 준 게 너무 고마워서 작은 선물을 너희 집 앞에 놓고 가려고 해. 집 주소가 뭐라고 했지?'
그들이 준비한 고마움의 표시를 받는 게 예의인 것 같아 주소를 알려줬고 몇 분 후에 그들로부터 답장이 왔다.
'I'm here.'
R은 흰 쇼핑백을 들고 집에 돌아와 말하길
'그들이 이미 이 선물을 사서 우리 집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대. 우리 집 주소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서 내게 문자 했던 거래.'
흰 쇼핑백은 펼쳐볼 필요도 없이 그들이 어디에서 이 선물을 준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즐겨 찾는 하와이에서 꽤나 오래되고 유명한 빵집이 있는데 바로 그 빵집의 쇼핑백이었기 때문이다.
참. 재밌다.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사계절 온화한 하와이의 날씨에 소란스럽고 귀여운 우리 집은 늘 적정온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날은 유난히 집안을 가득 채우는 따스함으로 행복했다.
평소보다 늦게 집을 나선 게 행운이었다. 아무 일 없이 가족에게 돌아간 후니에게도, 후니를 다시 품에 꼬옥 안게 된 가족에게도, 왠지 모를 따스함을 느낀 우리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