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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포케 Nov 26. 2023

드디어 하와이 첫날

자기야 이게 무슨 소리야? 1

  기나긴 기다림 끝에 약혼자 비자를 발급받은 후 출국 날이 왔다. 무언가를 이렇게 마음 졸이며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 봤던 적이 있을까.

  '행운을 빌게, 곧 비자를 받게 될 거야.'

  나를 인터뷰 보던 영사의 마지막 말에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국 대사관 2층에서부터 출구까지 뛰쳐내려 와 R과 통화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낮이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려 온통 짙고 선명한 회색 하늘의 서울 광화문역은 모든 게 차분해 보였지만, 기쁨에 겨운 나는 금기라도 깨듯 방정 떨며 뛰어다녔다.


  장장 1년 8개월 만에 받은 비자가 부착되어 있는 소중한 여권을 품에 안고 커다란 캐리어 2개, 기내용 캐리어 1개, 백팩 1개, 복실이 캐리어 1개를 이고 지고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시간보다 6시간 일찍 도착한 공항이었지만 인생 첫 비행인 복실이를 위해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탑승을 시작했다.

  8시간 20분. 한국에서 하와이로 가는 비행 항로는 일본 하늘을 넘어가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시간보다 짧다고 한다. 8시간 이상 비행도 장시간이지만, 10시간은 넘지 않아서 복실이에게 정말 다행이다.

  운이 좋게 바로 옆자리는 공석이었고 덕분에 조금이라도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첫 비행인 복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기내 동반탑승이라 그런지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던 내가 무색할 정도로 의젓하게 있어줬다. 고마워.


  드디어 호놀룰루 국제공항에 도착!

  하지만 미국은 공항을 빠져나가야지만 입국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곳. 2019년에 R을 만나러 ESTA 비자로 혼자 입국하다가 세컨더리룸까지 불려 가서 이상한 질문을 계속 받고, 캐리어에 있는 물건 다 끄집어내서 수첩에 적인 한글을 통역관에게 가리키며 무슨 뜻이냐고 캐묻던 입국 심사관들이 여전히 기억 속에서 지랄하며 자리 잡고 있다. 동양인 미혼여성이 불분명한 목적으로 혼자 미국에 입국하는 게 상당히 까다롭고 입국거절되는 최악의 상황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단단히 준비해 갔지만 무용지물이었고,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R과 직접 대화를 나눈 입국심사관들은 그제야 내 여권에 도장을 찍어줬었다.

  이번에도 이런 상황이 생기면 어쩌지 불안했다. 전공 교제만큼이나 두꺼운 노란색 비자서류 봉투를 들고 입국심사관 앞에 섰다.

  'E-신체검사 확인서는 없니?'

  '종이로 된 확인서 밖에 없는데?'

  동양계 입국심사관은 두꺼운 서류 뭉치들을 살펴보다가 다른 심사관을 데려오더니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눴다. 온몸에 땀이 흐른다.

  '혹시 내 비자 서류에 무슨 문제라도 있니?'

  '아니야. 아무 문제도 없어. 너 비자 기간 동안 결혼 해야 하는 거 알지?'

  '응. '


  'Thank you! Have a good day!'

  'You too!'

  후다다다닥. 비자 옆에 입국 도장을 찍고 비자 만료기간을 적은 여권을 돌려받은 후에 에스컬레이터를 뛰어서 내려갔다. 혹시 다시 불러 세울세라.

  세컨더리룸을 가는 악몽은 피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입국심사 시간이 배로 걸려서 내 짐들은 벌써 컨베이어 벨트 기둥 옆에 몇몇의 다른 캐리어들과 세워져 있었다. 나 말고도 아직 가방을 찾아가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니. 부디 행운이 그들과 함께 했길.


  비자를 준비하면서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1년 만에 만나는 R을 보면서도 꿈만 같았다. 흐린 하와이 하늘과는 상관없이 후덥지근한 공기가 뺨을 문지르듯 스치니, 그토록 원하던, 돌아올 수 없는 바다를 건너온 내가 보인다.

  

  '아직 복실이는 우리에게 인계되지 않았어. 네 이름 인터폰으로 부를 테니 그때 복실이 찾으러 와.'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비행하는지 몰랐다. 복실이 입국심사가 나보다 더 오래 걸릴 줄이야.


  그렇게 R과 함께 복실이를 공항 동물 검역소에서 찾은 후에 드디어 우리 집으로 향했다.


  '오? 사진보다 훨씬 괜찮다!'

  R은 집 안 곳곳을 사진으로 찍어서 내게 보내줬지만, 구조가 미스터리해 보였고 영 마음이 가진 않았다. 하지만 직접 보니 사진보다 훨씬 괜찮았고 정말 좋은 조건으로 계약했다는 걸 실감했다. 감동도 잠시, 이건 때 이른 생각의 어리숙함이었으니.


  신나게 짐을 풀고 있는데 앉아 있는 곳 머리 위에서 크고 선명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이게 무슨 소리야?'

  윗집에 사는 이웃이 변기물 내리는 소리가 이렇게 크게 들릴 일인가? 마치 내 정수리에서 변기물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가깝게 들렸다. 방음이 잘 되지 않을 거란 예상은 했지만 상상 이상의 앞 날이 기다리고 있을 집이라는 걸 직감했다.


  우리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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